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블록체인 산업에서 근무하면서 느꼈던 점들에 대하여 정리해보았습니다
필자는 블록체인 비즈니스가 한창 붐이었던 2018년 초부터 블록체인 공부를 시작해서, 2019년 12월 31일까지 블록체인 메인넷사와 암호화폐 지갑사에서 근무를 해왔다. 비록 2년이라는 기간이 짧다면 짧을 수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압축적으로 2년을 살아왔다고 자부하기에 그동안 블록체인 산업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점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블록체인 산업이 굉장히 특수한 산업이긴 하지만, 블록체인 산업뿐만 아니라 신기술 기반의 비즈니스를 진행하는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을 내용이라 생각한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근무를 하면서 항상 느꼈던 감정은 ‘블록체인 비즈니스 참 어렵다’였다. 이러한 감정이 드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큰 점은 명시적인 법 제도가 없다는 점이었다.
우선, 명확한 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당장 어떤 근거 하에 비즈니스를 운영해야 할지 방향성이 흔들리고, 비즈니스를 확장하기에는 더더욱 조심스럽다. 비즈니스 운영과 규제 간 상관관계에 대하여 반문하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지만, 언제 어떤 근거로 규제가 들이닥칠지 알 수 없는 불안함 속에서 비즈니스를 운영해야 하는 어려움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서는 체감을 하기 어려울 수 있다.
작년 11월에 게임위원회로부터 등급거부 판정 확정을 받은 노드브릭이 그러한 어려움을 겪은 사례에 해당된다. 노드브릭이 등급 거부 판정을 받은 이유는 ‘사행성 조장’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정확히는, 게임 내 재화(암호화폐)가 실제 현금으로 환전될 수 있고, 게임 운영방식에 따라 사행성을 조장할 수 있다는 판정이다. 그런데 블록체인 서비스를 하는 모든 기업은 암호화폐 기반의 토큰 이코노미를 비즈니스 모델로 그리고 있다. 게임위원회가 블록체인 게임에 대한 전면적 금지가 아니라고 하지만, 암호화폐 기반의 토큰 이코노미 서비스를 준비하던 수많은 블록체인 게임사들에 대한 금지가 사실상 맞다고 판단된다. 해외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문을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해외도 마찬가지로 규제가 정립되지 않은 곳이 많아서 불안정하고, 해외 서비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인적, 시간적 비용이 들어 서비스 운영이 어려워진다.
그나마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곳은 자체 법무팀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하고 진행할 수 있다. 다행이다. 하지만,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더욱 보수적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검토할 수밖에 없어진다. 정부에서 ‘블록체인은 양성하고, 암호화폐는 규제한다’는 기조가 변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기업도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운영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들은 더 최악이다. 법적 근거에 맞게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싶어도 자금적, 리소스적인 한계로 매번 법무적인 도움을 받으면서 비즈니스를 운영하기 어렵다. 규제가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이드라인이 너무 없어서 산업이 발전하기 어려운 것이다.
규제가 없는 상황을 악용하는 업체들이 판치는 것도 문제다. ICO를 악용하여 사기를 치거나, 암호화폐 거래소 먹튀 논란 등 투자자들의 피해 사례들이 너무나 많다. 정부에서도, 투자사 입장에서도 블록체인 산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어떤 블록체인 프로젝트 관계자는 투자사들이 IR 자료를 평가할 때 블록체인 관련 단어가 있는 IR자료보다 블록체인 관련 표현이 없는 IR 자료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더라는 말을 했었다. 블록체인/암호화폐 비즈니스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법제화가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편견을 없애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그다음으로 블록체인 비즈니스가 어렵다고 느낀 이유는 ‘탈중앙화’라는 블록체인의 이념과 현실 사이의 괴뢰에 있다. 몇몇 블록체인 업체나 관계자를 만나다 보면 탈중앙화라는 가치를 너무 중요시하다 보니, 비즈니스에 중앙화적인 요소가 없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거나 중앙화적인 요소 도입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한다. 대표의 비전이나 가치관은 각각 다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다.
