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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사월 Aug 24. 2022

그리움을 복제하는 마음

05번째 필름 : <애프터 양> 조지 시점


“테크노가 친구도 사귀는 줄 몰랐네요”


나도 모르게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버렸다. 미카밖에 모르는 것 같던 양에게 친구가 있었다니. 놀라움과 감탄이 섞인 말이었지만 어찌됐건 지금의 제이크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상처를 준 게 아닌가 싶었는데 제이크는 그저 으쓱하고 넘길 뿐이었다. 그래,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지. 그래도 비키와 아이들을 불러 물어보았다. 그 정도 성의는 보일 생각이었다. 아이들은 사진 속 여자를 몰랐지만 비키는 한 눈에 알아봤다. 


“본 적 있어요. 그 집에서요. 양이 비밀로 해 달라고 했어요. 

복제인간 싫어하시죠? 복제인간이에요. 하지만 정말 착하고 다정해요. 우리처럼요.”


끝의 말은 덧붙이지 않아도 좋았을텐데. 그러나 그 마음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비키는 매일매일 제이크 같은 사람들과, 세상과 싸우고 있다. 편견 없는 척 하면서도 내심 복제인간을 불편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복제인간, 심지어 쌍둥이인 딸들을 키우면서. 하지만 비키도 내심 ‘우리처럼’이란 말을 뱉은 자신에게, 그런 말까지 꺼내게 만든 제이크에게 화가 났는지 먼저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아마도 제이크가 어설픈 사과를 하려 해서 더 화가 났을 것이다. 그러나 제이크는 아직 그 마음을 모른다. 모른 채 지푸라기라도 잡듯, 경멸하는 우리의 집에 양의 친구를 찾으러 왔다. 알게 되면 마음이 아프겠지. 저런 사람일지라도. 


비키가 들어가자 한층 더 시무룩해진 제이크에게 다음에는 꼭 밥이라도 같이 먹자고 했다. 제이크는 그러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정말로 그가 올까? 그를 배웅하고는 마당에서 잠깐 담배를 피웠다. 집으로 바로 들어갔다간 비키의 화만 돋울 것이다. 


‘양이 사람이었다면 복제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요’ 

이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던 것을 애써 눌렀다. 이제는 우리의 마음을 아느냐고 묻고 싶었다. 당신은 인간 존엄성을 위해 복제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그것을 선택할 필요가 아직은 없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모른다.


쌍둥이에게는 언니가 있었다. 자연 임신이 흔치 않은 시대이지만 우리는 운이 좋았다. 딸이었고, 비키를 꼭 닮았다. 내 어머니만 자기 막내 여동생을 닮았다고 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갓 태어난 아기에게 세상을 먼저 떠난 이모를 닮았다는 말이라니. 딸은 오래 살지 못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이후 시험관 시술을 몇 차례 해 보았지만 잘 안됐고 입양 이야기를 꺼내려던 차에 비키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유전자가 복제된 아이를 갖고 싶다고.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무엇이든 가능하지만 가능한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세상에서, 복제인간이라니. 우리의 아이는 세상을 너무 일찍 떠서 유전자도 채취되지 못했고 또 복제는 완전한 타인이거나 3촌 이상의 관계에서만 장려되었다. 그렇게 설득하려 했다. 복제한다 해도 우리의 아이는 아닐 것이고,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우리가 살아온 세상보다 더 타자를 배척하는 곳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비키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비키가 원한 유전자는 내 이모의 유전자였다. 아이가 막내 여동생을 닮았다는 어머니의 그 한 마디 때문에. 차별할 세상이 문제라면 자기가 차별과 싸우겠다는 아내의 마음을 끝까지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쌍둥이를 낳았다. 일란성 쌍둥이로 수정된 건 시술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그마저도 마음이 놓였다. 내가 먼저, 그 다음에 비키가 세상을 떠나도 아이들에게는 서로가 있을테다.


비키는 자신의 말대로 늘 아이들의 편에서 싸웠고 나는 내 나름의 방식으로 싸움을 이어갔다. 제이크에게 계속 손을 내미는 나를 비키는 영 못 마땅해 했지만 이게 아이들이 세상에 더 익숙하게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내 방식이었다. 양을 잃어본 제이크는 무언가 좀 다를까. 이제 그도 그리움을 복제하는 마음을 알까. 


저녁이 준비되었다고 아이들이 불러 집으로 들어갔다. 부엌에서 비키는 통화를 하고 있었다. 


“… 제이크가 왔었어. 응, 미카의 아빠. 자기 사진을 들고 누구인지 아느냐고 묻더라고. … 아니, 본 적은 있지만 잘은 모른다고 했어. 그 사람 좀 그래. 무례한 사람이야. 만나면 기분만 상할 수도 있어. 에이다, 그래도 제이크를 만나보고 싶어?” 


비키는 제이크가 집에 있는 시간을 말해주고는 전화를 끊었고, 내가 뒤에 와 있는 것을 보고는 다시 화난 표정을 지었다. 양의 친구를 알고 있었구나. 테크노가 친구를 만나는 것을 보았을 때, 그 친구를 가족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할 때, 그리고 그 친구도 아이들처럼 복제인간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아내의 마음은 어땠을까. 반가웠을까. 아니면 에이다에게 양 말고는 친구가 없을까 봐 걱정됐을까. 나는 그냥 비키를 안았다. “잘했어. 양의 친구도 양을 보내줄 기회가 있어야지. 둘 다 충분히 그럴 자격 있잖아.” 


제이크도 양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테크노가 숨길 수 있는 것과 줄 수 있는 마음에 대해, 구분 지어지지 않는 사랑에 대해. 그도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때엔 우리, 제이크와 카이라와 미카, 그리고 에이다를 불러 함께 바베큐 파티를 하자. 우리 딸들과 미카와 양이 바라던 대로. 그 자리에 양은 없겠지만 그도 함께 하고 있을 거다. 미워하고 분노하고 차별하는 인간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사랑하고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양에게 영혼이 없을 리 없으니까. 가장 인간다운 영혼은 그에게 있을 테니까. 






* 이 글은 영화 속 대사와 장면에 기반해 인물의 시점에서 창작한 허구의 이야기로 작품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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