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첫 번째 서사
너와 나의 9번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조리원에서 겪었던 일들인데, 뭐 특별한 일이 있을까 싶지만, 특별한 일이 너와 나에게 일어났어. 병원 3일이 되던 날, 너와 나는 병원 같은 건물 위층에, 위치한 조리원에 갔어. 엄마는 두 언니를 낳으면서 조리원 대신 할머니가 엄마 곁에 있었어. 그때는 할머니도 젊었으니 가능한 일이었지.
너를 낳을 당시 너무 먼 곳에, 있었고 할머니는 세월이 쌓여, 엄마로 인해 고생할 수 없었어. 집과 가까운 조리원은 엄마에게는 새로운 세상이었어. 수유 시간을 빼곤 엄마 혼자 온전히 쉴 수 있었지.
산후 요가도 하고, 같이 입소한 동기들과 대화도 나눌 수 있어 이색적이었어. 조리원 들어온 지 삼 일째 아침, 네가 엄마 병실에서 수유 후 곤히 잠든 사이, 엄마도 잠들었지. 그때 꾼 꿈이 기억나.
단발머리 할머니가 조리원 병실 앞에서 너를 보겠다고 하는 거야. 꿈에서 엄마는 너를 보여주면 안 될 거 같아 실랑이를 벌였어. 할머니는 너를 꼭 봐야겠다고 하고 엄마는 안 된다고 그냥 돌아가시라고 서로 아옹다옹했어. 그러다 잠이 깼고 너를 봤어. 아주 평온하게 자고 있었지.
넌 신생아실로 가고 꿈이 싱숭생숭해서 할머니께 전화했어. 그리고 엄마가 꾼 꿈에 대해, 물었고 할머니는 삼 일상 밥을 먹으러 오신 거 같다면서 조리원에서 나오는 아침상으로 기도를 해보라 하셨지. 할머니는 “여니를 보러 온 거 같아. 건강하진 보려고 온 할머니를 그렇게 보냈으니, 아침에 꼭 기도해” 덧붙였지. 엄마 꿈에 보인 그분은 할머니가 말하기를 삼신할머니라고 했어.
조리원 음식으로 정성껏 기도했어. ‘건강한 아이 저에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초라하지만, 많이 드시고 가세요.’ 그 후로 더는 할머니는 꿈에 보이지 않았어. 사실 할머니가 너를 보자고 했을 때, 너를 보여주면 너를 데리고 갈 거 같은 기분에 무서웠어. 너를 어떻게 얻은 아이인데, 내가 잘 키우겠다는 약속 하며, 기도했어.
꿈을 꾼 후, 넌 배꼽이 떨어졌어. 일주일이 되지 않은 너는 배꼽부터 정리했지. 작고 귀여운 너를 안으면 안 되는데, 계속 안고 또 안았던 것이 원인이었을까? 눕히면 깼지. 엄마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이었어.
생후 일주일이 된, 넌 등센서가 생긴 거지. 아주 작은 소리에도 놀라고 촉감으로도 깨버리는 너를 바라만 봤어.
그렇게 넌 오감이 섬세한 아이로 자랐어. 미각, 후각, 청각, 촉각, 시각 모두 아주 작은 것에 반응하는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엄마의 고민은 깊어졌어. 그 삶을 처음 살아봐서 그랬을 거야. 아무리 언니들을 키웠다지만, 너는 처음이니까 당연한 거였어.
유모차나 흔들 침대와 의자, 카시트까지 온갖 물건에 눕혀도 결국 엄마 품이었어. 눈을 뜨고 감아도 엄마 품이 늘 그리운 너를 품에 가두고 키웠어.
너를 인정하고 한숨 돌리던 어느 날, 혼합 수유로 잘 지냈지. 모유로는 너를 감당하기가 부족했어. 밤에는 한 시간 간격으로 울었으니 말 다한 거지. 분유를 먹이고 재웠어. 새벽녘에 일어나 밥 달라고 울었으니, 분유는 밤에만 먹였어. 너와 나는 평화로운 일주일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밤, 분유를 타서 너의 입가에 젖병을 갖다 댔어.
