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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우 Mar 01. 2016

너와 나 사이의 거리-지각된 품질①

왜 고객과 기업은 항상 다른 생각을 하는가?

A 씨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명동 한 가운데서 B양을 기다리고 있다.  약속시간이 다다랐지만 빨갛게 언 볼과 동동 구르는 발을 보면 못해도 30분은 그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늦은 시간이지만 명동만큼은 밤이 쉬이 오지 않을 만큼 환하다. 명동은 한밤의 낮을 찾아 몰려드는 사람들로 온통 가득 찼다.

오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외투와 목도리로  중무장했지만 A 씨는 B양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는 듯이 한 곳을 뚫어지라 쳐다본다. 드디어 먼발치에서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먼 거리임에도 서로를 알아보고 보일 듯 말듯 한 미소와 함께 눈인사를 한다.  크리스마스이브, 그녀와 100일째 되는 날이다.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많이 기다렸냐고 물어본다. 꽁꽁 얼은 입술을 간신히 떼며 방금 왔다고 말한다.

빨간 볼이 추위 때문인지 그녀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 어떤 때 보다 추운 날. 그러나 추위는 서로를 더욱 가깝게 하고 느끼게 한다. 때마침 내리는 함박눈은 마치 하얀 솜털처럼 연인을 덮어 더욱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한다. 구세군의 종소리마저 이들을 축하하는 듯한다.  크리스마스이브의 하얀 함박눈은 때 묻지 않은 사랑과도 같다.


C군은 계절학기를 신청했다. 기상학이 과락이라는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거리다가 이내 친구들이 보낸 까똑에 눈이 간다. 스키장에서 보낸 사진들로 그득하다. 조용히 '나가기'를 누른다. 도서관 창밖을 내다보았다. 함박눈이 내린다. 12월 24일, 내일이 없을 것 같이 모두 거리로 나와 즐기는 지금, 홀로 도서관에서 보낼 것을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하다.

이내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 집중해본다.

'눈은 대기 중의 구름으로부터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는 얼음의 결정이다. 결정은 여러 형태를 띠며 보통 2mm 정도이다. 지금 쏟아지는 함박눈은 여러 개의 눈 결정이 달라붙어 눈송이를 형성하여 내리는 눈이다.'  크리스마스이브의 함박눈에 의미는 없다. 그냥 자연현상이다라고 쇠뇌를 한다.


D상병은 탈영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내 포기하고 만다. 무릎까지 차오른 눈은  탈영은커녕 눈에 파묻혀 동사하기 딱 좋다. 쓸고 나면 조롱하듯이 등 뒤를 따라 또 쌓이는 눈. 하늘이 설사병이 또 도졌나 보다. 교회에 가서 초코파이라도 얻어먹고 서울에서 왔다는 여성 합창단의 위문 공연을 보기 위해 김 병장에게 누나 전화번호까지 넘겨 가며 근무까지 뺏는데... 한밤중까지 제설작업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크리스마스 위문으로 사단장님까지 오신단다. 중대장님은 검은 아스팔트가 안 보이면 나의 눈두덩이 검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크리스마스 함박눈은 하연 똥덩어리다.

저기 어렴풋이 보이는 것은 황금마차인가? 아니면 사단장님 차인가?

크리스마스이브의 함박눈은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간다. 누구에게는 사랑의 징표요 누구에게는 똥덩어리일 만큼 극과 극이다. 분명  모두에게 같은 2mm의 얼음 결정일 텐데 말이다.

왜 같은  크리스마스이브의 함박눈은 사람마다 다르게 와 닿을까?



2mm 정도 크기의 좌우상하 대칭적인 얼음결정에 물과 약간의 먼지로 이루어진 눈은 객관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내린다. 사전적인 의미야 모두 동의겠지만 시험을 앞둔 학생이나 기상학자가 아니라면  똑같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일은 생활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난다. 같은 상품을 두고도 '이거 돈 값 하는데'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역시 싸구려는 싸구려네'하며 평가절하 하기도 한다. 동일한 상품에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 사람이 잘 못 되었는지 품질에 문제가 있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이유도 쉬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상품을 판단하는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성격도 욕구도 그리고  선호가 다르기 때문에
상품을 바라보는 기준도 다르다.


