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바리들 싹을 잘라라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어느덧 세타의 경고가 10회를 맞았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시간입니다만, 여러분의 의견과 요청이 있다면 번외편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번외편은 개인방송이 아닌 책으로 만나시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자, 그럼 오늘도 토끼탈 님 모시고 말씀 나누고, 김조영 성우님께 소설 낭독 부탁하겠습니다.”
“구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토끼탈이에요. 오늘 방송이 마지막 시간이어서 저로서는 기뻐요. 방송은 항상 긴장되고 저를 옥죄는 장치라서 힘들었거든요. 마지막 시간이니만큼 최선을 다해 힘을 낼게요.”
“먼저 소설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성한이 김조영 성우에게 사인을 보낸다.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2018년12월3일 영장실질심사를 받는다. 피의사실은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이다. 2014년 세월호 참극 이후 유가족을 사찰하고 정보를 수집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피의자 신분으로서 이재수는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가는 길에 정장을 입고 수갑을 찬 채 검찰 로고가 박힌 천으로 손목을 둘렀다. 수갑으로 두 손이 묶인 모습이 TV를 탔다. 영장실질심사 결과는 구속영장 기각이지만 이재수는 이미 대역죄인으로 전파를 탄 셈이다. 검찰의 의도가 반영된 시나리오였다.
나흘 후 이재수는 투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구속영장 기각으로 집으로 돌아간 다음 날 검찰이 출석을 요구했다. 출석통보 바로 다음 날 중앙지검에 출석한 이재수는 공안2부 김성환 부장검사와 마주 앉았다. 김 검사는 이재수에게 서늘한 제안을 한다.
“사령관님. 군인으로서 명예를 지키시길 바랍니다. 사령관님이 여러 사람을 구할 수 있습니다. 친구인 박지만을 지킬 수 있고, 미국으로 도망간 조현천을 지킬 수 있고, 기무사 부하들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재수는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지만, 실패한 쿠데타는 내란음모입니다. 사령관님은 내란음모의 수괴이므로 어차피 사형을 피할 수 없습니다. 군인으로서 명예를 지키고 동료와 부하를 구할지, 나라를 풍비박살내고 주변 사람들이 내란의 무거운 형벌로 평생을 지옥에서 살게 할지는 사령관님에게 달렸습니다. 사령관님 명예를 지켜주고자 구속영장이 기각되도록 제가 힘썼습니다. 구치소에 들어가면 명예회복은 물 건너가는 일이 될 테니까요. 사령관님 가족도 저희가 돕겠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지요.”
중앙지검을 나와 이재수는 박지만에게 전화한다.
“박 회장. 내가 이승에서 죄를 많이 지었어. 다음 생에서 이번 생의 죄가 업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네. 어차피 이번 생은 박 회장의 분신으로 살았으니 네 죄도 내가 지울게. 다음 생에는 박 회장도 평범한 집의 아들로 태어나시게.”
“지금 만나자. 어디야? 내가 갈게.”
박지만이 싸한 느낌을 받고 빠르게 말했다.
“아니. 내가 많이 피곤해. 그냥 집에 가서 쉬어야겠어. 내일이나 모레 만나자. 내가 사무실로 갈게.”
12월7일 서울의 아침은 영하10도를 보인다. 구름이 잔뜩 끼었고 바람이 드세다. 이재수는 박지만과 약속한 문정동의 기무사 안가로 향했다. 전에도 박지만과 자주 미팅하던 곳이다. 박지만은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누군가 감시할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필요 없다. 이재수는 박지만이 탄 차에 다가가서 창문에 노크를 했다. 곧바로 돌아서서 손짓으로 올라오라는 사인을 했다.
