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뚜껑은 왜 시계 방향으로 잠길까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 그건 정말 당연한 걸까

by 동동수목원


한 번도 의심해본 적 없는 방향이 있다


생수병을 집어 든다. 병뚜껑에 손을 얹는다. 그냥 돌린다.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방향인지 확인하지 않는다. 손이 알아서 움직인다. 딸깍 — 열린다. 그 순간을 한 번도 이상하게 여긴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다른 상황이 생기면 달라진다. 오래된 유리병 뚜껑. 밀폐된 잼 뚜껑. 처음 쥐어보는 낯선 용기. 이럴 때 손이 잠깐 멈춘다. "어느 쪽이지?" 머릿속이 잠깐 스캔을 한다. 시계 방향? 반시계? 그러다 기억처럼 손이 움직이고, 대부분은 맞는다. 이상하게도, 이걸 누군가에게 배운 기억이 없다.


손은 배우지 않았는데, 왜 알고 있을까

병뚜껑이 시계 방향으로 잠기는 건 단순한 규칙이 아니다. 정확히는 — 오른손잡이의 몸 구조에서 비롯된 관습이 산업 표준이 된 것이다. 오른손으로 무언가를 쥐고 시계 방향으로 돌릴 때, 팔뚝은 회외전(supination, 몸의 중심축에서 멀어지는 회전) 동작을 한다. 손바닥이 위를 향하는 방향. 이 방향이 인체 해부학적으로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자세다. 반대로 반시계 방향은 회내전(pronation, 몸의 중심축에서 가까워지는 회전), 즉 손바닥이 아래를 향하는 방향이라 상대적으로 힘이 약하다.

crop-woman-opening-water-bottle.jpg 고작 병뚜껑 여는 방향 때문에 몸의 원리까지 알아야 하나


잠그는 동작엔 강한 힘이 필요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더 강한 방향이 '잠금'이 됐다. 오른손잡이가 전 인류의 약 85~90%라고 한다. 그 다수의 신체 구조가 하나의 방향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산업 표준이 됐다. 18 ~ 19세기 기계 공업이 확장되면서 나사, 볼트, 뚜껑, 배관 연결부가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통일됐다. 명문화된 약속이 아니라, 몸의 효율이 관습이 되고, 관습이 설계가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병뚜껑을 여는 건, 그 긴 역사가 신체에 내장된 결과다.


생각 없이 맞추는 행동, 그 배경엔 구조가 있다

어릴 때 병뚜껑 여는 법을 누군가가 가르쳐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성인이 된 우리는 그 기억이 없다. 그냥 안다. 몸이 먼저 움직인다. 인지과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절차 기억(procedural memory)이라고 부른다. 반복을 통해 의식의 바깥으로 내려간 지식. 한번 체화되면 생각 없이 실행된다. 자전거 타기처럼, 젓가락질처럼. 병뚜껑도 그렇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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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절차 기억으로 내려가기까지는 조건이 있었다. 시계 방향이 오른손에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한 번만 해봐도 '이쪽이 맞다'는 느낌이 즉각 왔다. 저항이 없다. 몸이 동의한다. 그래서 기억에 쉽게 새겨졌다. 경험이 학습을 도왔다. 학습이 몸에 쌓였다. 몸이 다음 행동을 자동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이걸 '직관'이라고 부른다.


직관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구조가 심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왼손잡이는 어떨까. 왼손잡이에게 병뚜껑 방향은 늘 약간의 마찰이 된다. 왼손으로 잠글 때는 반시계 방향이 더 강한 자세인데, 세상의 모든 뚜껑은 반대로 설계되어 있다. 그들은 오른손잡이가 무의식적으로 아는 것을 매번 짧게나마 의식적으로 상기해야 한다. 그게 쌓이면 작은 인지 부담이 된다. 어딘가 미묘하게 불편한 경험. 대부분은 인식조차 못 하고 지나가지만, 분명 존재하는 마찰이다. 표준이란 결국 다수의 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합의다. 그 합의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세상은 늘 조금씩 어긋나 있다.



뚜껑의 방향이 알려주는 것

이건 병뚜껑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사는 시계 방향으로 조여진다. 수도꼭지 손잡이는 시계 방향으로 잠긴다. 가스 밸브도, 자동차 오일 캡도, 자전거 페달 나사도 — 대부분 같은 방향이다. 페달 한쪽은 예외적으로 반대 방향이기도 하지만, 그건 역방향 하중을 버티기 위한 의도적인 설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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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이 닿는 거의 모든 물건이 같은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우리는 그 통일성 속에서 살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시계 방향으로 잠긴다"는 건 물리 법칙이 아니다. 설계된 관습이다. 그 관습이 너무 오래, 너무 넓게 퍼져서 이제는 몸에 심어진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이걸 가장 잘 알 수 있는 순간이 있다. 간혹 반대로 설계된 뚜껑을 만났을 때. 그때 손이 잠깐 당황한다. 어, 이쪽인가? 그 당황함이 답이다. 몸이 예측한 방향이 있었다는 뜻이니까. 몸의 예측이 틀렸을 때만 구조가 보인다. 평소에는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문이 당겨지는지 밀리는지, 계단이 왼발로 시작하는지 오른발로 시작하는지, 엘리베이터 버튼이 어느 높이에 있는지 — 우리는 이것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한다.


그 '그냥'의 뒤에는 항상 누군가의 선택이 있다. 오른손잡이를 기준으로, 성인의 팔 높이를 기준으로, 어느 시대의 어느 공장에서 내린 결정들이 지금 우리의 손 움직임을 만들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 그건 정말 당연한 걸까

병뚜껑 하나를 여는 행동에 이 모든 게 담겨 있다. 산업 역사, 인체 구조, 다수의 기준, 반복을 통한 체화.

우리가 지금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들 — 방향이든, 순서든, 형태든 — 은 어쩌면 타고난 감각이 아닐 수 있다. 누군가가 설계한 방향을 우리가 너무 오래 반복한 나머지, 본능처럼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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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아무 생각 없이 병뚜껑을 여는 그 순간에도, 사실은 수백 년의 관습이 함께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다른 것들은 어떨까. 방향만이 아니라, 순서도, 배치도, 기준도 — 어디선가 누군가가 선택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그 선택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원래 그런 것'이라고 믿기 시작한 건 아닐까.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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