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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우 Mar 29. 2016

원초적 본능 - 지각된 품질②

고객의 구매 본능을 일깨우는 방법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갈 때면 언제나 '어디까지 왔노?' 놀이를 하곤 했다. 어머니께서 눈을 감고 등 뒤에서 '어디까지 왔노?'하고 물으시면 '누구 누구네 집까지 왔어'하고 대답하는 놀이다. 사실 이 놀이는 집으로 가는 길에 심심함을 달래기보다는 가파른 비탈길을 힘들게 올라가는 어린 아들의 등을 밀어주기 위함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우리 집은 산과 닿아 있는 골목 끝 꼭대기에 자리 잡은 슬래브집이었다. 'ㄴ'자로 만들어진 집에는 세 가족이 모여 살았다. 변소도 하나, 장독대도 하나, 빨래터도 하나, 연탄 창고도 하나 그래도 그 당시에는 크게 불편함이 없었던 모양이다.


'우리 정말 이사 가는 거야?'

국민학교 5학년이 되던 해 어머니께서 이사를 간다고 하셨다.  

양옥집. 거실에는 소파가 있고, 변소는 물론 목욕탕도 집안에 있으며 마당에는 꽃나무가 즐비하다. 무엇보다 나의 방이 있는 TV에서나 볼법한 집.

이사 간다는 소문은 좁은 동네에 삽시간에 퍼졌다. 반상회의 주요 안건은 우리 집 이사였으며, 동네 아줌마들의 고스톱판에서도 화젯거리였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집에 대해서 물어보면 어머니는

변호사가 살던 집이야

라고 대답하셨다.

몇 평인지, 방은 몇 개인지, 어디에 있는지 따위의 어떤 집인지 알 수 있는 정보는 뒤로하고 '변호사가 살던 집'이라니... 그러면 사람들은 이내 '아이고 잘 됐네' 하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나에게는 그렇게 넓어 보이던 골목이었는데, 어머니는 우산 조차 펼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번 글에 이어서...

https://brunch.co.kr/@brunchv0py/11


지각된 품질은 객관적이지 않다. 개인의 인식이기 때문에 다분히 주관적이다. 그리고 더 보탠다면 상대적이다. 유일무이한 상품이 아닌 이상 지각된 품질은 경쟁사의 상품과 상대적이다.

경쟁사와의 품질에 대한 상대적 우열은 고객에게는 아주 유용하게 작용한다. 당연히 지각된 품질이 높은 상품은 망설임 없이 구매를 할 것이며, 낮다면 구매 리스트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된다. 또한 비슷한 조건 상품들 중 높은 품질의 상품을 구매했다는 안도감과 만족감은 그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바라건대 어머니가 말씀하신 '변호사가 살던 집'은 80년대 변호사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가 그 집에 투영되었을 것이다. 상류층의 안목으로 고른 집은 살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꼼꼼하게 관리되어 품질이 우수하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다른 비슷한 가격과 조건의 집보다 큰 만족감을 선사했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변호사가 살던 집'은
다른 집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해주었으며.
사야 될 이유를 만들어 주었다.


사야 될 이유를 만들어주는 지각된 품질. 

그럼 고객은 감만으로 품질을 판단할까? 그럴리는 만무하다.  고객은 스스로 납득할 만한 기준을 만들어 품질을 판단한다.  다행스럽게도 '데이비드 가빈(David A Garvin)'이 품질을 판단할 수 있는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는데. 상품과 서비스로 나누어 다음과 제시했다.

상품 품질의 기준: 성능, 외양, 설명서와의 일치성, 신뢰성, 내구성, 서비스 능력, 맞음새와 끝마무리
서비스 품질의 기준: 가시성, 신뢰성, 능력, 반응성, 동감성
                                                                     -출처: 브랜드 자산의 전략적 경영/데이비드 아커-


다만 문제는 고객에 따라 상황에 따라 경쟁사에 따라 어떠한 품질 기준에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표준화된 서비스 품질은 현재 처해 있는 위치를 냉철하게 판단하게 해 주고 무엇이 더 필요한지 알게 해줄 것이다.


공연의 품질을 나타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작품의 신뢰성을 꼽을 수 있겠다. 연기력을 인정을 받은 뛰어난 배우, 수준 높은 라인업을 보유한 기획사,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로 트렌드를 이끄는 연출가, 브로드웨이에서 인정받은 OST 등과 같이 공연의 본질적인 구성요소는 관객으로 하여금 직관적으로 품질을 가늠케 한다.

또한 예매 과정에서의 공연 정보의 정확성, 적절하게 배분된 좌석등급과 공연 규모에 맞는 극장 등이. 관람 과정에서의 하우스 매니저의 복장과 전문성, 티켓부스의 친절함과 빠른 발권과 같은 관객을 만나는 모든 접점에서 지각된 품질을 좌우할 수 있다. 시쳇말로 '공연만 잘 만들면 됐지'같은 말은 자조적인 말일뿐이다.


