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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Sep 17. 2022

집 - 구로성심병원 장례식장



출발 전 티맵이 알려준 건 37분이었다. 그러나 내가 실제로 간 시간은 1시간 정도. 어젯밤에 찍어봤을 때는 분명 자유로로 안내했는데 출발할 때는 추천 코스가 제2자유로를 타는 길이었다. 제2자유로를 타고 가는 길은 바로 어제도 망원동 엄마네 집에 가면서 겪었는데, 자유로가 끝나고 월드컵공원 부근에서 계속 막혔다. 그쪽에 노을공원인지 하늘공원인지 여튼 월드컵공원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장에 못 들어간 차들이 그냥 길가에 불법주차를 줄줄이 해놨다. 그러니 멀쩡한 도로를 가던 차들이 주차된 차들을 피하느라 깜박이도 안 켜고 왼쪽으로 침범하기 일쑤. 어제도 그런 차가 있어 룸메랑 몇 번이나 기겁을 했다. 오늘은 혼자 가는 길이라 아무리 놀라도 내 소리를 들어줄 귀가 없다. 나올 때는 몰랐는데 출발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와이퍼봉을 위로 한번 올리면 자동으로 빗물의 양을 감지해 와이퍼가 작동되는데, 비가 어정쩡하게 와서 그런지, 시야를 방해할 정도로 빗물이 쌓여도 와이퍼가 작동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수동으로 내가 한번씩 움직이며 가야 했다. 틀어놓은 라디오는 듣기 싫은 파열음을 냈다. 차의 수신기가 안 좋은지, 서울 한복판에서도 라디오가 자꾸 지지직거린다. 


구로성심병원은 처음 가보는 병원이다. 제2자유로-강변북로-양화대교를 지나고 나니 병원은 금방이었다. 주차장은 공사 중이었는데 건물이 오래되었는지 상당히 협소했다. 출입구의 뱅뱅길도 맞은편에서 다른 차가 오면 무조건 서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좁았다. 다행히 마주오는 차가 없어서 서지 않고 한번에 내려갈 수 있었다. 지하2층은 주차 자리가 2개밖에 없어서 지하3층에 댔다. 주차각이 한번에 안 나와서 여러 번 핸들을 이리저리 돌리고서야 무사히 차 뒤꽁무니를 양쪽 차 사이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장례식장이 지하2층인지, 주차장에서 장례식장으로 바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는데, 그리로 갔다가 바로 분향소가 보여서 깜짝 놀라 다시 문을 닫았다. 오는 길에 부조금 인출을 못 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의 로비로 나가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무얼 찾느냐고 물어봤다. 친절하신 것 같아서, 현금인출기를 찾는다고 했더니 손가락으로 요 앞의 차 다니는 길에 있다고 알려주신다. 그런데 병원 안에도 차가 다니고 병원 밖에도 차가 다니고 있었다. 대부분 장례식장이 있는 병원은 내부에 현금인출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병원 마당을 지나 아저씨가 가리킨 구석으로 갔더니 거긴 장례식장 입구였다. 부조금 봉투와 컴퓨터용 사인펜이 여러 자루 흩어져 있었다. 옆에 주차요금정산기는 있었지만 현금인출기는 없었다. 둘러보고 여기엔 없다보다 하고 뒤를 돌아 나오는데, 아까 길을 알려준 아저씨가 나를 쫓아왔다. 그러면서 자기가 말한 길은 여기가 아니고 병원 밖으로 나가는 길인데 왜 이리로 왔냐고 했다. 아 그런가요, 저긴 줄 알았어요. 이제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아저씨는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똑같은 말을 점점 더 큰소리로 점점 더 화를 내며 네 번, 다섯 번... 처음에는 길을 알려준 것이 고마워 정중히 인사했고, 내가 가는 모습을 보고 따라 나와서까지 알려주니 더욱 고마워 재차 인사를 했지만 아저씨가 같은 말을 반복할수록 나는 점점 더 기분이 나빠지고 있었다. 그만해 그만하면 알아 들었다고. 이 길 아니었으면 저 길이겠지. 사람이 잘못 갈수도 있지 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 결국 빠르게 걸어 병원을 빠져나가면서 마무리 인사를 하고서야 아저씨는 내 옆을 떠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현금인출기는 병원 문을 나서자 바로 보였다. 국민은행 기계였다. 요즘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뺄 때는 카드투입구가 실제와 같은지 비교하라는 주의 문구가 나오는데, 화면에 뜬 투입구는 흰색이었고 실제로 달린 투입구는 파란색이었다. 어쩌지? 내 카드 복제되는 건가? 모양은 똑같은데 색깔이 다르네. 여러 곳에서 돈을 뽑아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두 개의 국민은행 카드 중 돈이 더 적게 든 계좌의 카드를 넣었다. 


현금을 부조금 봉투에 넣고, 이름을 썼다. 손에 든 작은 주황색 천가방에 봉투를 넣었다. 나는 바로 이 가방을 만드신 분의 조문을 왔다. 그래서 검은 티 검은 바지 검은 로퍼와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주황색 가방을 들고 간 것이다. 가방을 만들어 주신 분은 이보람 작가님의 어머니 지연식 님이시다. 가방의 이름은 '엄마가 만든 북백'이다. 


