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하고 싶은 목표가 있는 사람의 태도
탁구. 가장 인상 깊게 본 올림픽 경기다. 가장 나를 사로잡은 순간은 경기 시작 전 선수가 탁구공에 마치 마법을 거는 모습이었다. 탁구공을 조심스럽게 손으로 감싸며 온 우주의 기운을 담아 주문을 넣는 모습. 가볍고 하찮은 플라스틱공에 5초 정도 간절한 주문을 외워 상대편으로 온 힘을 가해 넘기는 모습이 고귀했다.
모든 운동은 공평하고 저마다의 정신을 담고 있다. 하지만, 나름 운동에도 급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탁구를 하류 운동이라 생각했다. 비교적 저렴한 장비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운동, 은퇴한 아줌마 아저씨들의 동호회 운동정도로 치부했다. 하지만 우연히 올림픽 탁구경기에서 선수의 몰입, 민첩한 행동, 집중력을 보고 탁구선수처럼 매일을 지내고 싶다 생각했다.
난 오랫동안 커리어 방황하고 있다. 분명 하루종일 에너지를 쏟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한 날들이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 일 외의 모든 것이 회색처리 됐지만, 생기가 돌던 시간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날이 사라졌다. 쓰고 싶은 글이 있어도 돈 벌겠다며 나의 글쓰기를 미뤘다. 돈 되지 않아도 좋으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계속 연봉과 복지를 저울질하며 이력서를 썼다. 사업하고 싶지만 아이템이 없어 그냥 월급쟁이라도 해야 된다며 자신을 꾸짖었다. 책임감 어른이란 ‘자신의 의무를 다한 다음, 자기 욕심과 재미를 찾는 것’, ‘하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근데 그렇게 살고 출퇴근 길을 오가면 맘 한켠 웅크려 있던 스무 살의 내가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 어른인 거야? “라고. 서른 네살의 나는 나이 값에 맞는 책임과 역할을 하고자 맘속의 스무 살의 나를 무시하고 꾸역 꾸역 이력서를 쓴다. 근데 이력서 하나 쓰는데 2주가 넘게 걸린다. 성인 ADHD인가 싶을 정도로 집중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너무 싫어서 자기혐오 가는 커졌다. 무엇이 문제일까.
탁구 경기에서 또 눈을 사로잡은 건 선수들의 촌스러운 머리스타일이었다. 잔머리 하나도 용납하지 않게 수많은 핀으로 머리를 조였고, 굵은 곱창 끈으로 머리는 절대 풀리지 않을 거 같았다. 어떤 움직임에도 방해를 받지 않으려는 태도, 잔머리 하나도 시야를 가리지 않게 하여 경기에 집중하겠다는 각오가 보였다. 마리아 샤라포바처럼 운동할 때도 스타일도 챙겨야, 운동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탁구선수들은 탁구공과 테이블 외의 그 모든 것을 간결하게 처리했다. 조금 촌스러워 보여도 경기를 방해를 하는 것이라면 가차 없이 간결하게 처리했다. 나는 남들 눈엔 조금 촌스럽고 뒤쳐져 보여도 하고 싶은 것에 집중했던 적이 있었나. 까마득하다.
방정맞은 탁구공이 양 팀을 날아다니는 순간은 사고의 회로보다 더 빨리 움직인다. 즉, 탁구는 뇌보다는 몸으로 하는 운동인 거다. 사고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본능적으로 움직여 일사불란하게 방어와 공격을 쉼 없이 할수 있는 실력을 쌓기까지, 선수들은 탁구 외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하고, 또 무시하며 살았을까. 일개 플라스틱 공이 이리저리 테이블을 오간다고 그 스포츠마저 가벼운건 아니다. 방정맞고 하찮고, 가벼운 플라스틱 공도 누가, 어떤 마음으로 다루느냐에 따라 고귀해진다.
탁구의 룰을 전혀 모르면서, 올림픽 탁구경기를 보면서 벅차고, 눈물이 차오르고 또 슬펐다. 좋아하는 것에 온마음을 뛰어들던 때, 마음이 하고 싶어서 체력을 키우고 엉덩이 힘으로 책상에 버텼던 때, 남의 시선은 알 바 아니고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밀어붙이던 때가 분명 있었는데, 그게 언제인지 너무 그립다. 여전히 써지지 않는 이력서를 붙잡다. 다짐한다. 일개 플라스틱 공처럼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머리 바짝 묶고, 단단하게 잔머리를 정리하고, 꿈에 온 기운을 담아 주문을 외워 큰 샷을 날려버리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