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닙니다. 잘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좋아합니다! 누구나 물론 그럴 테지만요. 그래서일까 남이 요리하는 것을 보는 것은 재밌습니다. 요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흑백요리사〉를 흥미롭게 시청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 프로그램이 재미있는 이유를 한 가지만 꼽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일차적 재미는 아무래도, 그냥 봐도 재미있을 요리하는 모습을 국내 일류 셰프들의 대결로써 본다는 데 있을 겁니다. ‘흑백’이라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요리사들은 흑과 백으로 나뉘어 대결합니다. 이 대결이 재미있는 더 구체적인 이유는 흑과 백이 흙수저와 금수저의 양자구도를 상기시키는 흑수저 요리사와 백수저 요리사로 구분되어 ‘계급 간의 대결’로 펼쳐진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급은 각각 유명한가(백수저), 그렇지 않은가(흑수저)로 결정됩니다.
이 같은 불균형한 양자구도에서 기대되는 서사는 비교적 예측가능합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유명 셰프에게 승리하는 언더독의 반란, 그리고 처절하게 고꾸라지는 백수저의 실패. 이런 언더독 효과가 바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가진 자극제 중 하나일 테니까요. 그렇지만 〈흑백요리사〉가 이토록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것은 그것이 이렇듯 평범한 서사를 그대로 따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도 있습니다. 이들의 대결을 보고 있자면 백수저들의 지식과 연륜에 절로 감탄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런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는 몇몇 흑수저의 승리가 쾌감을 일으키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반대로 흑수저에 패배한 백수저의 겸허한 반응은 더 짙은 인상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흑과 백이라는 적나라한 계급 구도는 점차 무의미해집니다.
이런 면들을 보는 것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이 정도에 그쳤다면 이 글을 씨샵레터라는 음악학술 매거진에 싣기는 어려웠겠죠. 이 글이 이 지면에 실릴 수 있는 이유는 〈흑백요리사〉가 자꾸만 음악학적 질문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취향은 정말로 주관적이기만 한지, 재료는 무엇이고 예술가는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지, 음악에서 조화란 과연 무엇인지 같은 문제들 말입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흑백요리사〉는 7화까지 공개되었습니다. 그동안 세 개의 요리 대결 라운드가 진행되었는데요. 1라운드는 ‘흑수저 요리사 결정전’, 2라운드는 ‘흑백요리사 일대일 대결’, 마지막 3라운드는 ‘흑백요리사 팀전’으로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개의 요리 대결은 각각 취향, 재료와 예술가, 조화에 관한 문제들을 촉발합니다.
1라운드 ‘흑수저 요리사 결정전’은 80명의 재야의 고수 중 단 20명의 흑수저 요리사를 가르는 무시무시한 대결로 펼쳐집니다. 이 1라운드를 보면서는 개개인의 취향 문제라는 것에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음식’에서조차 명백하게 더 나은 취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특히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셰프 안성재의 심사평에서 잘 알 수 있는데요. 안성재는 ‘정확’, ‘잘못’, ‘완성도’, ‘의도’ 같은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그러면서 이 음식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의도를 위해서는 어떤 조리법이 사용되어야 하는지, 그 조리법을 사용했을 때 어떤 맛이 나야 하는지, 결과적으로 그 맛이 음식의 의도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합니다. 때론 얄궂어 보일 만큼 까다로운 안성재의 심사는 일견 잘못된 조리법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조리법에 관한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의 심사는 때로 입맛을 향해 있기도 합니다. 이런 점은 화제가 된 보섭살 스테이크에 대한 평가에서 특히 잘 드러납니다.
이 보섭살은, 제 기준에는 잘 못 구워졌어요. 고기가 이븐(even)하게 익지 않았어요. 고기가 고루 익지 않았어요. 레스팅을 조금 더 하셨어도 됐고. 그리고 열전달이 끝까지 잘 안됐어요. 보섭살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육향이 너무 좋은데, 그 과정에서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은 조금 모자란 거 같아요.