회사에 가장 필요한, 불변의 요소는 ‘자본’이다. 탈중앙화를 고집하다가 사용자에게 불편한 UX를 강요하게 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게 되면 당연히 사용자가 이탈하게 된다. 사용자 이탈로 인해 매출이 감소하고, 직원을 정리해고하게 되면 당장 탈중앙화가 무슨 소용인가? 탈중앙화는 비전이다. 현시점에서 가장 합당한 방법을 찾고, 점진적으로 탈중앙화적인 요소를 늘려나가면 된다. 혹자는 ‘이더리움이 비탈릭 부테린이라는 존재가 있어서 중앙화되어있다’, ‘이더리움 기반의 DApp들은 블록체인이 아니다’는 등의 말을 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도 이해는 된다. 하지만 블록체인 업체들이 자금난에 전부 죽어나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그러한 말들이 가끔은 너무 여유롭거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2018년 즈음 유행했던 위의 짤처럼, 우리는 ICO를 통해 자금을 확보한 블록체인 기업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을 많이 보았고, 출시된 서비스들 중 상당수가 백서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것도 많이 보았다. 이상과 현실을 직시하고, 이상으로 다가가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론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블록체인은 ‘경제’, ‘사회’, ‘기술’, ‘정치’ 등의 다양한 요소들의 큰 변화를 요구한다. ‘암호화폐’와 ‘토큰 이코노미’로 대변되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경제 시스템과 ‘탈중앙화’, ‘합의 알고리즘’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회/정치 시스템, ‘암호화’, ‘데이터 분산화’와 관련된 기술 등이 모두 복합적으로 어우러졌을 때 블록체인 기술을 온전히 활용했다고 할 수 있다.
말만 들어도 너무 복잡하고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다. 어느 한 요소도 명확하게 자리 잡히지 않은 현재의 상황을 돌이켜보았을 때, 진정한 의미의 블록체인 시스템이 구축되려면 아주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도입되어서 ‘비용 감소, 매출 증가’라는 효율성을 가져다줄 수 있을 정도로 기술적 발전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기술적 진보를 이루어내고 이렇게 복잡한 요소들을 전부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 규모, 전문성 없이는 블록체인 비즈니스를 운영하기 쉽지 않다. 탈중앙화라는 이념과 역설적이게도, 대기업들이 블록체인 산업을 이끌어나가는 이유이고 블록체인을 도입하여 세상을 바꾸겠다던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자금을 모집하고도 ‘가격 방어’에만 몰두하거나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또 다른 이유이다. 수많은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기술적 발전이 이루어져야 하고, 기술적 발전을 위한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혼자 다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조금 부족한 부분은 다른 회사와 적극 협력해야겠다는 생각이 기술적 발전과 산업의 부흥을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돌이켜서 2년을 돌아보면, 한때 신기술 기반의 비즈니스라는 꿈을 꿨고 정말 열정적으로 일을 해온 것에 대한 자부심은 있다. 대기업 입사도 포기하고 블록체인 스타트업에 입사하여 일주일 중 절반은 회사에서 밤새면서까지 블록체인을 공부하고 일을 하다 잠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장성 없는 곳에서의 비즈니스는 회사로서도, 직원으로서도 모두 힘든 순간이 정말 많았고, 그때마다 신기술 기반의 비즈니스는 자금적 여력이 뒷받침되는 기업에서 이끌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AI 산업도 결국 데이터를 상대적으로 많이 보유한 기업, 혹은 데이터를 가공할 만한 자금적, 인적 여유가 되는 기업들이 산업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부정적인 시선을 많이 내비쳤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순수하게 블록체인 기술의 진보를 위해 힘쓰는 회사와 직원들이 정말 많이 있다.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열정을 바쳤었던 블록체인 산업이 꼭 양지로 올라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