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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아직도 '판타지 지도'를 그리고 계신가요?

죽은 로드맵 심폐소생술

by 우디코치

솔직히 우리 모니터 한구석에 있는 그 파일 한번 열어볼까요? 네, 바로 '2025년 상반기 로드맵_최종_진짜최종_v3.xlsx' 파일 말입니다.


형형색색의 간트 차트(Gantt Chart), 1월부터 12월까지 꽉 채워진 기능 리스트, 그럴듯해 보이는 마일스톤들. 참 예쁘죠. 보고용으론 완벽합니다. 그런데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봅시다. 이게 정말 우리가 갈 길인가요, 아니면 대표님이 보고 싶어 하는 '희망 사항'인가요?


많은 기획자와 PM이 로드맵을 그리느라 야근을 불사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로드맵은 발표가 끝나는 순간 폴더 깊숙한 곳에 '박제'되곤 하죠. 그리고 3개월 뒤 누군가 묻습니다. "어? 이거 3월에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왜 아직 안 됐어?"


그때부터 우리는 변명하기 바쁩니다. "아니, 그때 갑자기 서버 이슈가 터져서...", "디자이너 리소스가 부족해서..."


오늘은 이렇게 '예쁜 쓰레기'가 되어버린, 사실상 죽어있는 우리 로드맵에 다시 숨을 불어넣을 '프로덕트 로드맵 플레이북'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1. '기능 공장'의 햄스터 쳇바퀴에서 내려오세요

가장 흔한 실수는 로드맵을 **'기능 쇼핑 리스트(Feature List)'**로 만드는 겁니다.


❌ 나쁜 로드맵의 예:

3월 2주 차: 소셜 로그인 기능 개발

4월 1주 차: 다크 모드 적용

4월 3주 차: 장바구니 UI 개편


이렇게 적혀 있으면 팀원들은 생각하기를 멈춥니다. "아, 3월엔 그냥 로그인만 만들면 되는구나." 개발자는 코드를 짜고, 디자이너는 UI를 그립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능 공장(Feature Factory)'이라고 부릅니다. 열심히 만들어서 배포했는데, 아무도 안 쓰면요? 그때부턴 서로 남 탓을 하기 시작하죠.

플레이북의 핵심은 '무엇(What)'이 아니라 '왜(Why)'를 적는 것입니다.


✅ 살아있는 로드맵의 예:

3월: 신규 유저 가입 전환율 10% 개선 (가설: 소셜 로그인이 도움이 될 것이다)

4월: 야간 시간대 앱 체류 시간 증대 (가설: 다크 모드가 눈의 피로를 줄여줄 것이다)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목표가 '로그인 개발'이 아니라 '가입 전환율 개선'이 되는 순간, 팀은 살아납니다. "팀장님, 굳이 개발 오래 걸리는 소셜 로그인 말고, 가입 절차를 한 단계 줄이는 건 어때요?" 같은 창의적인 제안이 나오기 시작하거든요.

로드맵은 '할 일 목록'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의 목록'**이어야 합니다.



2. 우리는 '일기예보'를 하는 거지, '예언'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이거 정확히 4월 15일까지 됩니까?"

이 질문, 경영진이나 영업팀에게 지겹도록 들으셨죠? 여기서 덜컥 *"네, 됩니다!"*라고 약속하는 순간, 당신의 미래는 지옥이 됩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은 아파트 건설 현장이 아닙니다. 변수가 너무 많죠.


지금 12월인데 내년 6월 셋째 주에 무슨 기능을 낼지 확정하는 건, **"내년 6월 15일에 비가 올까요?"**를 맞추라는 것과 같습니다. 불가능한 일에 확답을 하니 거짓말쟁이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실리콘밸리의 유수 기업들은 'Now - Next - Later' 프레임워크를 씁니다.


1. Now (지금 - 구체적): 현재 개발 중이거나 스펙이 확정된 것. 이건 날짜를 약속할 수 있습니다. (마치 '오늘의 날씨'처럼요)


2. Next (다음 - 유동적): 곧 시작할 것. 문제는 명확하지만 해결책(솔루션)은 아직 열려있는 상태입니다.


3. Later (나중 - 비전): 장기적인 방향성. "언젠가 우리도 AI 추천을 도입할 거야" 정도의 큰 그림입니다.


타임라인의 압박에서 벗어나세요. 대신 우선순위의 명확함에 집중하세요. 상사에게는 이렇게 설득해야 합니다. "정확한 날짜를 맞추려다 엉성한 기능을 내기보다, 가장 중요한 문제를 가장 확실하게 해결하는 순서대로 움직이겠습니다."


3. 로드맵은 '문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대화'입니다

마지막으로, 제발 로드맵을 혼자 끙끙 앓으며 모니터 앞에서 만들지 마세요. 로드맵을 '문서'라고 생각하니까 업데이트가 안 되는 겁니다.


로드맵은 영업팀, 마케팅팀, 개발팀, 그리고 경영진과 싸우고 화해하기 위한 '협상 테이블'입니다.

영업팀장님이 달려와서 *"거래처에서 이 기능 없으면 계약 안 한대요! 당장 다음 달에 넣어줘요!"*라고 할 때, 로드맵을 켜두고 대화하세요.


"팀장님, 말씀하신 기능 중요하죠. 그런데 우리 로드맵 'Now'에 있는 '결제 오류 수정'보다 급한가요? 이걸 'Later'로 미루고 영업팀 요청을 'Now'로 올릴까요? 그럼 결제 오류로 인한 고객 이탈은 감수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가시적으로 보여주며 우선순위를 조율하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로드맵 관리입니다. 완벽한 지도를 그려서 벽에 붙여놓는 게 아니라, 매주 상황에 따라 경로를 재설정하는 내비게이션이 되어야 합니다.


마치며: 여러분의 프로덕트 지도는 어디를 가리키고 있나요?

지금 당장 바탕화면의 그 엑셀 파일을 열어보세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세 가지만 물어보세요.


1. 이 기능들을 다 만들면, 우리 서비스가 정말 성공하나요? (아니면 그냥 기능만 많아지나요?)

2. 6개월 뒤의 일정을 억지로 끼워 맞추진 않았나요?

3. 이 로드맵을 팀원 모두가 이해하고 동의하나요?


만약 하나라도 "아니오"가 있다면, 이제 펜을 들어 '기능'을 지우고, 우리가 해결하고 싶은 '고객의 아픔'을 적어넣을 때입니다.


진짜 살아있는 로드맵은 화려한 엑셀 파일이 아니라, 팀원들의 치열한 고민 속에 존재하니까요.


SCR-20251123-skjw.png Product Roadmap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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