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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여름 Feb 11. 2023

바다 건너 유배의 마음


제주로 유배를 온지 1년이 지났다. 거짓말처럼 1월 1일 제주에 도착한 나는 급하게 짐을 꾸리고 집을 치우며 형기(刑期)가 정해지지 않은 유배생활을 시작했다. 사계절을 겪어봐야 그 사람을 알게 된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1년을 겪었으니 이제 나도 제주에 대해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떠나올때의 걱정과 달리 지난 1년은 꽤나 평온하고, 가끔 외롭고, 대체로 신기해하는 것들이 많은 날들이었다. 때때로 내가 제주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나곤 했지만, 낯설음은 좋은 재료가 되어 내 일상을 풍요롭게 꾸며주곤 했다. 현실감의 농도가 조금 옅어진채로, 그렇게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보냈다.  


유배를 온 동안 육지 생각을 종종했다. 비루했던 나의 모습들이 이리저리 떠다녔다. 때때로 그리움이 묻어 있었지만, 일상을 해칠정도의 그리움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의 유배는 누군가가 내린 형벌이 아니라 스스로 택한 도피였으니까. 나의 도피는 드라마틱하진 않아도 늘 성공적이었고, 드문드문 업그레이드 되며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가 주었다. 그러니까 나의 유배는,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 자신에게 선물한 '조금 더 나은' 일상이었다. 


나의 생(生)에서 가장 안온하고 편안했던 지난 1년을,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오늘들을 기록하려 한다. 반짝이는 풍경과 인스타에 올릴만한 세련된 아름다움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먼지같은 육지의 한 조각이 머나먼 바다를 건너 이 곳의 사람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남기려는 것이다. 나의 유배는 소란스럽지 않고 가만했으며, 고통보다는 즐거운 날들이 더 많았음을 꼭 기억하고 싶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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