 관객은 공연 관람이 목적이지만 예매에서 관람을 끝내는 시점까지 모든 과정이 '지각된 품질'에 영향을 준다.




그러면 지각된 품질은 고객에게는 어작용을 할까?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발행한 '2014 뮤지컬 실태조사'에 따르면 관객의 뮤지컬 선택 시 중요 요소로 출연진(배우/80.7%), 줄거리(64.3%), 음악(49.7%), 제작진(31.4%) 등의 순으로 나타난다.

공연 특성상 관람 전까지는 실질적인 품질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앞에 나열된 요소는 고객이 예매 전 인식하게 되는 품질을 나타내는 요소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높은 지각된 품질의 브랜드는 수많은 브랜드 속에서  구매 시점에서 선택받을 확률이 매우 높다.


출연진이 가장 높은 선호를 나타내고 있지만 대부분의 공연이 유명 배우를 캐스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여전히 유명 배우가 없는 '라이어'는 십수 년간 스테디셀로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라이어'의 아류작으로 평가받던 '보잉보잉'은 그런 평가를 뒤로하고 대학로 대표 공연으로 발돋움했다. 꾸준한 공연으로 관객의 반응을 살피면서 점진적으로 완성도 높여 거듭났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수년전부터 새로운 기류는 영화나 드라마의 공연 화이다. 콘텐츠의 다양한 활용 측면도 있지만 이미 알려진 작품성으로 관객에게 품질을 짧은 시간 내에 인식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높은 지각된 품질은 가격 프리미엄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다. 고객이 높은 가격을 지불할 용이가 있다는 말인데, 공연의 가격은 극장 규모에 따라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할인을 하지 않아도 판매가 잘 된다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수많은 공연이 가격 할인만을 유일한 무기로 경쟁하는 공연판에서 제 값에 판매가 된다는 것 자체가 성공적이다. 또한 가격 프리미엄은 비단 수익뿐만 아니라 재투자를 통해 더욱 유명한 배우, 좋은 극장, 최신 시스템으로 공연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쓰여 브랜드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

가격 프리미엄은 수익을 높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고객에게 더 큰 가치를 선사한다.


아쉽게도 많은 공연이 콘텐츠 생산자임에도 불구하고 예매처에게 을의 위치를 내어주고 있다.(인***라는 초강자가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나머지를 2~3개의 예매처가 각축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소위 오픈 빨을 받으려면 예매처의 도움이 절실함에도 잘 나가는 공연 위주로 마케팅 지원을 받기 때문에  소외를 받고 있다.그러나 지각된 품질이 높은 공연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서로 단독 유치를 위해 소위 베팅을 한다. 예매처에서 투자를 하기도 하고, 선지급(예상 판매금액 내에서 미리 지불함으로써 기획사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을 한다던지, 마케팅 툴을 제공하여 적극적으로 판매를 돕기도 한다. 모두 고객이 원하는 공연을 유치하기 위함이다. 당연히 잘 팔릴거라는 기대때문일 것이다. 갑을 관계가 바뀌는 순간이다.

지각된 품질이 높은 공연은 좋은 조건으로 유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마지막으로 브랜드 확장에 용이하다. 수년전 유행했던 말 중에 'One Source Multi Use'가 있다. 콘텐츠 하나로 다양하게 사용해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말인데. 공연에서는 성공한 브랜드 확장이 활발하다. 난타와 어린이 난타와 같이 고객군 확장이나 공연을 영화화하거나 체험전으로 재구성하는 장르 간의 확장을 예를 들 수 있다. 

브랜드 확장이 가능한 이유는 강력한 브랜드의 지각된 품질이 관객에게 전이되기 때문이다. 

 


가오 떨어져서 안 팔아요!

기업 로열티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기획사 마케터에게 들었던 말이다. 판매는 저조했으나 좋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대폭 할인을 해서 판매를 하자고 제안을 했던 참이었다. 당연히 '오케이'사인을 줄거라 믿었는데 의외의 반응에 당황했다.

'아니, 공연이 끝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팔아야 되지 않아요?'라는 현실적인 물음에 '가오'를 거론하는 것이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당시 마케터는 브랜드라는 말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브랜드 관리를 했다.  몇백 장 더 팔아봐야 할인으로 인해 브랜드에 미치는 악영향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힘든 상황을 버티며 꾸준히 이름을 알리는 소극장 공연, 없는 제작비에 유능한 연출가를 섭외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프로듀서, 작품에 몰입하기 위해 헤어진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는 배우까지... 아마도 그 마케터는 브랜드 가치를 높이 많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떨어지는 데는 순식간임을 직감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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