“박지만 회장님. 제가 결자해지하는 게 맞겠습니다. 한 세상 당신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야, 왜이래. 갑자기 존댓말을 쓰고. 기분 묘하게. 그러지 마라. 그러지 말라고 찾아온 거야.”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다만…. 이제 군인이란 놈들은 하나도 없어. 다 배신하는 거 봐라. 총 든 놈들이 닌자에게 당하는 거 봐. 나라도 배신하지 않는 군인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내가 그래야 박 회장이 무사할 수 있어. 네가 무사한 건 내 인생의 목표였지. 그리고 내 가족을 잘 부탁해. 그러면 아무런 회한이 없어.”
“재수야 이러지 마라. 재수 있어야지 재수 없는 세상은 재수 없어.”
박지만이 나름 아재 개그로 분위기를 바꾸려고 했다. 그리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들이는데 이재수가 눈을 동그랗게 말고 소리 없이 웃는다.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하하하. 재수 없어도 넌 재수 있을 거야.”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이재수의 뒷모습이 이승의 마지막 살아있는 모습이었다.
“여기서 잠시 멈추고 토크를 이어가겠습니다. 신 삼국지 시대는 청와대 국정원 검찰, 이렇게 세 권력 기관의 군웅할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성한이 소설 낭독을 끊고 물었다.
“네. 문재인 취임 이듬해 이재수의 투신자살이 군부 몰락의 상징이지요. 솥단지가 세 개의 발로 선다는 정립(鼎立)에서 군부는 끼지 못했어요. 사실상 국정원 원톱 체제로 가는 도중에 청와대 권력은 최고권력자 대통령의 이미지로 참가했어요. 하지만 검찰은 달라요. 국정원이나 청와대가 물리적 공권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불법에 대한 응징은 검찰로만 통하기 때문에 검찰이 합법적 공권력을 가진 집단이에요.”
“청와대는 실권이 없었다는 말씀인가요?”
“그래요. ‘넌 쿠데타가 있었다면 죽은 목숨이니, 우리가 살려줬다는 걸 명심하고 가이드를 벗어나지 마라’고 한 거지요.”
토끼탈이 대답했다.
“아니, 누가 누구에게 한 말입니까?”
“국정원이 문재인에게 한 말이에요.”
“국정원의 누구입니까? 더 좁혀 말씀해주세요. 김기춘입니까?”
“김기춘의 메시지를 받은 이명호가 문재인에게 전한 말이에요.”
“언제입니까? 이명호는 2017년2월에 국정원을 나왔습니다. 문재인이 본격적으로 선거에 뛰어든 것은 3월 말입니다. 시점이 이해가지 않습니다.”
이성한이 고개를 갸웃하며 팩트가 맞느냐며 쉽게 동의할 수 없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이명호는 사법처리 돼야 함에도 2017년 2월에 슬그머니 국정원을 나왔어요. 아무런 징계도 없었구요. 나중에 국정원법 위반, 즉 민간인 사찰로 기소돼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나왔어요. 대법원에서 재작년에 징역 2년이 확정됐어요. 이미 수감생활을 해서 한 달여 만 교도소 생활을 하다가 작년 2월에 출소했지요. 문제는 그 다음이에요. 윤석열 취임 후 망자들이 묘지에서 일어나 속속 복귀하고 있거든요. 이명호는 국정원에 복귀했어요. 작년에 느닷없이 국정원 비서실장 직속으로 방첩센터를 만들었거든요. 간첩 잡는 방첩센터에 기술자로서 이명호는 복귀했어요. 방첩센터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민주노총 압수수색과 간첩 만들기였어요.”
토끼탈이 자기 말을 의심하지 말라며 꾹꾹 힘을 주어 말했다.
“이명호 8국장이 작년에 다시 국정원 소속이 됐다구요? 올해 사천호 2차장이 10년 만에 국회의원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것과 같은 흐름입니다. 그렇다면….”
“네. 김기춘이 살아 움직인다는 확실한 신호예요.”
“토끼탈 님이 지난 시간에 고려 말 정치 상황과 똑같다고 말씀하셨는데, 현재 날개를 잃은 군부가 고려 말의 권문세족에 해당한다는 건 알겠습니다. 신진사대부의 온건파 정몽주와 급진파 정도전 진영의 권력투쟁 결과 정도전 진영이 윤석열을 내세우고 정몽주 세력은 이준석을 앞세워 유승민을 밀었다고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김기춘이 계속 움직였다면 제가 이해한 게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어찌 된 겁니까?”
