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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킴 Jan 12. 2016

아들, 엄마 잘 하고 있니?

산후우울증, 아들, 그리고 나


때로 아이가 울고 보챌 때마다 이런저런 방법들로 원하는 바를 찾아 맞춰주기 위해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아기를 내려놓곤 한다.


엄마가 제 맘을 몰라주는게 서러운지 눈물 콧물을 뚝뚝 흘리며 더 서럽게 우는, 이제 5개월이 지난 아들에게 나는 매일 수십 번도 더 마음 속으로 묻는다.



아들, 엄마 잘 하고있는거 맞을까?

엄마랑 둘이 있는거 지겹지 않니?

심심하지 않니

엄마가 좀 더 나은 엄마였다면 덜 울고 더 웃었을텐데, 엄마로도 괜찮은 거니?



내 마음 한구석에는 그런 의문과 찌릿하게 남아있는 죄책감이 자리잡고 있다.

아마 정말 멋모르고 엄마 하나 믿고 나와준 신생아 시기에 잘해주지 못했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태어난지 며칠 되지않아 집으로 데려왔을 때, 모든 것이 변했다.


집에서 나는 소리라고는 아기 울음소리 뿐이었다. 하루에 고작 두세시간밖에 잘 수 없는 데에서 비롯한 육체적 피로와 내가 하고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또한 앞으로 십 수년 간은 계속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SNS에 올라오는 친구들의 불금 술자리 사진,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홍대 거리에서 어여쁘게 화장을 하고 찍은 동영상, 하나부터 열까지 이젠 내가 할 수 없는 범주의 머나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출산이란 걸 내가 너무 얕잡아봤던 것이다. 나는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엄마였고, 내 아들은 모든 의사표현을 울음으로밖에 할 수 없는, 웃을 줄도 말할 줄도 모르는 신생아였다.


신랑의 퇴근시간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사람과의 대화가 그토록 고팠던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맘마 먹자, 어머머 조금만 기다려, 엄마간다~ 우유 타고있어, 우리아들 왜울지요 쉬야했네 우쮸쮸쮸쮸


하루 종일 내가 하는 말은 저게 다였으니까.



한 달쯤 지나자 산후우울증이 절정으로 치솟았다.


퇴근 후 피곤함에 쭉 뻗어 쿨쿨 잠든 남편의 뒷모습마저 미웠고, 새벽 두세시까지 우는 아기를 안고 흔들며 창밖만 보는 내 모습이 가여워 매일 아기와 함께 울었다.


아마, 이유없이 새벽만 되면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에게 큰소리를 내고 왜우냐고 짜증을 냈던건 그래서였을 거라고 변명해본다.


하지만 아기이다. 순진무구하고 티끌하나 없는.

 '도대체 왜 우는데!' 하고 울음섞인 큰 소리를 치고나면 지독한 자괴감이 곧바로 휘몰아쳤다.



매일같이 그 한심한 짜증과 자책을 밀물과 썰물처럼 오고가며 나는 여전히 남들만 못한 모성애를 끌어안고 엄마노릇을 흉내낼 뿐이었다. 새벽에 겨우겨우 아들을 재우고 나면 곤히 자는 남편과 아이가 어여쁘기도 하고 너무너무 밉기도 했다. 야심한 시간, 그 감정의 격돌이 버거워서 홀로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들이켰다.



확실히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 산후우울증이란 병명 하에 내리깔린 '못난엄마의 감정폭발'은 60일 경 아기가 좀 더 많이 자기 시작해서 숨통이 트일 때쯤 없어졌고 그 전보다 훨씬 예뻐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의무감에 먹이고 재우고 치워줬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점점 아기는 내아들, 내새끼를 거쳐 우리 천사로 변모했다.


아기가 크는 만큼 엄마도 크는 거라는 말이 이토록 무거운 말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가 이토록 가슴시린 애틋함과 미안함의 산물이라는 것도.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18살, 엄마에게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과 원망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던 적이 있다. 그때 머뭇머뭇 마치 벌받는 어린아이처럼 그렁그렁한 눈을 바닥에 고정시키시며 작게 말하시던 우리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엄마가 미안해. 참, 엄마도 처음이다보니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 너한테 그랬네.

 한번 더 해볼 수 있으면 엄마도 이젠 잘할 수 있을텐데......"



그 마음을 이제 조금 알듯하다.


아마 울엄마도 내게 매일 속으로 묻고 있었나보다.


딸, 엄마 잘 하고 있니? 하고.



자면서 굴러온 아들. 건드리면 깰까 무서워 똑바로 되눕히지도 못했다.





얼마전부터 이유식을 시작했다. 이제 좀 먹이고 놀아주는 일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유식을 시작하고 나니 또다시 신생아 엄마가 된 듯 하다.


아기는 혀로 밀어내면 음식물이 밖으로 흘러 내린다는 것을 아직 모르며, 이유식이 담긴 그릇에 손을 담구거나 얼굴을 쳐박으면 축축해진다는 것도 모른다. 우유병을 빨듯 숟가락을 빨아대도 이유식이 계속 입으로 흘러들어오는 건 아니란 것도.


140일, 이유식보다 숟가락에 집착하던 아들...흑ㅠ


요즘엔 부쩍 큰만큼 엄마를 찾는 시간도 훨씬 많아졌다. 잠시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잠시 멍하니 쳐다보다가 나라 잃은 민족투사처럼 서럽게 울어댄다.


용변을 참고 다시 아들 옆에 자리를 잡는 순간 방긋 잇몸 미소를 날려주는데, 나는 그때마다 터질듯한 방광과 기습공격을 받은 심장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쓰러지곤 한다.


예뻐도 너무 예쁘고 귀여워도 너무 귀엽다. 심장이 자꾸자꾸 아프다.


동시에 무섭다. 예쁘다 예쁘다 말하면서도 점차 아들의 울음소리에 시큰둥해지고 때론 무시하고 내 할일을 하고 있는 내 스스로가.



울엄마처럼, 나도 앞으로 수십년은 더 묻고 또 물어야 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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