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 코리아는 예술의 노다지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고요하기만 한 우리 항아리엔 움직임이 있고 속력이 있다.
싸늘한 사기지만 그 살결에는 다사로운 온도가 있다.
실로 조형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과장이 아니라 나로서는 미에 대한 개안(開眼)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둥근 항아리, 품에 넘치는 희고 둥근 항아리는 아직도 조형의 전위에 서 있지 않을까.
21세기의 1/5이 지나는 2021년. 전 세계가 팬데믹으로 이전에 당연히 누렸던 것들이 제한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제약이 전 세계인들을 똘똘 뭉치게 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온라인 활동이 증가되고 이런 변화에 따라 영상매체, SNS 등 다양한 온라인 매체 활동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콘텐츠가 한국 콘텐츠이다. 기생충부터 미나리, BTS, 오징어 게임까지. 하나의 물결이 솟아올랐다 잠잠해지면 또 다른 물결이 솟아오르고 K-콘텐츠가 선순환을 이루고 있다.
2021년 한국 문화예술의 키워드 중 하나는 이건희 컬렉션이다. 한국 근현대 작품들이 “이건희 컬렉션”이라는 조명을 받아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전시 관람 웨이팅을 하고 암표를 팔고 이슈화가 된 적이 있나 싶다. 그것도 전 세계 팬데믹 시대에. 세계가 한국문화에 열광할 때, 한국에서는 가장 한국적인, 그리고 여러 면에서 혼란기였던 한국 근현대 미술에 열광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 미술 작가들은 대외적으로 세계양차대전을 겪었고, 국내에서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었다. 전쟁통에 가장임에도 불구하고 돈 안 되는 예술활동을 이어가고 스스로 정체하지 않고 성장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정치, 문화, 사회 등 격변의 혼란기를 겪고 살아생전에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은 예술 작가들이 다반사이다.
한국 근현대 미술 작가 중 대외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고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본 거장.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 화백의 작품세계에 대해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한다.
1913년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신안의 안좌도라는 섬에서 태어난 키가 크고 목이 긴 남자. 수화 김환기.
김환기 화백의 작품 시대는 크게 일본 유학 시대-서울시대-파리 시대-뉴욕시대로 나뉜다.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느끼기 전에 작품의 원형질인 “한국”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아름다운 것을 느끼기 전에 아름다운 것을 알아야 한다.” 김환기가 살아생전에 했던 말이다.
첫 번째 아름다운 것이 김환기 작품이라면, 뒤에 나오는 아름다운 것은 한국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김환기 작품의 원형질은 “한국”이라는 뿌리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적인 요소 중 두 가지 키워드로 김환기 작품을 풀어내 보았다.
나는 아직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모두가 흰 빛깔이다. 그 흰 빛깔이 모두가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고요하기만 한 우리 항아리엔 움직임이 있고 속력이 있다.
싸늘한 사기지만 그 살결에는 다사로운 온도가 있다.
실로 조형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과장이 아니라 나로서는 미에 대한 개안(開眼)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둥근 항아리, 품에 넘치는 희고 둥근 항아리는 아직도 조형의 전위에 서 있지 않을까.
- 글, 김환기
그렇다면, 김환기 화백의 전시회를 가기 전, 한국의 도자기, 항아리를 먼저 구글링 해봐야 하지 않을까. 김환기 화백 그림의 시그니처이자 김환기 화백이 사랑해 마지않은 항아리. 항아리를 최소 1분이라도 느껴보고 그림을 만나본다면 느낌의 깊이만큼 작품에서 “한국적인 뿌리”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항아리라 함은 흙, 바람, 물, 불, 그리고 사람의 온기까지. 자연이 담겨있고 자연을 담는 그릇이다. 항아리에 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내가 항아리를 만든다면 나의 체온과 자연(흙, 바람, 물, 불)을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김환기 화백의 항아리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매화와 달과 백자」를 보면 백자에는 달이 담겨있다. 달은 하늘에 있는 별(土)이고 백자는 땅에 있는 별(土)이다. 하늘에 있는 별과 땅에 있는 별, 그리고 하늘과 땅 사이 수화 김환기라는 별을 만나 하나의 작품으로 우리 앞에 놓여있다. 그림이 개체(個體)로서가 아닌, 하나의 존재로서 마음의 울림이 “쿵!”하고 울려야 한다.
그림을 깊이 있게 감동으로 만나보려면 예술작품의 근원인 자연을 자주 접해야 한다. 평소에 하늘을 자주 올려다 보고, 땅을 자주 들여다 보고, 계절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고 그들의 감각에 다가서도록 우리가 자주 트레이닝해주어야 예술작품 앞에서 감동할 수 있는 그릇을 키울 수 있다.
「매화와 달과 백자」를 트레이닝으로 느껴보도록 하자.
그림을 제일 처음 봤을 때, 나의 느낌을 기억해 두고, 그림을 하나하나 분석해서 봤을 때와 Before&After 느낌을 비교해보자.
「매화와 달과 백자」 분석
1) 하얀 테두리 살리기
2) 파란 달과 백자 간의 거리감 느끼기
3) 백자와 매화 사이의 거리감 느끼기
4) 전체적인 공간감 느끼기
4가지 방법으로 분석해서 느껴보도록 할 텐데 첫 번 재로 그림에서 하얀 테두리 부분을 살려보려고 한다. "살린다"는 의미는 그 부분을 집중해서 천천히 느껴보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찬찬히 집중해서 살펴보듯이 그림도 애정을 가지고 집중해서 디테일하게 느껴본다. 그러면 하얀 부분이 입체감 있게 튀어나오는 느낌이 든다.