“아바타가 윤석열과 유승민으로 갈린 상황은 정도전 진영의 분열을 말해요. 정몽주는 OB, 정도전은 YB로 봐야지 정몽주를 온건파로 표현할 순 없어요. 즉 정몽주 진영은 올드보이 김기춘 진영입니다. 국정원 말뚝 이명호도 그렇고 사천호 현 의원도 올드보이의 귀환을 말하는 거지요. 그래서 현재 국정원이 사생결단 권력 싸움으로 난리법석이에요. 급조 방첩센터도 1년도 유지하지 못하고 해체해서 2차장 밑으로 넣었거든요. 소위 1급 승진을 둘러싼 국정원 인사파동도 국정원 내 어지러운 사정을 말해요. 윤석열은 외교관 출신 김규현과 조태용을 잇따라 국정원장으로 내세워 국정원을 장악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토끼탈이 추가 설명했다.
“그럼 국정원이 윤석열 말을 듣지 않는 겁니까?”
“아직 국정원 주류는 말뚝박이들에게 있어요. 이재수가 기획했던 것처럼 장갑차로 밀어버리지 못하는 한 말뚝박이들이 국정원 꿀단지를 내놓을 리가 없죠.”
“80대 중반의 김기춘은 국정원 말뚝 세력인 올드보이를 움직여 무엇을 바라고 있습니까?”
이성한이 다시 물었다.
“권력은 질병이거든요. 죽을 때까지가 아니라 죽어서도 놓지 못하는 정신질환입니다. 권력을 탐하는 것은. 문제는 치료제가 없다는 거예요. 예방만 가능하고 일단 감염 되면 치료가 불가능해요. 김기춘은 자신이 대통령을 할 수 없지만 대통령을 만들어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문재인에게 강한 경고를 하며 세월호 만큼은 자신의 말을 듣도록 만들었어요. 세월호 학살은 김기춘이 기획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김기춘은 박지만 이재수와 공동의 책임을 지고 있잖아요. 세월호를 영원히 지우려고 온갖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요.”
토끼탈이 대답했다.
“세월호를 지우려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벌였습니까?”
“문재인 정부에서 세월호 학살을 완전히 지우려고 했어요. 실제로 거의 지울 뻔 했죠. 2021년 1월에 세월호 특수단은 ‘기무사․국정원의 세월호 유가족 사찰 의혹, 법무부․청와대의 검찰․감사원 외압의혹 등에 대하여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려요. 세월호를 둘러싼 모든 피의자들을 혐의 없다고 결론 낸 거예요. 다만 지들도 너무하다고 생각했는지 세월호 DVR 조작 의혹은 특검에 넘기겠다고 하며 결론을 내지 않았어요. 그러나 DVR 조작을 수사하는 원포인트 특검도 같은 해 8월에 아무런 조작이 없었노라고 발표해요. 그들의 어법은 ’의심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를 반복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9차례에 걸친 정부의 공식 수사 및 조사를 문재인 퇴임 전에 마무리해요. 결론은 ‘아무도 세월호 침몰에 간여하지 않았다’인 거예요. 세월호에 관해 윤석열 정부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작업한 거예요. 국정원이 한 짓이죠. 이때까지는 국정원 OB만 있고 YB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요.”
“저도 기억납니다. 이현주 DVR 특검이 조작 혐의가 없다고 발표한 내용이 어이없었습니다.”
“이현주 특검은 칠흑 같은 밤에 바다에 들어가서 DVR을 몰래 꺼내온다는 게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말했지요. 참으로 상식적이지 않은 말을 천연덕스럽게 뇌까리고 있었어요.”
“언제부터 OB와 YB가 갈라진 겁니까?”
이성한이 다시 물었다.
