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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킴 Dec 23. 2015

첫경험

처음은 뭐든 경이롭다


처음 똥을 싼 날,

처음 한바가지 분수토를 한 날,

첫 뒤집기, 첫 옹알이, 첫 웃음소리, 첫 이유식


내 아들에게도 첫경험이겠지만 엄마에게도 모든게 첫 경험이다. 모든게 어렵고 어안이 벙벙한 아찔한 경험들. 오늘은 그 에피소드를 몇 개 소개할까 한다.





끄애애앵! 으애애!


생후 40일 경, 대자로 뻗어서 자던 아들이 갑자기 비명에 가까운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첫 예방접종 때 바늘이 들어가던 순간 내던 바로 그런 울음소리를.


화장실에서 비둘기를 양껏 잡고있던 나는 뒷처리도 제대로 못한채 놀라서 뛰쳐나왔건만, 아들의 숨소리는 고요했다. 환청이라도 들은 줄 알았다.


세상에. 신생아도 잠꼬대를 하다니. 도대체 무슨 꿈을 꿨던 걸까. 젖병을 뺏기는 꿈? 산도를 통과하는 꿈?


아직도 참 궁금하기 그지없다.


엄마 놀래키고는 참 잘도 자고있다... 속싸개는 봉인해제



아기의 똥은 분명 그닥 더럽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했던 친정엄마의 말은 다 거짓말이었다. 이유식 시작하기 전까진 냄새도 별로 안 난다고? 천만에!


방구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하루는 예방접종을 위해 차를 타고 가고있었는데 어디선가 짙은 똥방구 냄새가 스물스물 풍겨왔다. 말도 안될 정도로 찐한 원액 그대로의 스멜.


아 뭐야!!! 냄새 장난 아냐!


급히 창문을 열며 남편의 등짝을 후려쳤건만 남편은 억울한 표정으로 자긴 아니라며 손사레를 쳤다.


범인은 내 품에 매달려 자고 있던 생후 30일의 방구쟁이였다. 아들의 엉덩이에 코를 박는 순간 아기띠와 엉덩이 사이에 짓눌려있던 잔향이...




그러고보니 똥을 손으로 받던 날도 있었지. 지금은 뼈저린 경험에 힘입어 꼭 저렇게 엉덩이 아래에 일회용 천을 깔고 기저귀를 갈아주지만 처음엔 그렇지 않았다.


기저귀가 넘칠 정도로 빵빵하게 끙아를 한 아들이 칭얼거리며 16일차에 접어든 초보 엄마를 소환했다.


손에 똥이 묻지 않게 조심하며 기저귀를 살살 빼내어 옆에 둔 순간, 예상치 못한 대재앙이 도래했다.



입꼬리를 양옆으로 당기며 배 아래쪽부터 끌어올린  신음소리. 불길하다고 생각한 순간 아들의 엉덩이 사이에서 황금색의 이물질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아아아 안돼!!!!!


똥에 젖은 솜이불을 빠는 것보단 손을 씻는게 편하니까...

급히 손으로 뜨끈한 그것을 받아내었지만,


인체의 신비란...


끙아와 쉬아를 동시에 하는 아들의 놀라운 능력 덕분에 난 오줌까지 뒤집어쓰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후일담이지만 남자들은 두가지 볼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멀티태스커란 얘기를 신랑에게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아래 똥 사진 주의!!!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보지마시옵소서....!!!)






이런 일은 다반사이다. 기저귀 갈아주는 짧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똥폭탄 투척...


처음으로 아들이 사회적미소를 지은 것은 48일째 되던 날이었다.


그 이전엔 보통 아기들은 웃지 않는다. 배냇짓이라 하여 뱃속에서 하던 그대로 입을 쫑긋거리는데 때론 그것이 미소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의 말에 반응하는 행동은 아니기때문에 사실 50일 이전의 육아는 무척이나 외롭다. 짝사랑이랄까....


그러던 어느날 동물소리 50종을 흉내내며 재롱을 떠는 엄마를 유심히 지켜보던 코딱지가 방긋 웃는 게 아닌가.



아, 웃는구나. 정말 엄마를 보고 웃는구나. 우리 아기가 정말 기뻐하는구나.


아들의 첫웃음을 보던 날 출산 직후보다 더 많이 울었다.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산후우울증도 그날을 기점으로 사라졌다. 짝사랑이 결실을 이룬듯한 기분이었다.




얼마전 처음 이유식을 시작했다. 쌀미음도 제법 잘 먹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니 내새끼가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신생아시절 잠에 목말라 허덕이며, 칭얼거리는 아이를 안고 흔들며 '제발 빨리 커다오'를 주문처럼 외우던 게 떠오른다.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게, 고맙다가도 아쉽고 아쉽다가도 안심이 된다.


이제는 목을 받쳐주지 않아도 자동차의 강아지 인형처럼 목이 까딱거리지 않는다. 쪽쪽이를 입에 물려주지 않아도 잠이 든다. 손가락도 빨줄 안다. 더우면 지가 알아서 이불도 걷어차내고 배가 고프면 앙 울기 전에 입맛도 다신다.


하지만 그 얇디 얇은 신생아 울음소리, 하품하던 작은 입과 꽉 쥔채 펴지지 않던 조막만한 주먹은 다신 못 보겠지.


더 많은 첫경험이 날 기다리고 있지만 지나가버린 첫경험조차 너무나도 아쉽다.


"어머 저기봐. 완전 아가다, 그치?"

-엄마 나도 아가야!

"맞아. 근데 엄마 아가는 이렇게 커버렸어."


소아과에서 마주친 애엄마와 네살 정도 되어보이던 딸이 생각난다.


몇년 후, 아마도 나역시 그런 말을 하겠지. 그리고 둘째를 결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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