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아픈 몸으로 살고 있다. 내 잘못된 습관이 가져온 찌를 듯한 통증. 뒤늦게 후회하지만 소용없다. 의사 선생님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절대 무리하지 말고 쉬라고 하신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멀지 않았던 어느날에 '왜 이렇게 피곤하지. 육지 다녀와서 그런가.'하며 중얼거렸던 일이 있다. 잠깐 그런거겠지 하며 무리해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 제사음식을 해서 몸이 버티지 못했나보다. 왜 이렇게 미련할까. 몸이 아파서 회사를 그만뒀으면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니 모든게 나의 불찰이다. 함께 병원을 갔다가 몸에 좋을것 같은 샤브샤브를 먹고,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고즈넉한 어떤 카페로 들어갔다. 오가며 한번씩 눈길을 주던 카페였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의 온도가 여유로운 시내 외곽의 풍경을 더 넉넉하게 만든다. 곧 사그라들 생명력 넘치는 초록 풀들을 보며 카페문을 연다. 코가 좋지 않아 냄새를 맡지 못하는 나는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어떤 냄새가 날 것인지 속으로 추측한다. 아마 쌍화차 냄새가 가득했을 것이다.
주인분께 달지 않은 전통차를 먹고 싶다고하니 쌍화차가 그리 달지 않은 편이라고 했다. 재료 본연의 단맛으로 맛을 내니 괜찮을거라 해서 그걸로 마시기로 했다. 따뜻한 헛개쌍화를 주문하고 같이 간 친구는 차가운 십전대보차를 골랐다. 블링블링한 카페들만 가다가 '이런 카페도 있구나' 싶어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4인석부터 단체석까지 넉넉히 마련됐고, 안쪽에는 좌식 테이블도 있었다. 젊은 사람들의 감성은 아니지만 어쩐지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카페는 누구에게 추천하면 좋을까? '부모님을 모시고 오기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번뜩 든다.
잠시 기다리니 주인분께서 주문하지 않은 간식도 내어주셨다. 뜨끈하게 구운 가래떡을 꿀에 찍어 먹으니 맛있다. 넉넉하게 담긴 견과류를 씹는 맛도 좋았고, 연근칩이 생각보다 맛있어 돌아가는 길에 따로 샀다. 비싸지 않은 가격인데 이런 디저트까지 함께 주시니 가성비가 좋단 생각이 든다. 물론 모든 손님에게 주는지, 아니면 오전에 와 아무도 없어서 그저 인심좋게 내어주신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렇게 공짜로 간식까지 주면 남는게 없을것 같다. 따로 주전부리를 사는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제주에 있는 유명한 카페들은 사람들이 많거나, 혹은 너무 단 디저트들이 많다. 젊은 사람이야 그게 좋지만 나이드신 분들께는 그런 분위기나 맛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그러니 한번쯤은 이런 곳에 와서 어른들의 취향을 맞춰주는게 좋겠다는 생각이든다. 물론 아릴듯이 단 음료와 디저트에 지친 이들이 젊은이들도 쉬어가기도 좋은 곳이다. 여튼 이래저래, 부모님과 함께 오기에 좋은 카페인건 맞다.
올드한 분위기에 비해 충전기를 두는 꼼꼼한 센스가 있는것도 맘에 들었다.
겨울철 감기를 대비해 십전대보탕을 몇개 사올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있다. 쌍화차가 생각보다 달지 않아서 잘 마실 수 있을것 같았다.
차를 마시는 내내 열기가 한풀 꺾인 밖을 바라보았다. 찌를 듯한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다는 것에 감사한다.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던가. 스스로의 미련함에 후회가 몰려든다. 이런 죄책감을, 커피나 스무디 대신 쌍화차 한잔으로 조금 씻어본다. 친구는 가져온 태블릿으로 만화를 보고, 나는 여유롭게 창밖을 본다. 이런 순간에 함께 있어주는게, 그것만으로도 그저 고맙다. 의지가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츤데레인 나는 간지러운 말대신 주전자에 남은 쌍화차를 마저 잔에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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