근데 네 입은 열리지 않았어. 어디 아픈가 싶어 열 체크에 기저귀를 열어보기도 했어. 아프지 않은 걸 확인하고 다시 젖병을 입술에 갖다 댔지만, 넌 입을 열지 않았지. 너무 놀라서 조리원 동생에게 물었어. 넌 결정한 거라고 하더라.
분유 대신 모유를 선택한 네 모습을 보고,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네가 스스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신기했어. 아빠를 닮아 먹성이 좋은 너를 감당하기에 모유가 부족했어. 엄마는 네 선택을 받아들이고 대책을 세웠지.
너라는 아이를 처음 만난 엄마는 너를 받아들였고, 대책을 세웠어. 일단 모유양이 늘어날 수 있는 음식이며 한약까지 먹게 된 거야. 그래야 배를 채우고 쑥쑥 자랄 거니깐. 그 바람 하나로 버티며 혼합 수유는 안녕을 고하고 모유로 15개월을 키워낸 엄마였어.
신생아인 너는 오감이 섬세하다는 걸, 알아가는 첫 번째 단추였어. 과연 까다로운 너의 입맛을 맞추며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어.
여니를 키우는 과정은 인고의 시간이었어. 너를 키우는 모습을 본 어른들은 유별나다고 했어. 하지만 엄마는 너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보며 너에게 맞는 육아를 할 뿐이었어. 그게 맞는 거라, 생각했으니까.
100일 기적을 기다리며 매일 너를 안고 청소와 요리하면서, 빨래를 널었던 기억이 나. 먼지를 함께 마시던 너는 엄마를 많이 사랑했던 거야. 언니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안겨준 너는, 엄마가 하지 않던 포대기까지 사용하게 했어. 아기띠로는 청소를 할 수 없었어. 등에 너를 업고 두꺼운 포대기로 둘둘 말아야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으니까.
여니야, 인생도 마찬가지야. 아이를 키우는 마음으로 살아야 해. 앞날은 아무도 모르잖아. 닥쳐봐야 알아. 어떤 길로 가야 나와 결이 맞는지, 내가 헤쳐 나갈 수 있는 범위를 정할 수 있어.
할머니가 “여니는 쌍둥이 키우는 것과 맞먹네.”라고 했어, 그 말뜻은 순둥이는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엄마가 보기에는 너는 특별한 거야.
몸은 고되었지만, 엄마를 한층 더 성숙한 엄마가 되었던 건, 너였기에 가능한 거야. 각자 속도가 있듯 너에게 맞는 속도에 발맞추어 걸었어.
인생은 그런 거야. 내 속도에 맞게 걸어가면 돼.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면 되니까. 누가 먼저 일등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야.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거야. 엄마가 너를 키우고 있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면 되는 거야.
엄마는 조금씩 성공이라는 맛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어. 너의 오감에 맞춰 엄마도 더 섬세한 감각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까. 아이가 엄마를 키우고 있는 거야. 쾌적한 공간에서 걱정 없이 보내는 것만으로도 너와 난 축복받은 거고, 각자의 속도에 맞춰 각자 삶을 살아가는 거, 사계절을 마음껏 누리며 제철 음식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서 ‘아, 행복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인생을 잘 살고 있는 거야.
엄마는 여니를 키우면서 새로운 경험을 다양하게 했고 앞으로 또 하겠지. 그걸 한 장씩 써 내려가려고 해. 너도 언젠가는 엄마가 될 거잖아. 그때 육아에 자신이 없으면, 이 페이지를 보렴.
그럼, 육아는 순하게 흘러갈 거야. 인생이 힘겨워 한숨을 쉬고 있다면 이 글을 읽어 봐. 너도 너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낄 거야. 거창한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보다, 작은 것에 성취감을 느낀다면 더 큰 성취감이 너에게 오고 있다는 걸 명심해.
넌 엄마에게 최고의 딸이야. 엄마를 일으켜 세운 건 다름 아닌 너였으니까. 언젠가 네가 세상을 살아갈 때, 이 페이지가 네 손에 쥐어진다면 좋겠다. 그때도 네가 오늘처럼 특별한 아이였음을 기억하기를. 인생은 너의 속도에 맞게 가기를.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이 엄마는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