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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당 Dec 01. 2018

어제(어쩌다보니제주도) - 제주, 세 달.

어쩌다보니 제주도로 왔다. 아예.

서우봉에 코스모스가 정말 아름답게 피었었다.

1.

11월도 지났다.

제법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한 날씨이다.

서울이었으면 진작에 롱패딩 입고 목도리 두르고 다녔을 텐데

그래도 남쪽이라고 그렇게 춥지는 않다.

가끔 추워지면 롱패딩을 입지만 아직까지는 후드 집업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12월이다.


2.

12월이다.

서울이었으면 연말이라고 망년회고 송년회고 여기저기 모임 다니느라

정신없었을 텐데 조용히 12월을 맞이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자던 친구에게 제주도로 이사 왔다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그렇게 뜬금없이 갈 수 있냐고 조금 혼났다.


3. 

남들에게 알리지 않고 내려온 제주도.

곧 벌써 세 달이 되었다.

그렇게 무더웠던 8월 말에 내려왔는데

벌써 12월이다.

이제 적응의 시간은 얼추 끝난 것 같다.

이제는 제주를 조금씩 즐겨볼까 한다.


따뜻한 11월이다.

11월의 함덕 바다도 푸르렀다. 그리고 조금 따뜻했다.

육지에 있을 땐 11월이라는 숫자는 차가웠다.

겨울의 시작이었고 따뜻한 옷을 꺼내어 입기 시작하는 달이었다.

하지만 제주도는 11월에도 따뜻했다.

남방 하나로도 충분히 지낼 수 있었고 

잠깐 추우면 남방보다 조금 두꺼운 옷을 입으면 될 정도였다.

서울에 갑자기 강추위가 와 영하 6도의 날씨라고 했을 때도

제주도는 10도 내외였으니 말이다.


조금씩 적응되고 있다.

회사와 회사 동료들과의 적응.

집을 떠나 산다는 것에 대한 적응.

제주도에 대한 적응.

적응은 곧 나에게 작은 여유가 생긴 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적응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사람과의 이별.

살랑살랑 바람이 불던 날, 그렇게 동료가 육지로 올라갔다.

같은 집에서 잘 지내던 동료가

여러 사정으로 집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모든 게 잘 맞았던 친구였다.

여러 가지로 마음 터놓고 이야기도 곧잘 하던 친구였다.

떠나는 날 아침 같이 회사에 가서 인사를 하고 점심을 먹고

정리되면 내려와서 밥 한번 먹자는 말을 나누곤 제주항 근처 마트 앞에서 헤어졌다.


이별은 크고 작든 언제나 아프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아프지 않을 만큼만 정을 주자 라고 생각하는데

좀처럼 쉽지가 않은 일이다.


센티해진 마음은 서우봉에서 어느 정도 힐링이 되었다.

11월 코스모스가 서우봉에 멋들어지게 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하면서 서우봉을 바라보았는데 중턱 쪽에 노란색 들판이 있었다.

뭔가 했더니 그게 코스모스 밭이라고 했다.

쉬는 날 서우봉에 올라갔더니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넓은 들판에 온통 코스모스 천지였다.

코스모스 밭 저쪽으로 보이는 함덕 바다가 유난히 파랗게 보였다.

11월에 이렇게 이쁜 꽃이 피었을 줄이야.

한동안 코스모스 밭 주변을 걷고 걷다가 내려왔다.

아마 내년에도 다시 코스모스가 핀다면

그때는 누군가와 같이 가보고 싶어 졌다.


코스모스를 즐기고 1주일 뒤 육지 집에 다녀왔다.

제주도에 내려오면서 가장 걱정했던 것이

"갑자기 날씨가 안 좋아서 집에 올라가려고 할 때 못 올라가면 어떻게 하지?"라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올라가면서 그 걱정이 현실이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을 할 정도로

비와 바람이 정말 세차게 불었다.

우산이 뒤집혀질 정도로 강했던 비바람

정말 혼란했다.

어찌어찌 티켓팅을 하고 게이트 앞에 대기하는데

많은 비행기가 결항이거나 지연이였다.

불안한 마음에 게이트 앞에 있는 항공사 직원에게 물어보니

내가 탈 비행기는 지연될 일이 없다며 안심시켰다.

그 와중에 주변 사람들은 김포로 갈 비행기가 인천으로 가게 되었다고

어떻게 하냐고 울상을 지으며 항의를 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김포는 일정 시간 이후에는 비행기가 착륙할 수 없어 인천으로 간다고 한다)


그러다 지연될 일 없다던 비행기가 조금씩 지연되더니 30분이나 지연된다고 했다.

이때부터 엄청 불안하며 나도 인천으로 가는 게 아닌지 불안했지만

30분 지연이 되고 이륙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서울, 비는 오고 바람은 불었지만 이젠 상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서울도 비와 바람이 불었다.

공항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바쁘게 움직이며 저녁을 못 먹었던 탓에 저녁을 먹고 바로 잠이 들었다.


위쪽은 위쪽인가 보다.

그래도 가을이라고 단풍도 피었고 하늘도 높았다.

단풍이 들었고 낙엽은 길에 한 가득 내려 앉았던 군포의 가을.
영락없는 가을하늘이였다.

이번에는 올라와서 특별히 한 것이 없이

동네 마트에 간 것 이외에는 먹거나 자고 내려왔다.

목요일 밤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그렇게 있다가 내려오니

시간이 빠르게 갔다.

양 손 가득 어머니가 해주신 반찬을 들고 11월 11일 빼빼로데이 저녁에

가족끼리 설렁탕 한 그릇씩 먹고는 공항으로 갔다.

비상구좌석에 앉아 편안하게 올 수 있었던 컴백제주 비행기
너무 늦게 출발하는 제주행 비행기를 타는게 아닌가 싶었던 집으로 가는 길

집에 갔다 와서는 계속 바쁘게 지냈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이 빠르다 보니

주말에 빠르게 돌아왔다.


오래간만에 영화도 봤다.

퀸 왕팬인데 남들보다 조금 늦게 봤던 보헤미안 랩소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서 울컥울컥 할 줄은 몰랐다.

흘러나오는 퀸 노래에게 심장이 쿵쾅 거릴 정도로 즐거웠던 영화였다.

집-회사-집-회사로 이어지는 루틴함 속에서 

가끔씩 시내에 나와 즐기는 문화생활은 머리가 굳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리고 커피를 배우기 시작했다.

회사 점장님이 직접 알기 쉽게 강의해주는 덕분에

커피 지식이 날로 올라가고 있다.

커피, 특히 생두를 원두로 만드는 로스팅을 배우고 싶었다.

육지에 있을 때도 로스팅을 배워 보고자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제대로 알려 주는 곳이 없었다.

한꺼번에 몇십포대 씩 생두가 들어오고 있다.
로스팅에도 미학이 있을 것 이라고 확신했던 로스팅 수업.
생각없이 마셨던 커피 한 잔에 이렇게나 많은 프로세스가 있다.

매주 금요일 8시마다 커피 수업을 듣고 있다.

원두를 볶는 시간에 따라 맛이 틀려지고,

생두에 수분이 날아가고 가스가 나오고,

에스프레소 머신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등등

정말 배우고 싶었던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어서 수업 때마다 행복할 정도이다.


그리고. 11월 마지막 날.

나는 제주도민이 되었다.

진짜 제주도 사람이 되었다. 이제 진짜 제주라이프가 시작되었다.

어쩌다보니 제주도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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