1) 하얀 테두리 살리기
2) 파란 달과 백자 간의 거리감 느끼기
3) 백자와 매화 사이의 거리감 느끼기
4) 전체적인 공간감 느끼기
두 번째는 파란 달을 살리고, 백자를 살려준다.
테두리의 굵기, 색채의 변화, 질감 등을 꼼꼼하게 느껴본다.
그리고 달과 백자 사이의 거리감을 느껴본다. 쭈----욱 멀어지는 느낌이 들 것이다.
++ 흰 테두리까지!!!!
1) 하얀 테두리 살리기
2) 파란 달과 백자 간의 거리감 느끼기
3) 백자와 매화 사이의 거리감 느끼기
4) 전체적인 공간감 느끼기
매화를 아랫부분부터 선의 굵기와 질감 등을 디테일하게 느껴본다.
매화를 살리고 나서 위 방법들과 마찬가지로 매화와 백자 간의 거리감을 느껴본다.
1) 하얀 테두리 살리기
2) 파란 달과 백자 간의 거리감 느끼기
3) 백자와 매화 사이의 거리감 느끼기
4) 전체적인 공간감 느끼기
그림에 애정을 쏟은 만큼 감동의 폭이 달라진다. 스스로 디테일하게 개체를 살려준 만큼 그림에서 입체감이 도드라지게 느껴질 것이다. 전경부터 매화-백자-달의 거리감과 공간감을 그림에서 함께 느껴보자.
매화가 살랑살랑 살아나고, 백자의 우아한 곡선이 느껴지고 은은한 달빛과 함께 하얀 테두리가 살아나면서 그림의 전체적인 푸른색 감이 생명력을 가지고 따스하게 품어준다. 그림에서의 따스한 온기가 나에게도 느껴지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순결을 좋아합니다.
깨끗하고 단순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백의민족이라 부르도록 흰빛을 사랑하고 흰옷을 많이 입었습니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에 사는 우리들은 푸른 자기 청자를 만들었고,
간결을 사랑하고 흰옷을 입는 우리들은 흰 자기, 저 아름다운 백자를 만들었습니다.
- 글, 김환기
김환기 화백의 색채라 하면 “환기 블루” 파란색이 떠오른다. 김환기 화백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도 파란 점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전통 오방색 중 청(靑) 색의 의미는 “나무가 모인 산의 색. 동쪽, 봄의 색으로 생명, 창조를 상징” 한다고 되어 있다. 김환기 화백의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제목에서 별과 우주에 관련된 제목이 많고 캔버스 가득 파란색으로 채워져 있다. 파란 점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림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과 점들의 율동감이 느껴진다.
예를 들어 김환기 화백의 「우주, 1971년」라는 작품을 감상할 때, 1971년 김환기 화백의 「우주」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김환기 화백이 태어나면서 겪었던 삶의 전체와 한국이라는 토양적 뿌리, 그리고 김환기 화백이 태어나기 전, 생명의 근원적 진리와 현재 2021년의 나의 모습까지 전체적인 시야에서 「우주」라는 예술작품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환기 블루라는 키워드로 분석해 볼 김환기 화백의 두 번째 작품은 「우주(Universe 5-IV-71 #200), 1971」 이다.
1) 질감 느끼기
2) 파란색 느끼기
김환기 화백의 질감을 깊이 있게 느끼는 방법 중 하나가 우리나라 분청사기, 백자, 청자 등을 많이 접하고 자주 보는 것이다. 왼쪽의 조선시대 분청사기의 무늬, 질감과 김환기 화백의 작품을 함께 보자.
예시로 제시된 분청사기는 인화문(印花紋) (도자기를 만들 때에, 도장 따위의 도구로 눌러 찍어 무늬를 만드는 기법. 또는 그 무늬. 네이버 사전 참조)으로 만든 분청사기이다.
김환기 화백의 후기 작품과 인화문 분청사기의 공통점은 단순함과 반복이다. 아이들은 하나의 놀이에 빠지면 단순한 행동을 무한 반복한다. 어른들은 2-3번 같은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지루해하고 금방 실증을 느끼게 된다. 점찍는 단순한 작업을 나의 마음을 담아 내 삶을 담아 찍었던 전면점화는 어찌 보면 수행(修行)이다.
1) 질감 느끼기
2) 파란색 느끼기
텍스쳐를 느끼고 난 후, 파란색을 느껴보자.
제일 진한 파란색을 찾아보자. 그림에서 회전하는 운동감이 더 강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그림의 제일 밑바탕 파란 부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살려보자.
점들이 하나하나 입체감을 내면서 춤을 추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살아생전 김환기 화백이 했던 말이다.
바꿔 말하면, 우리 존재 하나하나는 "예술의 노다지"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무한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21세기에 발이 묶인 팬데믹 시대가
나의 내면에는 무엇이 담겨있고,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나를 표현할 수 있는지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내면 여행의 마지막 기회이자 선물일지도 모른다.
김환기 화백의 그림에 무엇을 담았을까 다시 한번 느껴보면서,
나의 내면 여행의 티켓팅을 끊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