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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만원으로 지리산 별장 구하는 법

by 박상규

그날도 저택에선 인기척이 없었다. 집 입구에 세워진 바위엔 OO펜션이라 적혀 있었지만, 저택의 오래된 단골은 고요와 침묵뿐인 듯했다. 그렇다고 오래된 폐가처럼 보인 건 아니다.


초봄의 매화를 시작으로 가을의 구절초까지, 그 집에선 꽃이 완전히 진 날이 없었다. 넓은 잔디밭은 신병의 머리처럼 짧게 유지됐고, 정원의 나무는 솜씨 좋은 이발사가 만진 듯 늘 단정했다.


지리산 피아골에서도 깊고 높은 곳에 자리한 이층집과 독채 두 동의 공간. 10년간 산책을 다니며 담장 너머의 저택에서 사람 본 적은 없어도, 늙은 산장지기처럼 우직한 관리자가 있는 건 분명했다.

무슨 마음 때문인지 그날은 그냥 지나치기가 싫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앱에서 ‘OO펜션’을 검색했다. 전화번호가 떴다. 번호를 누르니 한 남성이 받았다. 난 용건만 간단히 말했다.


“혹시 집을 빌려 줄 마음이 있으신가 해서요. 최소 1년, 장기임대 말입니다.”


남성은 “마침 집에 있으니, 들어와 보라”고 했다. 열린 출입구를 따라 저택의 내부로 들어갔다. 입구 쪽에 CCTV만 네 개였다. 정원수로 심어진 보리수의 붉은 열매가 땅으로 뚝뚝 떨어졌다. 출입구의 한쪽이 검붉었다.


내부의 풍경은 담장 너머에서 보이는 것과 많이 달랐다. 이층집 앞엔 수영장이 있고, 넓은 주차장만 세 개다. 집 바로 옆으로 시냇물이 흐르는데, 마당 쪽으로 또 작은 물길도 냈다. 물길 위로 꽃과 분재 등 화분 수십 개가 놓여 있다. 사방팔방,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푸른 지리산인데 굳이 또 화분을 가꾸다니.


“집을 빌려달라는 게 무슨 말이에요?”

주름 없는 얼굴 위로 흰머리가 풍성한 몸 좋은 남성이 주차장에서 화분에 식물을 옮겨 심고 있었다. 나이 가늠이 어려웠다.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선글라스 낀 사진도 있는데, 왕년의 홍콩 배우 주윤발을 묘하게 닮았다. 집 주인이다.


“집은 넓은데, 늘 사람은 없고 조용해서요. 집 한 채만 저한테 임대줄 수 있나 해서요. 연세로 말입니다.”


시골에선 월세, 전세보다는 연세라는 말을 자주 쓴다. 보증금이 없는 대신 1년 임대료를 일시에 지급하고 사는 방식이다. 2015년부터 약 10년간 나는 지리산 피아골에서 이런 방식으로 집을 임대해 세컨 하우스나 별장으로 이용했다.


“연세? 그게 뭔가요?”

집 주인은 정작 연세라는 말을 몰랐다. 이곳 토박이가 아닌 도시에서 사는 듯했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설명했다. 약 10년간 집 앞으로 산책을 다녔고, 볼때마다 빈집으로 보였으며, 그렇게 집을 비워두는 것보단 임대를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말이다.


“뭐 하시는 분이에요?”


자기 집을 오랫동안 ‘훔쳐본’ 자의 정체를 주인은 궁금해 했다. 내가 담장을 넘은 적 없다는 건 CCTV가 입증할 테니, 별 우려 없이 있는 그대로 이야기 했다.


“일은 잘해요?”


기사를 잘 쓰냐는 뜻인지, 드라마 대본은 재밌느냐고 묻는 것인지, 질문의 맥락이 잡히지 않아 나는 멀뚱히 가만히 있었다.


“화분이나 식물 가꾸는 거 좋아하시냐고. 여긴 온통 꽃, 나무라서 손 봐야 할 게 많아요. 일루 와보세요.”

주인은 나를 데리고 본격적으로 ‘저택 투어’를 시작했다. 집은 정원 포함 1500평이고, 창고를 포함하면 건물만 4채였다. 수영장 하나로는 부족했는지, 무릎까지만 담글 수 있는 일명 ‘족욕장’도 따로 있었다.


주인은 부동산보다 꽃, 나무, 잔디마당 등 자신이 가꿔 놓은 정원에 자부심이 강했다. 능소화, 백합부터 이름 어려운 온갖 종류의 식물을 읊으며 나에게 설명을 이어갔다. 꽃, 나무에 지식과 관심이 많은 듯했다.