〈흑백요리사〉 2화 중 셰프 안성재의 말
위의 언급에 따르면, 해당 요리사는 재료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그러므로 그것을 다루는 방법에서도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과는 ‘이 스테이크가 만족스럽게 완성됐다’고 판단한 요리사의 입맛과도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안성재의 입맛은 다른 한 흑수저 요리사의 말처럼 “혀에 뭐가 있”는 것처럼 섬세합니다. 맛에 대한 스펙트럼이 웬만한 전문가와도 견주기 어려울 만큼 촘촘합니다. 이 같은 입맛의 전문성을 취향의 성숙도로 새긴다면, 취향이란 같고 다름의 차원만이 아니라 성숙과 미성숙의 차원에서도 작용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취향이 주관적인 것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지만, 그럼에도 누구나 인정하는 더 나은 취향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런 점은 물론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2라운드에서 펼쳐지는 흑수저와 백수저의 일대일 대결은 더욱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펼쳐집니다. 흑수저와 백수저 두 요리사가 하나의 공통된 재료로 요리해 대결하는데요. 그런데 이때 제시되는 재료가 원재료가 아니라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예컨대 미션 재료로 제시된 묵은지, 시래기, 고추장, 간장 같은 것은 이미 특정한 방법으로 가공된 재료입니다. 그리고 그 가공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방법이 쌓이고 쌓여 묵은지나 고추장 같은 형태로 된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역사화 된 재료, 혹은 재료의 역사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음악의 재료도 다르지 않습니다. 특정한 방법으로 체계화된 ‘조성’, 소나타 형식이나 다 카포 아리아 형식 같은 음악의 ‘형식’, 그리고 바이올린이나 클라리넷 같은 ‘악기’와 그것을 다루는 방법들이 모두 음악의 재료라면 말이죠. 이런 것들은 요리의 재료와 마찬가지로 긴 시간 동안 정교하게 다루어져 왔고, 그 재료를 다루는 방법이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재료를 쓰기 위해서는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화성론’, ‘악식론’, ‘악기론’ 같은 방법, 혹은 이론이 바로 이를 위한 안내서 같은 것이겠지요.
여기에 정경영 연구소장이 덧붙인 이야기는 더 흥미롭습니다. 재료의 속성을 깊이 이해해 그 결을 해치지 않고 재료의 성격이 잘 드러나도록 하는 것을 ‘장인’으로, 재료가 가진 본성에 저항하고 그 결을 거스르면서 재료를 창조적으로 다루려는 것을 ‘예술가’로 이해한다면, 〈흑백요리사〉에는 장인만이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요리사들이 있다는 겁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예컨대 묵은지로 ‘묵은지 항정살 샐러드’를 만든 백수저 요리사 에드워드 리의 요리가 그랬습니다. 묵은지를 미션 재료로 한 이 요리는 묵은지의 양념을 소스로 활용한 샐러드로 완성되었습니다. 상상이 가시나요? 에드워드 리는 여기에 구운 항정살과 단감을 보탰는데 요리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도 그 맛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창의적인 요리였습니다.
세 번째 라운드는 흑백요리사 팀전입니다. 흑수저 요리사와 백수저 요리사는 각각 두 팀으로 나뉘고, 두 쌍의 팀이 두 번의 요리 대결을 펼치는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 번째 대결에서는 흑수저 요리사 팀이, 두 번째 대결에서는 백수저 요리사 팀이 한 번씩 우승을 차지합니다. 우승한 두 팀 모두 훌륭했지만 제겐 ‘트리플 스타’가 이끈 흑수저 요리사 팀의 승리가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언더독 효과만은 아닙니다. 팀원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제일가는 뛰어난 요리사들이었고, 리더는 그런 팀원들이 각자의 고유한 색깔을 지키면서도 하나의 음식을 만든다는 공통된 목표를 향할 수 있게 도왔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 목표에 동등하게 기여하고 공평하게 양보했습니다.
흑수저 요리사 팀의 과정을 보면서 언젠가 보고 온 즉흥 연주를 떠올렸습니다. 그 즉흥 연주는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한 명 한 명의 연주자들이 자신이 다루는 악기에 얼마나 통달해 있는지만이 아니라 각자가 옆 사람의 소리를 얼마나 예민하게 듣고 있는지, 자기 소리를 내면서도 어떻게 다른 소리를 위한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이 그랬습니다. ‘트리플 스타’ 팀의 우승이 감동적인 것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그 우승은 아름다운 조화가 더 나은 맛으로 귀결된다는 다소 예측가능한 결과였을지 모르지만, 조화로운 앙상블의 힘, 혹은 그 아름다움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흑백요리사〉를 처음 보면서는 신통방통한 요리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다 음악에서 던질 수 있는 질문들이 이렇듯 요리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들을 확인하면서는 신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흑백요리사〉엔 여기 다 적지 못한 재미있는 요소들이 많아요. 심사위원 백종원과 안성재의 평가는 때로 경탄스럽고, 요리 실력만큼이나 성숙한 몇몇 셰프들의 인격 또한 감동을 줍니다. 이제는 값비싼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내어주는 커다란 접시 위에 왜 그토록 자그마한 음식이 놓이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심지어는 그 음식 앞에 겸손해질 것도 같아요. 그 풍부한 맛을 섬세하게 다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그 음식에 요리사의 기술만이 아니라 마음과 정성과 시간과 경험까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봤으니까요. 음악학에서 이런 대결을 하는 흥미진진한 상상도 해 봐요. 신통방통한 음악학의 세계에 누군가는 빠져들지 않을까요?
음악학술 매거진 '씨샵레터'에 소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