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He answered, “I have told you already and you did not listen. Why do you want to hear it again? Do you want to become his disciples too?”
바리새인들과 소경의 대화는 한 편의 콩트를 보는 듯하다. 소경에게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물었으나 그의 말을 믿지 않고 다시 되묻는 바리새인들. 내가 이미 말했는데 왜 믿지 않고 되묻느냐며 너희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길 원하냐고 묻는 소경. 그의 말에 길길이 날뛰는 바리새인들. 세상 방식에 익숙해진 소경의 부모에게는 바리새인들의 암묵적 위협이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나 예수님을 직접 만난 소경은 오히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바리새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경에게 바리새인들의 기를 꺾어보겠다거나 예수님을 옹호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소경으로 살아왔기에 그는 오직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을 그대로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는 죄인 취급을 당하며 쫓겨났지만 당대의 지성인이라던 바리새인들이 소경을 이기지 못한 채 이야기가 끝난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이와 같을까? 세상 권력으로 대변되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비단 예수님만을 감당하지 못하거나, 예수님에게 특수훈련을 받는 열두 제자만 감당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세상 가장 미천한 자리에 있는 듯 보이는 소경 한 사람조차 감당하지 못했다. 출신과 배경이 어떠하든 그가 오직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전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이 나에게 큰 위안을 준다. 우리는 때로 예수님처럼, 아니면 적어도 열두 제자나 사도들처럼 중요한 자리에 앉길 바란다. 세상 성공을 버린다는 이유로 여전히 믿음 안에서 또 다른 성공을 추구한 채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증언하는 소경을 통해서도 역사하신다.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요 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