보통 상품의 품질이라고 하면 기능이 얼마나 많은지, 크기는 어떤지, 좋은 재료를 사용했는지 누가 만들었는지와 같은 객관적이고 기능적인 것을 말한다. 하지만 브랜드 관점의 품질은 이와는 다른데, 사람의 성격, 욕구, 선호에 따른 고객의 인식과 평가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다분히 주관적인 품질이다. 그리고 이것을 지각된 품질(Perceived Quilty)이라고 한다.

브랜드 자산의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인 지각된 품질을 데이비드 A. 아커는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지각된 품질은 해당 브랜드가 의도한 측면에서 경쟁 브랜드와 비교해 제품이나 서비스의 전체적인 품질이나 우수성에 대한 고객의 인식이다.

위에서 정의한 것을 좀 더 뜯어보면

먼저 '브랜드가 의도한 측면'을 보자.

지각된 품질은 결과론적으로는 고객의 머릿속에 생긴 품질의 수준이지만 그 시작은 기업이다. 기업마다 자신의 상품에 대해 고객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상품을 만든 의도와 목적과 상관없이 고객이 받아들인다면 이보다 더 속상한 일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의도된 광고, 의도된 프로모션, 의도된 홍보로 의도한 바대로 고객이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힘을 쏟는다.

얼마 전, 모 자동차 회사에서 이벤트를 한 적이 있다. 내용인즉 고객을 모시고 내수용와 수출용 자동차의 충돌 실험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 면면을 보면 이 자동차 회사는 끊임없이 수출용과 내수용의 품질이 다르다는 오해에 시달려 왔고, 심지어 에어백도 안 터진다는 자동차로 인식되어 있었다. 고객의 지각된 품질이 낮다고 할 수 있다.그 기업은 대대적인 광고로도 그 인식을 불식시키기는 쉽지 않았던 모양인지, 야금야금 내수 시장을 먹어 들어가는 수입 브랜드의 공세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는지, 기업의 수장까지 나서서 고객의 눈앞에서 차량 충돌 실험을 감행했다.  실험을 통해 내수용 자동차의 품질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고 했다. 수출용과 품질의 차이가 없다고 고객들이 인식하도록 의도한 것이다. (다만, 사람의 인식은 쉽게 종교와도 같아서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한 번의 충돌로 불식시킬 수만 있다면...


다음은 '경쟁 브랜드와 비교해서'를 살펴보자.

나는 대학로 공연을 좋아한다. 대형 뮤지컬 같이 웅장한 무대장치나 풍성한 사운드도 없다. 더더군다나 세련된 서비스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각된 품질 또한 낮다고 할 수 없다. 대학로 공연의 저렴한 가격과 좁은 극장에서 배우와의 호흡하는 맛이 평가기준이기 때문에 지각된 품질은 높다.

이러한 평가기준은 의도한 목적과 경쟁사 대비 어떠한 대안을 마련하느냐에 따라 지각된 품질이 다르게  인식되어진다. 가령 저가항공사의 빠른 수속과 정시 출발을 강조한다거나 고급 택시 앱이 친절한 도어 서비스와 고급 승용차임을 내세우는 이유는 고객이  부족한 서비스나 비싼 택시비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제시한 기준으로 평가되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설령 브랜드의 객관적인 품질이 낮다(혹은 높다) 하더라도 고객으로 하여금 경쟁사와는 다른 기준으로 평가하게 함으로써 높은 지각된 품질로 인식하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 눈치를 채셨겠지만 포지셔닝과 관계가 깊다)


마지막으로 '제품이나 서비스의 전체적인 품질이나 우수성에 대한 고객의 인식' 부분이다.

이 구절은 앞서 말한 내용에 대한 활동으로 나타나는 결과인 지각된 품질이다. 지각된 품질에 덧붙여 종종 오해하는 부분이 다.   지각된 품질이 중요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품질이 중요하지 않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실제 품질을 폄하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낮은 품질의 상품을 전방위적인 광고로 높은 지각된 품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지각된 품질은 머릿속의 허상이 아니다. 기업이 아무리 의도하여 지각된 품질을 높이고자 노력한다고 해도 그 한계가 있다. 그리고 그 한계는 바로 상품 자체의 품질 수준이며, 의도하는 목표 기준 또한 동일하다. 물론 고객의 품질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을 할 수 있겠지만, 실제 품질과 다르다면 그것은 고객 기만이며 이러한 행동은 금방 까발려지는 꼼수에 불과하다.

