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다리 두 개

2019년

by Aha


0.

치킨을 샀다. 침대에 만 하루 하고도 반나절을 누워있다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삭바삭하고 매운 후라이드가 먹고 싶었다. 조금 멀리 걸어 나가면 통유리로 대형마트를 마주 보는 2층짜리 KFC가 있지만 그 먼 거리를 걸을 기력도 없고, 집 앞 치킨집보다 비싼 가격도 문제다. 그러니까 마침 멀리 나가지 않을 핑계가 있어서, 나는 한 동안 가지 않았지만 예전에 아주 좋아했던 동네 치킨집에 갔다.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서 더 싼 값에 통닭을 팔아치우는 경쟁자가 생긴 뒤로도 살아남은 치킨집. 나를 알아보지도 않을 치킨집 사장님 앞에서 나는 그동안 발걸음 하지 않았던 날들에 부채감을 느끼면서 치킨을 기다렸다. 이 치킨집은 맥주를 팔지 않는다.


1.

열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는 반 십 년이 넘었고, 이러다 죽겠다 싶은 생각을 한 것도 2-3년은 족히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이렇게까지 지친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거리두기, 재능이 없거나 열심히 배우지 않는지 자주 실패한다. 사랑과 책임은 동의어일까. 나는 애정과 책임을 혼동하고 연민과 애정도 혼돈하고 잘 조절하지 못하고 곧잘 목 졸린다. 그래도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주 외로운 일이라서 정신 차리면 또 안쓰러운 것들을 줍고, 업어 매고, 기대오는 무게에 목 졸린다. 그만둘 것이다. 그만두는 것은 편안해지는 길이고 외로울 수밖에 없는 공간에서 외롭지 않으려고 비극에 뛰어들지 않는 것이다. 요 근래 그만두는 일에 게을렀다. 하루가 끝나가는 감각이 참을 수 없이 불안해서, 그럴 때면 아무 인터넷 강의를 본다. 아무것도 쌓이지 않는다. 불안은 해소되지 않아서 강의 하나를 새로 재생하고, 내일은 이미 시작되었고, 내일도 나는 피곤하고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그런 밤들이 보름 넘게 지속되었다. 핸드폰을 너무 오래 본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푸념과 농담과 생각을 쉼 없이 읽는다. 나는 자꾸 쫓기고 무엇을 하려던 중이었는지 잊어버렸다. 앞이 보이지 않고 아무도 나를 업어주지 않는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은 참 오랜만이다. 그런 기분이라는 것을 주말이 끝난 뒤로도 침대 위에 고꾸라져 만 하루하고 반나절이 지나서야 알았다.


2.

500ml 맥주는 너무 많다. 다 마시려면 맥주가 맛이 없다. 한 입 삼키면 탄산이 목구멍을 때리고 두 입, 세 입 지나면 뒷목의 근육이 나른하다. 거기서부터 많아봐야 두 입까지만 맥주는 맛이 있다. 캔맥주는 용기가 맛없으니 병맥주를 산다. 집을 지나쳐 옥상으로 바로 올라갈 셈이니까 돌려서 열 수 있는 뚜껑을 골랐다. 기분이 나쁠 때 술을 먹지 않는다. 먹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고, 기분이 나쁠 만큼 지쳤을 때는 술을 먹는 것도 귀찮기 때문이다. 다만 치킨을 먹으려면 탄산이 있어야 하니까 맥주를 산다. 병맥주를 손가락에 걸고 후라이드 치킨 냄새를 풍기면서 걷는다. 마트 바로 옆에는 버스정류장 귀가 행렬에 옛날 통닭을 팔아치우는 치킨집이 있다. 사람들은 내가 죽고 싶은지 모른다.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늘 그런 식이다.


3.