실외를 마치고 실내 투어가 시작됐다. 2층집과 독채 두 동의 구조는 동일했다. 방, 거실, 부엌, 화장실 각 하나씩. 실내 인테리어와 살림살이 역시 비슷했다. 각 공간마다 TV와 에어컨이 두 개, 대형 냉장고 하나, 아일랜드 식탁이 딸린 부엌, 거실의 소파, 침실에는 돌침대 하나씩.


지리산 ‘세컨 하우스’를 선택하는 나의 기준은 하나다. ‘난 몸만 옮겨야 한다.’ 말 그대로, 숟가락 하나부터 에어컨, 세탁기까지 모든 게 완비돼 있어 몸이 들어가는 순간 바로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기적인 기준일 수 있지만, 시골엔 모든 걸 갖춘 빈집이 의외로 많다. 한시절, 큰 꿈을 품고 귀촌한 사람들은 대개 펜션을 지었다. 여가에도 유행이 있다. 펜션의 지위는 캠핑이나 소규모 에어비앤비 숙소에 밀린 지 오래다. 찾는 손님이 있다고 해도 여름 휴가철에만 붐비고, 7말8초를 제외한 모든 시간 비어 있는 집이 많다. 나의 지리산 별장은 대게 이런 집이었다.

실외-실내 투어까지는 약 30분이 걸렸다. 집을 안내하는 동안 주인은 질문을 퍼부었다. 일종의 면접이었다.


“그래서, 연세를 얼마나 내시려구요?”


본격적인 가격 협상. 면접을 통과한 셈이다. 몸만 들어와야 한다는 기준에 딱 맞아, 난 집이 마음에 들었다. 몇 번의 조정 끝에 독채 하나 빌리는 조건으로 연세 350만 원이 확정됐다. 주인이 중요한 이야기를 했다.


“저는 여수에 살아요. 아내와 저는 가끔씩, 일주일에 한 번 올까 하는 정돕니다. 저보다 자주 거주하실 수 있으니, 1500평 집이 박상규 씨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나한테 불리하거나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난 수영장에 물을 채워 둥둥 뜬 채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꽃, 나무, 잔디밭만 좀 관리한다 생각하시고 지내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지리산 피아골 저택은 ‘350만 원’에 내 집이 됐다. 정말로 주인은 여수에서 체류하며 피아골에는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이 넓은 집에 있다보면, 축구는 아니어도 족구 정도는 할 수 있는 잔디밭에 누워 있으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떠오른다.


영화에서 집 소유주는 동익(이선균)-연교(조여정) 부부지만, 실제로 집주인처럼 이용하는 쪽은 기택(송강호) 가족과 문광(이정은) 부부 아닌가.

이곳 피아골 별장에 있으면 보이는 건 산, 하늘, 구름, 나무, 꽃, 새가 전부다. 도로 아래에 위치한 집이어서 차는 물론, 자동차 소음도 드리지 않는다. 들리는 건 바람과 새 울음소리 뿐이다. 가장 보기 어려운 건 사람, 듣기 힘든 건 사람 목소리다.


원래 사람이 없는 산골이지만, 집의 위치와 구조가 사람 구경을 더 어렵게 한다. 사람보다 들 고양이가 더 자주 보인다. 사람이 그리워 일부러 아랫마을에 내려갈 정도다.


물론 내가 피아골 별장에 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울에서 보낸다. 요즘 내게 연락을 가장 자주 하는 사람은 가족, 동료, 친구가 아니다. 지리산 피아골 집주인이다. 이런 식이다.


“어디세요?”

“이번 주에는 내려 오시나요?”

“피아골 가실 때 연락 한 번 주세요.”

“꽃에 물을 한 번 줘야 할 거 같아서요.”

여수에 사는 집 주인이, 서울 사는 내게 피아골 정원 안부를 묻는 상황. 그제서야 주인의 첫 질문이 “일 잘하세요?”였던 게 떠올랐다. 피아골 저택은 그와 나의 공동관리구역인 셈이다.


나쁘지 않다. 저 푸른 하늘도, 이 넓은 지리산도, 이토록 조용한 저택도, 검은 밤하늘의 별과 은하수도, 다 좋다. 다만 한 가지, 종종 잔디밭을 오가며 잡초를 뽑을 때면 동네 엄니들이 늘 하던 말이 떠오른다.


“풀 뽑지 마! 어차피 네가 걔네 못 이겨!”


정말 그렇다. 풀은 빛의 속도로 자라고, 이 저택은 무려 1500평이다. 여수 남자와 서울 남자의 공동 집 관리, 이제 겨우 시작이다.


그나저나 이 집의 무엇이 나로 하여금 대뜸 “이 집 빌려달라”는 말을 하게 만들었을까? 왜 나는 이 집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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