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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규 Apr 07. 2024

우리 승호, 김승호를 아십니까

마을 사람들은 이웃 김승호에 대해 말할 때면 “우리 승호”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런 식이다. 지리산 ‘옥탑방’인 우리집에 전기가 나가면,


“승호에게 말해 보게. 우리 승호는 금방 고칠 거구만.”


한겨울 예고 없이 수도가 얼면,


“승호에게 부탁혀. 우리 승호는 그런 부탁 외면할 사람이 아니구만.”


이런 호명에는 지리산 아래 전남 구례군 피아골 작은 산골마을 사람들의 어떤 마음이 담겨 있다. 예쁘고 잘난 존재들은 모두 어딘가로 떠났지만, 우리 곁에는 여전히 김승호가 있다는 자부심과 안도감 같은 것 말이다. 


많아봐야 한 달에 한 번 지리산 옥탑방을 찾기 때문일까. 김승호와 눈을 마주하고 편히 이야기 나누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풍채가 곰 같은 김승호는 나를 볼 때마다 수줍어했다. 길에서 만나면 고개 숙이며 눈인사, 좀 길게(?) 마주치면 별 의미 없는 날씨 이야기나 나눌 정도로 말이다. 

곰이 원래 그런가 싶을 정도로 김승호는 늘 샤이했다. 지리산 반달곰이 종종 등산객을 놀하게 하는 것처럼, 그런 와중에도 김승호도 가끔씩 나를 깜놀하게 만들었다. 몇 해 전, 김승호는 다람쥐처럼 나의 옥탑방 문을 작게 두드렸다. 


“표고버섯을 좀 땄는데... 드셔 봐요.”


내가 대도시 주민처럼 “뭘 이런 걸 다...” 하며 인사치레하자 그가 돌아가며 툭 던졌다. 


“있으니까 주지, 없으면 주고 싶어도 못 줘요.”


이 심오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돌아가는 그의 등짝이 러시아 불곰처럼 크게 보였다. 작년 초가을이었지 싶다. 그의 농장 옆을 지나는데 김승호가 “잠깐 있어 봐요” 하며 나를 불러 세웠다. 


“산에서 싸리버섯을 좀 땄는데.. 드셔 봐요. 호박이랑 볶으면 맛나요. 근데 호박은 있어요?”


김승호는 밭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더니, 내 팔뚝만 한 호박을 따왔다. 내가 다시 새침하게 “뭘 이런 걸 다...”라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김승호가 다시 툭 던졌다. 


“있으니까 주지, 없으면 주고 싶어도 못 줘요.”


마을에 전설처럼 돌고 도는 이야기에 따르면, 낯선 사람 앞에서 김승호가 늘 샤이한 건 아니다. 


몇 해 전, 지리산에 큰 비가 내렸을 때의 일이다. 계곡 물이 크게 불었는데, 관광객 일부가 미처 대피를 못했다. 한 가족이 계곡을 건너다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대피를 돕던 김승호는 급류에 몸을 던졌다. 관광객과 김승호는 한참을 떠내려갔다. 저 멀리까지 간 끝에, 김승호는 한 사람을 구출했다. 

마을 사람들은 별 일도 아니라는 듯, 잔잔한 어조로 ‘김승호 무용담’을 입에서 입으로 전했다. 혹시 과장된 전설은 아닌지, 김승호에게 직접 물었다.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느냐고, 그 큰물에 어떻게 뛰어들 수 있냐고 말이다. 김승호가 다시 툭 던졌다. 


“사람이 떠내려가니까, 뛰어 든 거죠 뭐....”


내가 멍하게 바라보자 그가 변명처럼 말했다. 


“저는 수영할 줄 알아요. 어릴 때부터 만날 냇가에서 놀았응 게...”


김승호의 무용담은 읍내까지 퍼져 군수 귀에 들어갔다. 기관장답게(?) ‘용감한 시민’ 뭐 그런 걸로 표창장을 주려고 했다. 상 받으러 오라고 몇 번을 불렀는데 김승호는 “뭐, 그런 걸로...” 하며 감히 군수님의 명을 어겼다. (훗날 이웃 형님의 간청으로 상을 받긴 받았다고 함.)


김승호는 대개 이런 식이다. 수도를 고쳐주는 건 “내가 할 줄 아니까”, 호박과 버섯을 주는 건 “있을 때 줘야 하니까”, 급류에 뛰어든 건 “사람이 떠내려가니까”, 놀라서 쳐다보면 “어릴 때 만날 놀던 데니까”, 상 받으러 오라고 하면 “뭘 그런 걸로.”


꽃 피는 봄날, 김승호는 지리산 피아골에서 두릅-고사리 등 산농사를 짓는다. 그의 밭은 지리산 자락 높은 곳에 있다. 차로 산길 끝까지 간 다음, 다시 두 발로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주변 풍경은 끝내 주는데, 농사를 ‘뷰’로 짓는 건 아니니 그의 노고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김승호는 이 높은 곳에서 힘들게 두릅을 키운다. 곰 같은 그에게 여우 같은 면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김승호에겐 그걸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김승호는 이 좋은 곳에서 키운 두릅을 싸게 판매했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정말 터무니없는 가격이었다. 


지난겨울부터 김승호 옆에서 내가 여우 짓을 좀 했다. 


“승호 씨, 그 가격이 말이 됩니까. 바가지 씌우라는 게 아니라 제값은 받아야죠.”


김승호는 “어떻게 비싸게 받느냐”며 나를 타박했다. 자기 농산물을 제값에 팔자는 사람을 여우 취급하다니. 어렵게 김승호를 설득했다. 내가 좀 팔아보겠다고 말이다. 


농민 김승호가 전망 좋은 지리산 자락에서 키운 두릅. 먹으면 입에서 꽃이 피는, 그렇고 그런 맛이다. 배송비 포함 1kg에 3만5000원이다. 


이젠 김승호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맥주도 한 잔씩 한다. 왜 이 산골사람들이 그를 “우리 승호”라고 부르는지, 이제는 잘 알겠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 나도 종종 “우리 승호”라고 부를 뻔할 때가 있다. 


지리산 정기를 머금었네, 청정 무공해 자연산.... 뭐 그런 말보다 나는 이 말을 앞세우고 싶다. 


“김승호가 키운 겁니다. 우리 승호는 나쁜 물건 팔 사람 아닙니다.”


착하고, 선하고, 용감하고... 이런 사람을 “우리 OO”라고 부르며 자랑스러워하는 문화는 이 땅에서 왕년에 급류처럼 지나가버렸다. “우리 승호”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철지난 동네의 답답한 사람들이, 나는 잘 되면 좋겠다. 오지랖 넓게 이런 일을 하는 이유다.   


두릅 좀 팔았다고 나한테 떨어지는 건 없다. 모든 건 김승호가 알아서 한다. 많이 주문해 주면 좋겠다. 그가 택배로 보낼 거다. 


* 김승호 : 010-8872-7385 

* 방법 : 

1. 문자로 주소, 이름, 연락처, 주문량을 남겨주세요. 새벽-한밤중도 괜찮습니다. 

2. 주문 순서대로 배송합니다. 물량 소진 되면, 배송 불가합니다. 

3. 계좌번호는 답장으로 김승호 씨가 알려드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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