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UX 라는 단어를 접한 것은 16년 전, HCI 라는 단어로부터 시작했다. 대학교의 수업으로 접했고,사실 그 시절 생소한 단어로 '이런 것도 있구나' 라고 그냥 넘어갔던 기억이다. 이후 이 분야에서 내가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던 영역이다. 2019년 현재 나는 UI를 설계하는 업무를 12년째 지속하고 있다. 웹으로 시작해서 모바일로 넘어오는 모든 시절을 겪었지만, 나는 특이하고 매력적이게도 '자동차'에 장착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대한 설계 업무를 하고 있다. UI 설계는 여전히 'UX 디자인' 으로 불리는 말도 안되는 현실이지만, 결국 '설계' 업무에 가깝다는 것을 먼저 말해둔다. 일을 시작했던 2007년 즈음은 많은 리서치와 스터디를 통해 역량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애쓰던 기억이지만, 10년이 넘은 지금에서 스스로 내린 결론은 단 한가지다.
"나는 UX를 디자인 할 수 없다."
인간에게는 모두 '확증편향'이 있다. 사실을 접했을 때, 사실의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보다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확증하고 싶은' 태도를 말한다. 많은 연구자분들이 이러한 확증편향을 경계하지만 그 강력한 힘에서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다. 안타깝게도 연구 상황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은 발생한다. 논문을 쓰기 위한 실험에서 '가설'을 세우고 가설이 맞는지 증명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증명 과정에서의 데이터가 모호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가설이 맞는' 방향으로 데이터를 해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이 현상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기에 앞서 시간의 촉박함, 재실험의 추가 비용 등의 현실적인 문제와 충돌하는 부분을 먼저 고려해야만 한다.(물론 많은 연구자 분들께서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긴 하다.)
그렇다면 "객관적인 경험은 존재할 수 있는가?" "실험에 의해 증명된 '더 나은 경험'은 얼만큼 신뢰할 수 있는가?" 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많은 디자이너 분들이 UI 및 GUI를 디자인 하면서 사용자에게 긍정적인 경험을 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의 근본은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노력'의 근본은 '나의 경험'이다. 벤치마킹을 하고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써 보고 또 써보는 노력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은 "내가 경험했을 때 좋은" 방향을 가지게 된다.
당연하게도 사람은 자신의 삶의 범주 안에서 의사 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나의 경험인가, 사용자의 경험인가?"
1800년대에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디자인사에 길히 남을 명언을 남겼다. 디자인계의 살아 있는 전설인 디터람스와 하라 켄야는 최소한의 '미니멀리즘'을 강조한 디자인을 했다. 최근 앱 디자인의 트렌드도 동일하게 나아가고 있다. 타이포 그래피로 정보 표시의 정확성을 높이고 그래픽 이펙트는 최소화 하면서 화면 전환 모션을 짧고 간결하게 적용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현상들을 "2019년 UX 디자인 트렌드" 라고 올해 초에 여기저기 뿌려졌다는 것이다. 이미 1800년대부터 정의된 대원칙이 아닌가?
디자인 뿐만이 아니다. 유명한 스티브 잡스의 1997년 '마케팅의 본질' 인터뷰 동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L2S1QQsCOiE) 에서도 핵심 가치를 찾고 본질을 추구하여 그 메시지를 소통할 방법을 찾는다고 하였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본질'에 대한 이야기는 UX 분야의 수장들이 '경험의 본질'을 예로 들어 자주 하는 이야기이며 완벽하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UX에 국한된' 이야기인 것일까?
이는 굳이 1997년 스티브 잡스의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기업을 경영하는 모든 분들께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본적인 원칙인 것이다.
다시 한 번 질문한다.
"UX는 디자인의 영역인가? 사람을 생각하는 근본적인 원칙인 것인가?"
이에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UX라는 타이틀을 가진 모든 분들께 죄송스런 이야기가 될 것이며, 나 역시 이 범주 안에 포함된다. (개발로 범위를 한정하여) IT 서비스 및 제품을 제공하는 모든 기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직군이라고 한다면 디자이너와 개발자 이다. 그렇다면 없어도 될 직군이라고 한다면...기획자와 UX리서처 이다. 안타깝지만 기획자와 UX 리서처는 Nice to Have 이지, Must to Have가 아니라는 현실이다. 더 좋은 제품,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필요하지만 기업이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어떤 인력을 밖으로 내몰겠는가?