“국정원 OB가 국정원 자체였지요. 그들은 박근혜 탄핵으로 인해 문재인에게 청와대를 넘기는 건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하지만 포스트 문재인을 누구로 하느냐는 것도 마땅하지 않았어요. 일단 가능성 있는 야당 정치인을 제거하기로 했어요. 2018년3월6일에 안희정이 충남지사를 사퇴했지요. 안희정은 가장 유력한 20대 대통령이었죠. 가장 치욕스런 이유로 감옥을 다녀오는 바람에 영원히 재기가 불가능해요. 같은 해 7월에 노회찬 의원이 투신자살했어요. 투신을 당했다고 해야 되겠죠. 국정원 블랙데블 팀은 승용차에서 번개탄 자살, 투신자살, 산에 가서 나무에 목매고 자살, 강력한 인슐린주사로 돌연사 만들기 수법을 주로 써요. 옛날 김대중에게 써먹은 트럭으로 밀어버리기는 이제 동원하지 않아요. 이어서 2020년 7월에 박원순이 목을 매 자살합니다. 자살 동기 추정도 성추행 고발에 따른 죄책감이라고 언론 플레이를 해요. 황당하지만 그대로 언론 플레이가 통해요. 안희정이 아웃된 상황에서 박원순은 가장 강력한 20대 대통령이었구요. 그 다음이 조국이지요. 조국을 자유롭게 풀어놓으면 축구로 말했을 때 네이마르를 아무도 마크하지 않는 것과 같아요. 방해 받지 않는 네이마르가 골을 넣을 확률과 방해 받지 않는 조국이 대통령이 될 확률은 같아요. 조국의 가족이 박살난 배경이지요. 이제 이재명이 남았어요. 이재명은 듣보잡에 함량 미달이었어요. 대충 여배우 동원하고 소설가 동원해서 망신 주는 정도에서 그쳐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직접 암살을 시도해야 하는 거물로 자라버릴 줄 아무도 몰랐겠죠.”
“그러니까요. 국정원이 윤석열을 얼굴 마담으로 내세운 건 알겠는데, 지금은 OB와 YB로 나뉘어 싸운다고 하니, 어느 쪽이 윤석열 진영이고 그들이 왜 싸우는 겁니까?”
“YB가 없으니 OB라고 부를 수도 없었던 국정원 구파는 윤석열이 얼굴 마담이 아니라 차기까지도 노리는 독자 세력화를 추진하면서 새롭게 진영을 꾸려서 상대적으로 OB가 됐어요. 그러니까 YB는 검찰 세력을 말해요. 과거엔 국정원이 검찰을 관리했기 때문에 국정원과 검찰은 갑을관계이면서 한 몸이었어요. 이제 검찰은 국정원의 영보이로서 독자노선을 걷게 됐다는 말이에요.”
“윤석열이 차기를 노린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성한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물었다.
“윤석열은 국정원이 자기를 자리에 앉혔지만 이제 자신이 국정원을 접수하려고 했죠. 윤석열은 무지한 몽상가라고 할 수 있어요. 자기가 추진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아내를 21대 대통령으로 만들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재명을 죽이지 않아도 피선거권만 박탈하면 김건희와 대적할만한 야권 주자가 없다고 생각했지요.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하는 게 아니라 돈과 매스컴으로 만드는 것이라 굳게 믿는 사람들이니까 개꿈을 용꿈이라고 밀어붙이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데, 뭡니까?”
이성한이 마음이 급해서 기다리지 못하고 어서 말을 이어가라고 채근했다.
“김건희를 21대 대통령으로 김기춘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요. 따라서 국정원 OB와 용산 YB의 전쟁이 시작된 거예요. 싸움의 결과는 뻔해요. 총과 대포가 사라진 한국에서 국정원의 정보와 블랙데블의 위력은 원탑이거든요. 국정원의 도청 능력을 용산 조무래기들이 어떻게 따라가요. 국정원 캐비넷을 검찰 캐비넷이 어떻게 따라가요. 못 따라가요. 문재인도 결정적으로 목숨의 위협에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최후의 수단으로 반대편 목숨을 거둘 수 있는 건 국정원 뿐이죠. 기무사가 해체되고 기능부전에 빠졌으니까 국정원만이 유일하게 물리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어요.”
