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시작하고, 쏘카를 타고, 이어 차를 사게 되면서 나는 보행자와 대중교통 이용자에서 운전자이자 차량 소유자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보행자이며 대중교통 이용자이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알거나 느끼게 된 것들도 새롭게 있었다.
1. 길은 이어진다
초보가 운전을 하면서 내비게이션(이후 '내비')까지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방주시해야지, 사이드미러 봐야지, 룸미러도 봐야지, 내비 소리 들어야지, 내비 소리가 맞는지 화면으로도 확인해야지, 옆 차선의 차가 어째 내 쪽으로 붙는 것 같지는 않은지, 앞차가 깜빡이를 켰는데 언제 이동을 할지, 신호는 지금 파란색인데 내가 저기까지 갔을 때 노란색이 되지 않을지... 동시에 몇 가지를 보고, 생각해야 하는지 셀 수조차 없다. 전방주시만으로도 벅찬 초보에게 내비 사용은 높은 벽임이 틀림없다. 물론 내비를 켜지 않으면 그 어디도 갈 수 없다는 게 울고 싶은 지점이지만.
그런 초보는 네비를 무한신뢰하게 되는데, 그러니 내비가 가라는 길을 못 가고 놓치게 되면 잠시 패닉에 빠지게 된다.
"어떡하지? 저 길인데, 놓쳤어! 어떡하지? 어떡해?? 계속 직진해도 돼??!!!"
옆에 사람이 있다면 이런 말을 반복하게 되며, 혼자라면 그저 끙끙대면 진땀을 흘리게 된다. 그럴 때 운전 선배들이 해주시는 금과옥조가 있다.
"모든 길은 이어져 있다."
길을 놓쳐도 된다. 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로 갈 수 있다. 그러니 너무 당황할 필요 없다. 당황하다가 오히려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중요한 건 운전자의 평정심이다. 물론 길을 돌아가면서 시간이 더 걸릴 수는 있다. 그러니까 초보라면 시간을 넉넉히 잡고 나와야겠지. 하지만 기억해.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놀랄 것 없어.
2. 너무 많다, 길이. 운전자를 위한 모든 것이
그런데 운전을 그렇게 하다 보니 느끼게 된 점은, 길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도보에 비해서. 자동차를 위한 길이 압도적으로 많다. 보행자를 위한 길은 너무 적다. 길을 보면 자동차를 위한 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걷는 이를 위한 길은 아주 좁다. 심지어 도로는 있는데 인도가 없는 곳도 많다. (자동차전용도로를 말하는 게 아니라 골목길 중 이런 길이 많다.)
도로에는 운전자를 위한 편의시설이 많다. 온갖 표지판, 신호등, 바닥의 선들, 시야가 안 나오는 구석마다 세워진 볼록거울들... 물론 사고를 막기 위한 것들이고 이는 보행자를 위한 안전조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 비해 보행자를 위한 시설은 과연 얼마나 될까. 보행자를 위한 시설이 뭐가 있나 생각해 보는데 별로 안 떠오른다. 보행신호등, 과속방지턱, 버스정류장의 시설... 또 뭐가 있지? (골똘)
지나치게 차만을 위한 도로 설계를 하지는 않았는지, 그 점이 오히려 차 구매를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닌지?
3. 적극적인 화석연료 사용자
첫 주유의 순간을 기억하는가? 나는 운전연수를 받을 때 할아버지 강사님이 주유소에 데려갔는데 그때가 처음이었다. 주유소에 천천히 들어가 주유기 앞에 서고,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린다. 주유기 앞에 서서 메뉴를 눌러 유종과 가격을 정하고, 주유기 노즐을 차의 주유구에 꽂았다. 그리고 이내 들려오는 쿠르릉쿠르릉 휘발유 들어가는 소리. 그때 풍겨오는 아찔한 휘발유 냄새. 어렸을 적 난로에 기름을 보충할 때 가끔 맡았던 그 냄새다. 미간이 찡그려지면서 동시에 콧속이 요상하게 시원해지는 냄새를 풍기며 휘발유가 꿀렁꿀렁 차로 들어간다. 대체 얼마나 넣어야 하는 거야. 이렇게 많이. 내가 이렇게 많이 석유를 쓰다니.
나는 지구의 어딘가에서 땅속에 묻혀 있다가 인간들에 의해 길어 올려진 석유를 가공한 휘발유를 사용한다. 이 휘발유를 가공하고 운반하기 위해 또 많은 화석연료가 쓰였을 테지. 나는 휘발유의 아찔한 냄새를 맡으며 내가 매우 적극적인 화석연료 사용자이자 탄소배출자임을 자각한다.
집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카페에서 일회용 컵을 받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버스나 택시, 비행기를 탈 때도 느끼지 못했던 생경한 감각이 코를 통해 몸으로 들어온다. 이미 오랫동안 화석연료를 직간접적으로 쓰고 있었으면서도 잘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느끼게 된다. 나는 환경을 망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내 몸이 편하자고 그러고 있다.
몇 가지를 미리 생각해 두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까맣게 달아나 더 생각나지 않는다.
(급히 존댓말) 이 글을 보는 분들께서도 운전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