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찾게 해주는 입문서와 같은 책
‘시’라는 문학 장르는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장르는 아니다. 물론 ‘시’라는 것은 어릴때 동시부터 시작해서 중고등학교때 열심히 배우기에, 낯설지 않은 문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집 판매량은 소설/에세이 판매량에 비해 매우 적다. 중고등학교때 배운 시를 잊고, 자기개발서와 신문과 보고서가 가득한 세상속에서 살곤 한다.
왜 ‘시’를 잊고 살게 될까.
소설이 서사와 논리라면, 시는 서정과 감성이다. 요즘 시대는 논리가 중요시 여겨지고 감성을 표현하는건 쿨하지 않게 느껴진다.
또 시를 나쁘게 보려면 나쁘게 볼 점은 많다. 특히 개연성이나 현실성, 줄거리의 합리성이나 논리적 정합성을 따진다면 좋은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 왜 내 마음은 호수인가. 설명도 없고 논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특정 시구에 감동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시/구절이 완벽해서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시/구절이 나의 마음을 잘 표현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시는 보기에 따라 엄청 유치하고 자의식 과잉일 수 있다.
–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
일상 대화중에 이 말을 직접 입으로 내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면? 나라도 ‘얘 뭐지???’ 하며 슬슬 대화를 끊고 피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유치하게 보일수 있는 감성이 나는 좋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감동을 서사와 논리적 요소에서만 받지는 않는다.
고흐의 그림을 보고 좋아할때, 대부분은 그 이유를 [이 그림은 예전의 미술사조였던 사실 그대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서 형태를 뭉개버리고 색채를 강렬하게 사용함으로서 그 순간의 감정과 강렬한 느낌을 전달하는데에 의미를 두었기에 후기 인상주의 표현주의에 영향을 줘서 나는 이 그림이 좋다] 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보니 그림이 아름다워서, 혹은 나에게 감동을 줬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로 누구를 혹은 무언가를 처음 보고 좋아한다는 것은 감성의 영역이지 이성적 영역이 아니다.
어떤 시를, 어떤 시구를 보고 내가 감동을 받은 이유는, 나에게 언제 어떤 측면에서 어떤 행위를 어떤 이유로 어떻게 했기 때문에와 같이 합리적이고 서사적이며 개연성을 따지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자체로 예쁘고 아름다우며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남의 감성을 주접이고 오버이고 허세라고 격하하는 분위기가 지배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 중2병과 허세와 감성팔이라는 말이 인터넷상엔 흔하다. 속마음을 얘기하면 쿨하지 못하다고 한다. 낭만주의자는 현실감각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기 쉽다.
하지만 나의 낭만은 존재한다. 나의 낭만은 객관적 서사적 논리적 이유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객관적 낭만’이란 말이야 말로 모순적이다. 낭만은 주관적이다. 모두가 이해하는 낭만이라니 그것이야 말로 얼마나 비낭만적인가. 30대지만 아직 낭만을 가지고 살고 싶다. 시가 감성적이고 유치하면 어떤가. 이해가 가지 않으면 어떻고 설명이 부족하면 어떠한가. 아무것도 아닌 시에 감동을 받는게 유치해보이면 어떠한가. 좋은 시를 보고나서 낭만에 대해 조금이라도 얘기할 수 있는 소소한 낭만을 가지고 싶다.
시는, 나의 낭만을 자극한다. 그것만으로도 시라는 문학은 충분히 사랑받을 이유가 있다.
하지만 시의 세계에 처음부터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다. 처음에는, 이 시가 어찌 쓰여졌고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입문이 필요하다. 아쉽게도 우리 의무교육 체계에서는 그런 설명을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높은 점수라는 더 큰 동기에 밀려 시를 다양하게 분석할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시를 어렵게 느끼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각각의 시에 대한 설명이 전문적이며 완벽해서가 아니다. 시의 세계의 초입길로 성공적으로 안내를 해 줬다는 점에서 이 책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다.
PS. 물론 이 책이 완벽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입문서로서는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