“그러면 지난주에 말씀하시길 이성계도 자기 아들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윤석열도 어떤 최후를 맞이할지 관전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윤석열 지지율이 20%로 떨어졌고, 10%대 진입도 현실이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이 현재처럼 견디기 어렵다는 말씀입니까?”
“내년 봄에도 대통령으로 앉아있기 쉽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국정원 OB들이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에요. 명태균 같은 자들이 마음대로 떠들어도 대통령실이 꼼짝하지 못하는 건 국정원이 대통령실을 전혀 도와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대통령과 김건희의 약점을 조금씩 흘리고 있거든요. 문제는 탄핵이든 암살이든 윤석열 제거 후에 자신들이 내세울 대선 후보가 마땅치 않아서 주춤거리고 있어요. 한동훈 오세훈 다 안중에 없는 인물이에요. 차라리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를 털어주고 이재명을 포섭할 가능성이 높아요. 국정원은 예전과 같은 지위를 누리고 계속해서 특활비를 사용할 자유를 누린다면 이재명이든 조국이든 손잡을 수 있어요. 유시민을 포섭하거나 손석희 같이 국민 대다수가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고, 봉준호 박중훈 같은 대중예술 스타도 본인이 동의한다면 킹메이킹 하기에 어렵지 않을 거예요. 용혜인이나 우상호도 포섭이 가능하다고 봐요. 안철수는 자신에게 국정원이 거래를 제안할 기회가 충분히 있다고 믿고 있구요. 물론 혼자만의 착각이지만요.”
토끼탈이 가까운 날의 정치지형을 예언했다.
“그 말씀은 곧 누군가 유명세를 가진 사람이 라이징스타로 불거진다는 겁니까?”
“연말연시에 라이징스타가 출현할 것으로 예상해요. 그 사람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될 거예요.”
“이재명 재판 결과가 무죄로 나와도 정의의 승리로 볼 수 없는 것입니까?”
이성한이 항변의 느낌으로 물었다.
“김기춘이 살아있고 그의 수족들이 현역으로 활약하는데 PD님의 희망적 전망은 순진한 바람일 뿐이죠. 8.15 해방 후 지난 80년 동안 한국 현대사를 돌아보세요. 혁명적 계기가 없는데 저절로 합리적 양심에 의한 사회 작동은 이루어지지 않아요. 여전히 세상은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룰에 묶여있어요. 2014년에 학살기획을 하리라 그 누가 생각하겠어요. 차라리 독재체제라면 이해를 하겠어요. 한국 사회는 동서양 역사에 전례가 없는 기괴한 국가공동체이지요. 나라 이름을 표리부동으로 바꿔야 해요. 머리에 똥이 찬 게 아니라 기만으로 꽉 차있어요.”
“그렇다면 이재명 대표가 살아남았을 때 그것이 포섭의 결과인지 양심 세력의 승리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습니까?”
이성한이 좀 더 목소리를 높였다.
“그건 간단해요. 이재명도 세월호 참극이 제주4.3이나 광주5.18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변곡점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그런 이재명이 세월호 진실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다면 국정원에게 포섭됐거나 문재인처럼 국정원 협박에 무릎 꿇고 순종하는 거죠.”
토끼탈은 흥분한 이성한을 이해시키려는 듯 차분하고 약간 느리게 말했다.
“그 말씀을 이해합니다. 김어준도 같은 케이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날 바다> 영화까지 만들고 스핀오프 <유령선>도 제작해서 발표하고 이어서 가칭 <10분의 미스테리>로 세월호 다큐시리즈를 준비하던 김어준이 4년 전부터 세월호를 입에 담지 않고 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아니 그냥 죽겠다는 똘끼가 아니면 대항할 수 없는 세력의 협박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김어준의 태세전환입니다.”