연남동에서 헬로인디북스(이하 헬로)라는 책방을 운영하시는 보람 님은 내가 처음 엄마의 요리책 <엄마가 알려준다>를 독립출판으로 만들고 입고하면서 알게 되었다. 헬로에 입고를 하기 전에는 얼굴도 모르는 분이었는데, 많은 책방 가운데 유독 우리 엄마의 요리책을 좋아해 주시고 널리 알려주셨다. 많이 팔아주신 건 두말하면 잔소리. 그렇게 책으로 드문드문 연결되다가 내가 헬로의 두 번째 공간에서 오케이 워크숍을 열게 되었고, 그날 방어회를 먹으며 술도 마셨고, 그후로 보람 님이 헬로에서 출판하는 책의 원고의 교정을 내게 의뢰하시면서 본격적으로 관계를 쌓았다. 보람 님의 책 여러 권을 교정봤고, 나중에는 내가 에세이 시리즈를 진행하게 되면서 보람 님께 채식 에세이를 써보자고 제안해 나는 기획 및 편집자로, 보람 님은 작가로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함께 작업한 책이 <고양이와 채소수프>다. 지금도 많은 분들이 호평하는 이 책까지 그러니까 나는 꽤 여러 권, 보람 님의 글을 샅샅이 읽게 되었다. 그 모든 글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분이 바로 보람 님의 어머니이시다.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식당 이야기, 어머니의 요리 이야기, 어머니 간호한 이야기, 어머니의 병세, 어머니와 나둔 다정한 대화, 어머니 댁에 오가는 길과 어머니와 아버지의 일화들.... 그 수많은 글 속에서 나는 보람 님의 어머니 지연식 님을 만났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삶의 태도와 무엇이든 그 손끝에만 닿으면 빛이 나고 맛이 있어지는 마법, 보람 님의 다정한 책방에 언제나 걸려 있던 어머니가 만드신 작은 북백. 어쩌면 우리 엄마와도 꼭 닮은 어머니. 


그러니 부고를 받고 인사를 드리러 가야겠다는 마음이 당연히 일었다. 마침 추석 연휴 기간이었고 집에서 쉬는 날이라 다행스럽게도 지체없이 찾아뵐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 들어서는데 검은 상복을 입은 여성분이 나를 보자마자 보람 님을 부르셨다. 아니 내가 보람 님 지인인 걸 어떻게 아셨지? 싶었는데 들고 간 가방 때문이란다. 그 가방을 들고 온 사람이 벌써 세 번째라고. 잔잔히 웃고 계시는 어머니의 사진 앞에 향을 피우고(향에 불이 잘 안 붙어서 한참 불에 대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벌써 붙은 거였다. 괜히 상주분들을 오래 기다리게 했다.) 인사를 드리고 서서 기도를 했다. 분향을 마치고 밥 먹으라는 보람 님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혼자 와서 어색하니까 그냥 가겠다고 했다. 보람 님이 그럼 합석시켜 줄 테니까 다과라도 들고 가라면서 자리에 앉혀주셨다. 곧 나처럼 혼자 온 분이 합석을 하셔서 인사를 나누고 함께 떡과 과일을 먹었다. 


두런두런 독립출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접객실 내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커다란 잠자리 한 마리가 장례식장에 들어와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보람 님 가족으로 보이는 남성분이 잠자리를 잡으러 쫓아다니셨다. 그런데 그 잠자리는 특이하게도 까만색이었다. 그냥 검은 무늬 정도가 아니라 날개와 몸통 모든 것이 검은 벨벳으로 만든 듯 리치블랙인 듯 새까맸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까만 잠자리는 처음 봤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샌드맨'이라는 시리즈를 봤는데 주인공 꿈의 신이 데리고 다니는 까마귀가 있다. 까마귀는 꿈의 신의 눈과 귀 역할을 했다. 그래선지 까만 잠자리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혹시, 저 잠자리, 보람 님 어머니가 보내신 거 아닐까? 내 장례식장에 누가 왔나 한번 보려고, 가족들 너무 힘들어하지 않고 잘 버티고 있는지 보려고 잠자리 한 마리 보내서 확인하신 거 아닐까? 그런 꿈 같은 생각을 잠깐 했다. 


까만 잠자리는 잡혔다. 마음속으로 죽이지 말고 그냥 내보내줬으면 싶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나왔다. 보람 님이 부디 잘 버티시기를 가족들이 모두 잘 이겨내시기를 분명히 너무너무 슬프겠지만 그래도 한발짝 한발짝 힘 내시기를 기도했다. 


밖으로 나오니 병원 바로 앞에 고대한 고척돔이 서 있었다. 저렇게 큰 건물을 들어갈 때는 전혀 못 봤다. 언제 룸메와 고척돔에서 야구를 보자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은 몇 년째 지켜지지 않고 있다. 언젠가 다시 올 일이 있겠지. 다음에는 기쁜 일로만 왔으면 좋겠다.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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