이러한 현상은 서비스의 범위가 온라인으로 한정될 때 심하게 드러난다. 오프라인 서비스가 포함된다면 기획자와 UX리서처가 활동할 범위가 넓기 때문에 일단 필요하다. 그러나 온라인으로 한정된다면 기획은 경영층 또는 스텝부서(전략)에서 가능하며 UX리서치는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병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에 AI의 발전으로 데이터만 제공된다면 유효한 사용자 데이터를 제공해 주는 많은 서드파티 업체가 많이 생겨 기획자와 UX 리서처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한 증거로 UX타이틀을 가진 분들이 소속된 부서에 대한 경영층의 대응을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부분이고, 핵심적인 일이다."라고 항상 말하지만 부서의 인원 충원이나 직접 지원은 매우 빈약한 것을 느낀다면 그것은 당신의 부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동차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아무래도 브랜드에 대해 와닿는 현실이 많다. 자동차는 고가의 제품이기 때문에 '외부에 보여지는 나의 모습'을 투영하는 브랜드 가치가 많이 반영되는 편인데, AUDI, Benz, BMW, Porsche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물론 이 역시 좋은 UX 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으나, '브랜드 가치'인 것인지, 'UX' 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 둘 다 맞는 것이라고 한다면 UX는 대체 어디까지 그 범위를 확장해야 하는 것일까?
또한 자동차를 운전하는 감성도 이야기 해 보자. 주변에 독일 차를 타시는 분들의 대부분은 처음 차도 독일차고 이후로도 계속 독일차를 타시는 분들이다. 일본 차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분들이 말하는 '경험'은 믿을만한 것일까? 자동차는 그 소비재의 특성상 교체 주기가 매우 길고 쉽게 바꾸기 어렵다. 독일차에서 독일차로 바꾸시는 분들은 그들이 가진 '익숙함'을 추구하는 것이지, '더 나은 경험'을 논하기에는 경험의 스펙트럼이 너무 좁다. 또한 한국차에서 독일차로 바꾸시는 분들께도 궁금한 것은, 10년 전 한국차에서 1년전 독일차로 바꾸고 나서 "역시 독일차의 경험이 더 뛰어나" 라고 판단하기엔 시간의 격차가 너무 큰 것이 아닐까?
이런 공격적인 글이 보여질 때, "그것도 사용자 경험(UX)이야" 라고 반론을 받게 된다. 당연히 맞는 말이고, 완벽하게 인정한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을 던져본다.
"UX의 범위는 대체 어디까지이고,
UX를 디자인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만큼 당신의 권한은 크고 넓은가?"
강의를 하거나, 업계 분들을 만날때면 으레 하는 이야기가 있다. "회사에서 커피를 타는 것도 UX이다. 저 사람이 커피/프림/설탕의 비율이 얼마인지까지 다 고려된 최적의 맛을 경험하게 하는 것도 UX 아닌가?".(결국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커피는 맥심 커피믹스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경험의 일부이고 사용자는 브랜드, 정치적 성향, 개인의 성장 과정, 가족관계, 친구관계 등 모든 것의 영향을 받는다. 사용자의 경험에 대한 리서치나 그 어떤 실험도 모든 통제변인을 고정할 수 없으며 그저 최대한의 노력을 할 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UX 디자이너' 라는 이름이 세상에 떠돌고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결론내리려 한다.
이 업계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UX를 디자인한다 = 불가능'이라고 결론을 지으며, 오히려 사용자의 경험을 저해하거나 역행하는 설계를 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진다. 나의 경험은 사용자의 경험이 아니며, 그 스펙트럼도 매우 좁기에 무엇도 정의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해야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디자인(=설계)할 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들이 편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 주면 좋을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과 그것을 현실화 시키려는 노력을 할 뿐이다.
사용자 경험 따위는 난 모르겠고 자신도 없다.
그저 내 가까운 사람을 배려하고 그들을 생각하는 디자인을 할 뿐.
(별개로, 조직에서 밖으로 내몰리지 않기 위한 나만의 Skill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