“박주민 변호사, 지금은 3선 국회의원이지요, 이분도 마찬가지이에요. 세월호 변호사가 박주민의 별명이었는데 21대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세월호를 말하지 않고 있어요. 그게 2020년이에요. 김어준의 탈 세월호 변신과 같은 시기이지요. 2020년은 문재인 정부가 3년 차로서 사참위 활동이 의욕적으로 진행되던 시기였어요.”
“적어도 정치권에서는 세월호가 사라졌습니다. 극우 단체에서도 세월호는 사라졌습니다. 입에 담지 않습니다. ‘지겹다’ ‘시체장사’ 같은 망언도 이제는 하지 않습니다. 지난 4월에 KBS가 세월호 10주기 특집방송을 하려고 했지만 박민 사장이 가로막았습니다. 이런 일사분란함은 컨트롤타워가 없이는 불가능할 겁니다.”
이성한이 세월호가 사라지는 현상을 정리해서 말했다.
“그래요. 컨트롤타워는 국정원이고, 그들은 세월호를 말끔히 지우는 공작을 벌이고 있어요. 세월호 학살과 관련된 증거와 자료를 완벽하게 없애서 100년 후에도 밝혀낼 일이 없도록 만드는 거예요.”
“속이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지만 다시 소설로 들어가겠습니다. 김조영 성우님 부탁합니다.”
2020년 6월 중순 김어준은 상암동 tbs 교통방송에서 뉴스공장 방송을 마치고 스텝들과 아침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려는 참이었다. 세 명의 젊은 여성이 잠깐 면담을 요청하며 스튜디오 입구에 서있다. 세 사람은 뉴스공장 작가를 통해서 김어준에게 스튜디오 안에서 잠깐 시간을 내달라는 요청을 해놓은 상태다. 김어준은 어정쩡한 상황에서 만남을 허락했다. 세 사람은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와도 말이 없다. 두 사람은 김어준 양편에 붙어서 벽을 만들고 한 사람은 스케치북을 들고 김어준 50센티미터 거리에 바짝 다가섰다. 김어준은 러브액츄얼리의 스케치북 고백 퍼포먼스 이겠구나 짐작하며 미소를 짓는다. 짐작대로 스케치북 표지는 뒤로 넘어가고 굵은 글씨가 보인다.
‘더 이상 세월호를 다루지 말 것’
페이지가 넘어갔다.
‘종로구 평창동 산29번지’
또 페이지가 넘어갔다.
‘신애경 45세 760320’
페이지가 다시 넘어갔다.
‘김어준은 심장마비 돌연사’
페이지가 또 다시 넘어갔다.
‘신애경은 뒷산에서 목을 맨다.’
마지막 페이지가 나타났다.
‘살고 싶으면 세월호를 다루지 마라’
세 젊은 여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스튜디오 밖으로 사라졌다. 신애경은 김어준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신애경은 거의 외출을 하지 않고 존재감을 지우며 헌신적으로 살고 있다. 심지어 해외로 나갈 때도 서로 다른 비행기를 타고 여행지에서 만날 정도로 보안을 신경 쓰고 살고 있는데 주소는 물론 생년월일까지 알고 있다. 김어준의 곱슬머리가 직모로 꼿꼿이 서며 소름이 온몸을 감싼다. 2년 전 두바이에서 정청래와 함께 겪었던 살인의 경고가 떠올랐다. 김어준은 국정원 암살팀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다. 김어준은 세월호 진실을 무기한 기억의 창고에 가두기로 한다.
2017년 4월 중순에 이명호는 문재인 선거 캠프에 찾아갔다. 2017년3월10일 헌재에서 박근혜 탄핵이 인용된 후 4월3일에 모두가 예상한대로 문재인이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됐다. 이명호를 아는 인사들이 어색하게 반가워하며 환대한다. 이명호는 후보 비서실장 임종석을 배석시키고 문재인과 마주 앉았다.