식판 위에는 맛있는 반찬과 맛없는 반찬이 있다. 맛있는 반찬을 먼저 먹는 사람은 낙관적이고 긍정적이며 맛없는 반찬을 먼저 먹는 사람은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다.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친구에게 들었던 말 같다. 그때까지의 나는 맛없는 반찬을 먼저 먹었다. 왜냐하면 나는 배급받은 반찬을 다 먹어야 하고, 맛없는 반찬을 먹고 나서 나를 달랠 방법은 맛있는 반찬뿐이니까. 그때는 이유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창피했기 때문이다. 부끄럽다. 비관적인 사람인 것을 뻔히 들키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다니. 그 후로는 눈 앞에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이 놓일 때마다 그 말이 기억났다. 지금은 무엇을 먼저 먹을지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비관적인 성격을 들키기 싫어서 맛있는 반찬을 먼저 먹거나, 그 말에 휘둘리는 것을 들킬까 봐 맛없는 반찬을 고집하는 사람. 어느 쪽을 먼저 먹어도 나에게 의심받는다. 맛있는 반찬부터 먹는 사람은 맛없는 반찬을 먹지 않아도 되거나 안 먹겠다고 떼써도 혼나지 않을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아이들이었다고, 오늘 생각했다.


4.

치킨을 먹을 때는 닭다리부터 먹는다. 맛이 있거나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닭다리부터 먹고 싶어서 먹는다. 닭다리를 먹지 못하면 아쉽고 슬프다. 닭다리를 좋아하면서도 남에게 양보하는 사람을 보면 부끄럽다. 나도 의연하게 닭다리를 양보하는 어른이 되었다면 더 멋있었을 것이다. 지금 덜 외로웠거나, 덜 외로운 과거의 증거로 삼아도 좋았을 것이다. 양보하는 닭다리를 나는 거절하지 않는다. 먹지 못하면 나는 아쉽고 슬프다. 그래서 양보하는 사람을 보면서 부끄럽고, 냉큼 받아먹는 게 또 부끄러워 늘 이상한 기분으로 닭다리를 먹는다. 간이 더 잘 베어 짭짤하고 껍질이 바삭한 것은 날개이고, 살이 더 촉촉한 것은 허벅지인데 못 먹으면 아쉽고 슬퍼 가슴에 남는 것은 닭다리다. 어릴 때 닭다리를 못 먹은 것은 아니다. 지붕 아래 남자는 아버지 하나뿐이고 자식은 둘이며, 자식 하나와 어머니는 퍽퍽살을 좋아하니까 나는 닭다리를 자주 먹었다. 어머니가 늘 남은 것만 먹는 자신을 무척 안쓰럽게 여겨 늘 밥상에서 그것을 말하였기 때문에 나는 어머니가 진짜로 닭다리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가끔 고민했지만 넘겨주면 늘 사양했으니까 이러나저러나 자주 먹었다. 아버지는 겨우 한 두 조각을 먹으며 사양 치레로 무능을 고해하면서 늘상 치킨과 고기 타령을 했고, 어머니는 느끼하고 고기 냄새가 역하다고 욕을 하면서도 늘 양보하느라 먹지 못하는 자기를 큰 소리로 안쓰러워했다. 나는 닭다리를 먹었다. 다들 말하는 것을 들으니 내가 먹는 이것이 무척 대단하고 맛이 좋은 부위가 틀림없었다.


5.

맥주의 뚜껑을 돌려 따고 상자를 열자마자 닭다리부터 먹었다. 생각보다 살이 부드럽지를 않아서 잠깐 날개에 눈이 갔지만 하나 남은 닭다리도 마저 먹었다. 아무에게도 양보받지 않고, 누구와도 서로 사양하지 않고 닭다리 두 개를 다 먹었다. 닭다리 하나를 먹고 상자를 내려다봐도 닭다리 하나가 남아있고 날개도 두 쪽이나 남았다. 맥주도 마셨다. 대기오염이 심각하다고 휴대폰에서는 빨간 경고를 울렸는데, 뒷산도 보이지 않는 누런 옥상에서 숨통이 트였다. 닭다리 두 개를 다 먹어도 혼나지 않고, 닭다리를 쥐고 누군가의 자기 연민에 동원되지 않는다. 이렇게 혼자서 치킨을 열 번만 먹으면 나도 닭다리를 양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은 스무 번을 먹으면.


6.

앞이 깜깜한 것은 너무 멀리 쳐다보느라 그렇다.

간절하게 쳐다본다고 보이는 것이 원래 아니기 때문이다.


발 밑에 먼지가 앉았다.

오늘만큼의 좁은 터를 잘 닦고, 내일도 그렇게 살면 길이 된다.


깜깜한 것과는 적절한 거리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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