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 장애인 마로니에 8인 / 하상윤
탈시설 장애인 마로니에 8인 / 김동림
'마로니에 8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10년 전 같은 이유로 뭉친 이 8명은 입을 모아 자유를 말했다.
이들은 자유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살아왔던 시간은 인간의 존엄을 무시 당한 채 숨이 붙어 있어 마지 못해 사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8명은 탈시설 투쟁을 시작했다. 스스로 자기 결정권을 누리며 사회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시설을 떠난 뒤 서울시를 상대로 이어진 62일간의 노숙 투쟁. 휠체어에 앉아 오랜 시간을 견디고, 불편한 잠자리와 소음·더위를 이겨 내야 하는 힘든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장애인 시설에서 무시당하고 고통 받았던 시간보다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첫 경험이 소중하고 행복했다고 했다.
사회의 일원으로 산 지 이제 만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렇게 독립한 이들이 말하는 자유는 무엇일까?
존중받지 못하는 시설 떠나 연인과 함께 새 삶을
하상윤 / 48세, 지체장애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던 상윤씨는 부모가 양육을 포기해 10살에 시설에 보내졌다. 입소를 반대했던 어머니는 아들을 찾아와 목욕을 시켜주기도 했고 음식을 싸오기도 했지만 열여섯 살 되던 해 발길이 끊겼다. 뒤늦게 어머니가 중풍으로 돌아가셨다는 걸 듣게 됐다.
성인이 되어 석암시설에 입소했다. 상윤씨는 시설생활이 고통스러웠다. 자신 뿐만 아니라 타인의 배변활동 모습이 노출되고 한 방에 여러명이 수용되어 혼자만의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상윤씨는 "프라이버시도 전혀 없고 혼자 있고 싶어도 전혀 그럴 수 없다"며 탈시설을 결심하게 됐다.
상윤씨는 시설에서는 금지됐던 사랑도 시작했다. 탈시설 2년 후 만나게 된 여자친구와 8년째 사귀고 있다. 가족과 단절 되었지만 가족의 재산때문에 장애 수당 등록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지금 상윤씨는 장밋빛 인생을 살고 있다. 여자친구와 함께 쇼핑을 하기도하고 영화를 보기도 한다.
꿈꿔왔던 귀금속 공예는 아니지만 컴퓨터로 문서 작성법을 배우기도 한다. 상윤씨는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컴퓨터를 배울 때 제일 자유로움을 느낀다"며 "자격증을 따 현수막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현수막 공장을 차리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