“8국장이 어쩐 일이신가.”
문재인이 말문을 열었다. 문재인은 이명호를 잘 알고 있었다.
“이제 국장이 아닙니다. 지난 2월에 퇴사했습니다.”
이명호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셨군요. 이렇게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찾아와주셔서 고맙구요. 뭔가 용건이 있을 텐데 말씀하시면 잘 듣겠습니다.”
임종석이 문재인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대화의 물꼬를 텄다.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퇴사했지만 회사의 입장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당연히 19대 대통령은 문재인 아니겠습니까. 저희 회사는 문재인 대통령을 적극 도우려고 합니다.”
“잠시만요. 뭔가 착각하고 계십니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구입니다. 당연히 대통령을 도와야 하고 동시에 대통령의 명에 의해 움직여야 합니다. 당신이 딜을 하려는 자세는 어불성설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임종석이 발끈하며 받아쳤다.
“두 분이 어떻게 느끼든 상관없습니다. 저야 회사의 입장을 전달하는 메신저일 뿐이니까요. 제가 전령이다 보니 목이 잘려도 메시지는 잘 전달하고 가야합니다. 이미 비서실장을 역임하셨으니 아시겠지만 저희는 회사의 보스를 모시지 대통령의 명령을 받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뭐야! 니가 우리를 협박하려 여기를 왔단 말이야.”
흥분하는 임종석을 진정시키며 임 실장은 나가있으라고 문재인이 말한다.
“저희는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길이 남기를 바랍니다. 동원할 자원과 노하우를 총동원해서 적극적으로 대통령님을 돕겠습니다.”
이명호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그 다음 준비한 말씀을 어서 하시죠.”
문재인도 불쾌감을 굳이 숨기지 않고 말했다.
“한 가지만 약속해주십시오. 그러면 저희가 자유한국당을 컨트롤하고 내치와 외교 모두 걸림돌을 치울 테니 맘껏 정치하십시오. 특히 남북문제에 대해 청와대의 결정에 어떤 태클도 걸지 않겠습니다. 김정은도 만나고 평양도 다녀오십시오. 저희가 보유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 대통령님 행보에 주단을 깔아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런 말씀은 됐고, 진짜 필요한 말씀을 하시란 말이오.”
문재인은 이명호의 우호적인 립서비스가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불쾌감만 높아져서 빨리 말하고 사라지라고 재촉했다.
“차분하게 들어주세요. 한 가지는 세월호에 대해서 절대 나서지 말라는 청입니다. 세월호 자료를 요구하지도 말고 수사, 조사, 탐사 모든 욕망을 지우세요. 세월호에 관련해서는 질문도 하지 마십시오. 이 약속은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런 약속을 내가 어찌 할 수 있습니까. 12월 대선이 5월에 열리는 이유가 세월호 비극에 있는데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 내가 세월호를 외면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불쾌를 넘어 모욕당하는 느낌입니다. 이 국장이 이런 협박을 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만 돌아가십시오. 오늘의 기억을 잘 보관하겠습니다.”
문재인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약조를 못하신다면 선거 과정에서 돌아가십니다. 선거운동의 과로로 심장마비로 죽을 겁니다. 사모님과 준용이, 다혜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미 저희에게 빚진 걸 잊으시면 안 됩니다.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문재인 당신은 이미 제거됐을 겁니다. 우리 제안을 받지 않으면 절대 대통령이 될 수 없습니다. 약속만 한다면 21세기의 세종대왕이 되실 겁니다. 망가진 한국 사회를 통합하고 민생경제도 정상화하며 통일시대를 활짝 여십시오.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한민국의 최고 지도자가 되도록 저희가 견마지로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저희 도움 없이 성공한 대통령은 어렵습니다. 그전에 대통령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귀신이 대통령을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명호는 할 말을 다했다며 일어났다. 이명호가 캠프 사무실로 들어서면서 사무실 내 모든 휴대폰은 작동불능상태가 됐다. 그가 사무실을 떠나자 다시 휴대폰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입장에서 선택지는 없었다. 다만 이명호 뒤에 누가 있을까 생각했다. 현 이병호 원장일리는 없었다. 국정원 8국장이 보스라고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쉽게 짐작이 갔다. 문재인도 이명호와 김기춘의 관계를 익히 알고 있었고, 김기춘이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일했기 때문에 들은 얘기가 있기 때문이다.