지각된 품질은 목표는 고객의 머릿속에 허상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다.
 실제 품질(의도한 부분에서)과 지각된 품질의 수준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략(?) 지각된 품질에 대한 정의를 살펴보았다.

결국 지각된 품질은 높은 품질 수준에서 나오며,
경쟁사와 대비하여  차별화되는 부분에서 인식하며,
그리고 이는 기업이 의도한 목적에 맞는 일관된
고객 커뮤니케이션으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좋지도 않은 품질을 높은 품질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사기에 가깝다. 기업은 지각된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실제 품질 향상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먼저 기업이 먼저 품질을  우선시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품질 우선주의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정말 고리타분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과거 90년대 내구성을 위주로 한 품질 경쟁이 떠오른다. 그렇다고 품질을 포기한 기업은 없다. 다만 품질의 상향편준화로 인해 내구성이나 성능과 같은 기본적인 품질을 고객에게 말하기에는 매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혁신적인 기능, 감성적인 디자인 등 품질의 다른 범주로 커뮤니케이션

관점이 변화했다. 그리고 여전히

품질을 높이고 유지하기 위한 활동은 기업의 사명이다.
이런때도 있었다.


과거 기획사에 몸담고 있을 때, 제작 과정에서 프로덕션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프로덕션에서는 음악을 라이브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라이브가 녹음된 MR보다 감성적인 면이나 현장감이 뛰어남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두 명이 출연하는 뮤지컬에 6인조 라이브는 과했으며, 밴드는 공연 내내 보이지도 않는 무대 뒤에서 연주해야만 했다. 물론 6인조 밴드의 연주는 훌륭했고 공연의 품질은 여느 소극장 공연에 비할바가 아닐 것이다. 다만 고객은 커튼콜에서야 비로소 밴드의 존재를 깨닫고 놀랐을 뿐이다. (연주에 대한 놀람이 아니라 6인조 밴드가 그 좁은 공간에 그 긴 시간을 숨어서 연주한 것에 경이로움이었으리라...)

(프로덕션에서 들으면 욕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공연 내내 존재도 모르는  6인조 밴드의 개런티라면 더 좋은 극장이나 캐스팅으로 고객이 느끼는 품질을 높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은 마케터들이 종종 빠지는 딜레마이다. 마케터의 선호도가 곧 고객의 선호도로 탈바꿈하거나 임원의 경험이 고객 리서치를 대신하기도 한다. 심지어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주체하지 못해 아이디어 속에 고객을 껴맞추기도 한다. 고객이 무엇을  중요시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정보를 무시한 채 고객이  중요시해주었으면 하는 기대에 목숨을 건다.

다행히 근래에는 고객정보의 싸움이 치열해졌다. Big data로 대변되는 정보 수집의 전쟁터라 할 수 있다. 모든 기업이 기술기업임을 자처하며 고객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린다. 이커머스 기업만 보더라도 고객이 어떤 상품을 구매하는지, 언제 하는지, 얼마나 하는지, 얼마나 자주 하는지, 비슷한 고객은 무엇을 샀는지, 어디를 다니는지, 모든 정보를 수집해서 상품을 추천하고 재고를 관리한다. 고객정보를 통해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 끝이 없다. 고객정보를 통해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효율적인 재고 관리로 비용을 줄여 장기적으로 수익 개선을 할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품질향상을 위해서는 고객정보가 근간이다.
품질을 판단하는 것은 곧 고객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필요하지만 누구도 사용하지 않는...

품질을  우선시하고 고객정보를 모으고 취급하는 것은 모두 기업 구성원의 몫이다. 그러나 아무리 고객정보를 토대로 뛰어난 품질의 상품을 만들더라도 구성원이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다면 지각된 품질이 높아질 리 없다. 구성원 스스로 높은 품질에 맞는 행동으로 고객을 대해야만 그렇게 느낄 것이다.

