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방송반 PD를 했었다. 한창 학교 방송반을 배경으로 다룬 청소년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시기이기에 (이런 얘기하는 나는 옛날 사람…), 당시 방송반을 지원하는 친구들도 어마어마했고 그만큼 경쟁도 치열했다.
이런저런 방송 용어들도 외우고 기계를 익히는 것은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직접 선곡한 음악의 CD들을 방송실에 가져와 점심시간에 틀 때면, 점심 도시락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만큼 짬을 내서 허겁지겁 먹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간혹, 방송을 끝내고 교실로 돌아가면 몇몇 친구들이 “오늘 점심 방송 선곡 좋았어~”라는 얘기를 해주곤 했는데, 그런 피드백 듣는 재미로 열심히 했더랬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나는 라디오 부스 밖에서 기계만 만지고 있었다는 것. 저 안에 들어가 마이크 앞에 앉아본 적이 없으니, 내 목소리가 방송을 타는 ‘맛’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그 매력을 알 리가 없었지.
모두가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돌아다니며 영상을 보는 시대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라디오를 사랑한다.
아이를 낳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와 둘만 집에 남겨 있을 때, 말할 상대가 없어 답답하기 그지없던 나에게 즐거움을 준 것은 핸드폰도 아니고 SNS도 아니고 라디오였다.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DJ와 게스트가 나누는 이야기에 같이 웃고 눈물을 훔칠 수 있었던, 그래서 사람들과 고립되어 있던 시간에 나를 사람들과 엮어준 것이 바로 라디오였으니까.
몇 해 전 쓴 에세이 <육아 일기 말고 엄마 일기> 덕분에 불교방송 TV에도 출연해 보고, CBS 라디오 저출산 캠페인의 한 코너에, 잠깐 출연했던 적은 있었는데, 다시 라디오 출연의 기회가 주어졌다. 10월 10일 ‘임산부의 날’을 맞이하여 교통방송 라디오 <박진희의 굿모닝 코리아>에 게스트로 출연하게 된 것.
아침 6시부터 7시까지 진행되는 생방송이라, 그 시간에 맞춰 이동할 경우 교통 상황이 어떨지 도무지 감을 잠을 수 없었다. 어두컴컴한 도로에 나 혼자 차를 몰고 가는 것은 아닌가 싶었지만, 아침 5시에도 거리에는 부지런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꽃시장도, 수산/과일 시장도, 시장 주변은 언제부터 하루가 시작되는 것인지 그 분주한 에너지가 잠시 스쳐가는 나에게도 크게 작용하는 듯했다. 집에서부터 교통방송 라디오 방송국까지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그 얼마 안 되는 시간부터 매우 고무되기 시작하는 하루였다.
아침을 일찍 여는 부지런한 사람들을 위한 라디오 부스에 들어서는 기분은, 설레는 것 외에는 없었던 듯하다. 라디오 부스는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몇 없지만, 그 인원에 비해 커다란 책상과 넓은 공간이 가슴을 두둥거리게 만들었다. 부스 밖에서 모니터를 통해 PD님과 작가님이 알려주는 청취나 문자들, 노래가 나가 마이크가 꺼져 있는 동안 잠시 나누는 담소들이 생소하면서도 부럽기도 했다. 라디오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니, 듣는 사람도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는 듯 보였다.
임산부의 날인 만큼 아이를 키우면서 좋은 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 했던 시간이었지만, 나는 라디오 방송 그 자체가 너무 좋았다. 어떻게 라디오와 더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요 며칠 계속 서치 중이다.
나는야, 누가 뭐래도 태생이 아날로그 인간.
https://www.youtube.com/watch?v=8wsrm6zCGYc
10/10(목) 임산부의 날 특집! 굿모닝 코리아, 이른 아침 진행하는 대국민 라디오 설문조사[개그우먼 김성희, 김지연 작가 출연]
2024.10.10에 출연했던 교통방송 라디오 방송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