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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쾌한범주 Apr 24. 2020

똥멍청이가 되어버렸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프란츠 카프카, 『변신』


여태 나는 현실에서의 자신의 삶에 열심을 다하는 사람들이 쓰는 글들 중 대단한 것들을 많이 보지 못했다. 작가가 전업이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라거나, 배가 고파야 글이 나온다는 구시대적 서사 아니다. 그것은 의미 없이 흘러 보내는 시간, 타인과 다른 시간의 흐름, 가치 없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고, 거기서 오는 불안감이나 자기혐오 따위의 것들이다.


지난주, 쓰레기 수거일에 맞추어 쓰레기통을 집 앞 도로 가에 놔두고 오는 길에, 문뜩 내 시야가 좁아졌음을 깨달았다. 안목이 좁아졌다는 비유가 아닌, 글자 그대로 신체적인 시야가 좁아졌음을 느꼈다. 하늘이 높고 넓은 나라에 살면서도, 너른 하늘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 한 사물을 보는 눈은 깊어졌지만, 전체적인 풍경을 보는 눈은 사라졌다. 자동차, 일터, 마트, 쓰레기통 따위의 객체에만 눈이 가고, 주위의 의미 없는 사물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린 날의 내가 쓰던 글들을 더 이상 쓸 수 없던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무가치한 것들에 마음을 두지 않았다. 스스로 똥멍청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사고할 수 없고, 글을 쓸 수 없는 똥멍청이가 되었다.


오늘은 아이의 체력을 소모해 쉽게 낮잠을 재우기 위한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갓 잠이든 아이를 침실에 눕혀두고 거실에서 혼자 쉬고 있었다. 차가운 커피 한 잔을 타서 거실 구석의 커다란 창가 소파에 반쯤 눕듯이 기대어 앉았다. 조용하지만 적막하지 않고 포근했다. 때마침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 저 멀리 콘센트에 꽂아 충전을 시켜두었고, 무선 이어폰의 배터리까지 바닥이라 음악조차 없이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의 궂은 날씨가 거짓말인 듯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저 멀리 점처럼 지나가는 비행기는 먼 거리 탓에 멈춘 듯 움직여 오히려 지루함을 더해주었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었던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모든 주변 환경이 멍 때리기에 완벽했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잡념이 다 사라지지는 않았다. 떠오르는 잡념들을 누르며 의식적으로 주위의 사물들을 관조하며 마음 챙김을 하였다. 창 밖으로 보이는 옆집 지붕의 생김새, 가로수의 나뭇잎, 조용히 들리는 주방 냉장고의 소음에 집중했다. 무념은 그다음 집중을 가져왔고, 높은 효율의 LED 전구처럼 쓸데없이 달아오르지 않고 빛을 비추었다.


내가 똥멍청이가 되어버린 이유는 의미 없이 멍 때리는 시간의 부재였다. 멍 때리는데 근육이 필요하다면 나에게 붙어 있는 건 오래 쓰지 않아 약해진 것들 뿐이었다. 이 짧은 시간의 멍 때림에서 어린 시절의 나를 어렴풋이 보았다. 그때의 나는 호숫가 앞에서 한나절을 보내었고, 뉴질랜드 하늘의 유독 빨리 흐르는 구름을 신기해했었다. 그때의 나는 눈을 감아도, 길을 걸어도 글감이 떠올랐었다.


나는 이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실물 경제 제조업에 종사하는 내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가족들과 나란히 손잡고 굶어 죽기에 딱 좋다. 굶어 죽지 않더라도 커다란 나의 욕심을 채우기는 힘들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는 벌레가 되어 글을 썼고,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을 혐오하며 글을 썼지만, 나는 바쁘게 일하는 똥멍청이가 되어 더 이상 예전의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자괴감이 들지만, 나 자신이 아닌 다른 것들을 재료로 삼는다면 여전히 쓸 수 있는 글들이 있다고 믿으며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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