예술의 전당에 공연을 관람하러 온 고객이 불친절한 안내 표지판으로 줄을 잘 못 섰다가 다른 줄에서 기다리라고 하는 무책임한 대응은 10만 원이 넘는 티켓을 구매한 고객에게 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많은 관람객은 기획사 예매가 뭔지 예매처 예매가 뭔지 잘 모른다. 더군다나 선물을 받은 고객이라면 더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아니면 큰맘머고 산 70인치 TV를 기사가 설하면서 헤맨다거나 기능도 잘 모른다면 고객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기사도 잘 모를 정도로 설치하기도 사용하기도 어려운 TV로 인식 될 지도 모른다.

품질을 위한 품질 관리가 아니라 고객을 위한 품질관리가 필요하다.




브랜드에 대한 글을 쓰면서 흥미로운 책을 만났다. '절대가치 (완벽한 정보의 시대, 무엇이 소비자를 움직이는가?/이타마르 시몬슨, 엠마뉴엘  로젠)'라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이전의 고객이 상품을 선택할 때 브랜드, 가격, 과거의 사용경험과 같은 상대가치로 의사결정을 했다면, 이제는 상품의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고객이 상품을 사용할 때 경험하게 되는 품질 또는 가치를 통해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품에 선입견이 없는 진짜 가치에 따라 구매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절대가치를 이루는 근간 새로운 정보 환경에서 고객은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보의 원천을 갖게 되면서 진짜 가치를 보다 쉽게 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고객이 '완벽한 정보'에 접근 가능해진 환경 속에서 기존의 브랜딩이나 마케팅 전략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소개한다. 덧붙이자면 고객은 마케터들이 제시하는 상품 스펙이나 비교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할용 할 수 있는 고급 정보로 보다 합리적인 결정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품질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절대가치만 있으면 세상은 당신의 것이다!


스마트폰의 출현을 분수령으로 급격한 시장 환경의 변화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검색어 하나만으로 원하는 정보는 물론 생각지도 못한 관련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은 상품을 발가벗겨 놓는다.

그렇다면 정말 전통적인(이라 쓰고 구태라고 생각하는) 브랜드의 힘이 약해진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명품과 같은 상품은 브랜드의 힘이 여전하나 앞으로는 쇠퇴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를 지각된 품질과 빗대어 말하자면, 고객이 품질을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다양해졌다고 할 수 있다. 사고자 하는 상품에 대한 개봉기, 나와 처지가 비슷한 사람의 사용후기, 경쟁사 상품과의 비교 후기, 전문가의 객관적인 글까지... 사실 기업이 제공하는 광고나  정보보다 더욱 신뢰감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환경은 브랜드의 중요성이 쇠퇴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고객은 정보통해 있는 그대로의 품질의 상품을 구매하게 될까?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의 품질은 무엇일까? 모든 성능과  특성이 경쟁사 대비 높은 품질을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욕구와 성향 선호도에 따른 품질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후자일 것이며, 후자는 지금껏 말한 '지각된 품질'이다.

완벽한 정보는 부정확한 정보나 기업의 일방적인 정보에 의존하지 않고 실제 품질과 지각된 품질을 일치시키는 역할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높은 품질의 상품이라면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경쟁사 대비 변별력을 높여주고 고객의 또 다른 긍정적인 정보를 생산해 더욱 브랜드를 더욱 강화시켜 줄 것이다. 다만 전제 조건은 높은 품질을 유지하며 지각된 품질과 끊임없이 일치시켜야 한다.


그리고 마케터에게는 큰 숙제가 남았다. 고객이 생산해내는 실제 품질과는 다른 부정적인 정보, 편향적인 정보, 사실과 다른 정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컨트롤할 수 없는 채널이 늘어날수록 리스크는 커져간다.

이럴수록 브랜드의 힘이 더욱 중요해진다고 생각한다. 사실과 다른 부정적인 고객의 반응을 불식시키는 방법은 품질에 대한 자부심, 이미지, 고객을 대하는 자세 등 꾸준히 쌓아온 브랜드 자산이 해결해 줄 것이다.

고객의 적극적인 정보 생산은 브랜드의 진짜 모습을 드러나게 할 것이며,
진실된 기업은 오히려 반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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