2014년8월에 유민아빠를 살려야 한다고, 단 한 명의 희생자가 생겨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문재인 의원은 열흘 동안 찜통 천막에서 동조 단식했다. 문재인에게 세월호 동조 단식은 노무현 꼬리표를 떼고 고유 브랜드 정치인으로 만든 중요한 퍼포먼스였다. 대통령으로서 세월호를 철저히 외면하라고? 아니라면 대통령을 포기하든가 죽어야 한다고?
문재인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일단 참모들에게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루 일정을 비우고 집에만 있을 때 아내 김정숙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너무 고민하지 말아요. 망가진 조국을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잖아요. 멋진 대통령 능력 있는 대통령을 하세요. 세월호는 후대에 맡겨요. 김대중도 노무현도 해결하지 못한 국정원도 다음 세대에게 넘겨요. 오늘의 치욕을 멋지게 갚는 날이 올 거예요.”
“소설을 여기까지 읽겠습니다.”
이성한이 마무리를 하려고 낭독을 멈추게 했다. 잠시 녹화장에 정적이 흘렀다. 진행자로서 오디오 공백을 메워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성한은 말을 잇지 못했다. 유튜브 방송은 약속한 10회가 끝나가지만 우리나라가 처한 고난의 시간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하니 목이 멨다. 지금도 국정원 쟤를 어찌할 길이 없지 않은가. 저 괴물을 말이다. 하지만 당장 무엇이라도 말해야 했다.
“저는 오랫동안 왜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늘에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입이 쓰고 배가 뒤틀립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거절할 수 없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윤석열 검사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이명호가 말한 회사의 보스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는 데블 아니겠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의 이런 속사정을 청와대 참모가 공유했습니까?”
이성한이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이 검찰총장에 오르고 문재인 임기 중 하극상의 천박한 쇼를 보이고 결국 차기 대통령으로 나서도록 발판을 마련해준 것 아니냐는 항간의 비난을 소환했다.
“문재인의 속사정은 임종석 비서실장까지만 공유했어요. 아, 김정숙 여사도 있군요. 다른 참모들에게는 숨겼지만 검찰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주태백이 윤석열을 승진 임명하는 걸 보고 모든 참모진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문재인으로 눈치를 챘어요.”
“정말 조국 민정수석도 몰랐습니까?”
“조국 수석의 간여 여부는 소설적 상상력만 가능해요. 확인할 길이 없어요. 제 추정은 문재인이 조국에게 간청했을 것이라 봐요. 그냥 윤석열 임명에 대해 넘어가 달라고 했겠지요. 법무장관으로 일하면서 검찰총장을 통제하고 검찰의 민주적 개혁을 완수해 달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 결과는 우리가 다 보았던 것이고, 문재인은 아무 조치도 할 수 없었겠지요. 그러나 문재인은 21세기 세종대왕이 아니라 21세기에 고종이 환생한 격이에요. 역사와 조국에 대역죄인 됐어요. 책임을 피할 수 없지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웠어야죠. 방법적으로 민중에게 호소했어야죠.”
토끼탈이 살짝 울먹이며 말했다.
“여러분.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겠습니다. 세타의 경고에서 전하지 못한 내용은 곧 발간될 <세타의 경고> 책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분의 성원으로 용기를 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저희는 막을 내리지만 세월호 학살의 주범을 단죄하고 국정원 해체와 뒤틀린 권력 지형을 바로 잡아 민주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에 오늘이 1일입니다. 구독자 여러분을 책과 저항의 광장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토끼탈 님, 김조영 성우님 애쓰셨습니다. 구독자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