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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규 Sep 27. 2023

건강하게 여행을 마칩니다

2023.5.30(화)

파리의 동서남북을 넘나들며 관광 측면에서 핵심적인 지점을 10시간에 섭렵하는 가이드 투어를 진행했다.


지점 점프는 지하철을 이용했다. 각자 5장의 티켓을 소모했으니, (한 번은 몽마르트 올라가는 푸니쿨라 케이블카) 샹젤리제 거리를 시작으로 에펠탑에서 끝나는 일정은 10시간 시티투어 프로그램으로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웃으면 배우 박신혜를 똑닮은 가이드가 긴 시간을 흐트러짐 하나 없이 매끄럽게 이끌어서, 나도 만족이지만 우리 두 아이도 가이드 옆에서 걸으려고 할 정도로 친절하다.


투어 시작하고 2시간 반 정도 지나자 작은아이가 10명 투어팀 사이에서 울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소리를 질러서 내가 강제로 안고 20미터 떨어진 곳으로 갔다. 꼭 끌어안고 한참을 있었더니, 답답하니 그만 안으라고 해서 떨어졌다.


20분 정도 옥신각신 대화가 이어지다가 아이가 몽마르트 꼭대기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 동! 학! 대!” 구호를 씩씩하게 외치며.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시야의 끝에서 외국인 여성에게 둘러싸여서 뭔가를 하소연하는 모습이다. 멀리서 보니 아이는 퍼포먼스의 주인공 모습이다. 아이는 연신 떠들고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킨다. 주변의 관광객은 아이를 주목했다가 아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하는 모습이 음소거된 연극의 한 장면이다. 


‘아, 저렇게 주인공으로 탄생하는구나.’


오만가지 생각에 잠시 다른 곳을 봤다가 다시 아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주변 여성 관광객들도 다른 이들로 바뀌었다.


비탈진 몽마르트 거리를 오르내리며 아이를 찾고 있는데, 한국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의 엄마다.


아이는 외국인 관광객(아이는 항상 성인 여성에게만 어필한다)과 가까운 레스토랑에 들어갔고, 처음 보는 사람의 전화로 자기 엄마에게 전화한 것이다. (매우 침착하고 당당한 목소리로, ‘나 길 잃었다’고 말했단다)


나를 만난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근처 기념품점으로 사라졌다.

아이는 퍼포먼스의 기획자이면서 현장 감독이고 동시에 주인공 롤이다. 이름 없는 엑스트라로 외국인 여성 관광객이 동원됐고, 나는 꽤 비중있는 조연으로 캐스팅됐다. 모든 것은 즉석에서 이루어졌고, 짧은 스킷(skit;촌극)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지루한 가이드투어에 강렬한 쉼표가 찍혔고, 이후 저녁 7시까지 아이는 별다른 말썽없이 투어를 마쳤다.


(여자 선생님과 큰아이는 무대 밖에 있어서 퍼포먼스를 볼 수 없었다)



내가 초등 6학년 때 지금의 여행(파리투어)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아마도 가슴이 벅차서 주체하기 힘들었을 게다. 아주 얇은 배경지식이 동원됐을 거고(명사에 불과한 나폴레옹/잔다르크/베르사이유/예술가/패션/향수 뭐 이런 것 정도) 머릿속에서 계속 질문이 쏟아졌을 게다.


그런데


큰아이는 평소 나에게 쉴 새없이 질문을 해대는데, 오늘은 단 한번도 질문이 없다.


큰아이의 성향으로 볼 때 질문이 없다는 건 가이드의 설명을 전혀 듣지 않았다는 걸 말한다.


“너는 오늘 한번도 내게 질문이 없구나. 내가 볼 때 가이드 설명을 듣지 않았다고 생각해”


큰아이는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 내가 설명을 듣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선생님이 알아? 나는 듣긴 들었다구….”


대답의 뉘앙스에서 듣지 않고 따라만 다녔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이는 이어서 말했다.


“뭐 내가 관심이 없는 얘기들 뿐이잖아. 그래도 들었어. 듣긴 들었다니까”


음….


질문이 없다는 건 해당 주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오늘 파리투어는 완벽했다. 날씨가 절반은 기여했다. 투어에 루이14세가 자주 등장했고, 나폴레옹도 주요 등장인물이다. 프랑스혁명을 가이드는 자주 언급했다.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바스티유 광장에서 프랑스혁명의 배경과 진행을 10분 요약으로 설명하는 신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오히려 흘려들어도 몇 가지는 주어담는 건 작은아이였다. 


내 경우엔 복잡한 파리 지하철에 대해 두려움이 없어졌다.


암튼 일주일은 걸릴 파리 중심지 체험을 단 10시간에 다이제스트했다.


오늘 2만 보를 걸었다. 역시 까미노의 힘! 긴 걷기가 우리 아이들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다른 투어러들은 힘들어 쩔쩔매기도 하는데 말이다. 



비로소 우리의 5주 여행은 끝났다.


내일 아침 공항으로 가서 한국으로 복귀한다.


건강하게 돌아가기에 마음 뿌듯하다. 


두 아이는 영웅적인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진정으로 축하와 칭찬의 박수를 보낸다.


내 짝궁 여자 선생님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고생 많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열심히 여주 생활을 이어가겠다고 말한다. 절대 내가 강요하지 않은 다짐이다. 


여행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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