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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nEnded Apr 01. 2022

팀 내 집단지성의 발휘 조건

전문성을 가지고 상호의존성을 인정할 때 집단지성은 더 잘 작동한다.

1907년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민중의 소리(Vox Populi)’라는 논문이 발표됐다. 논문의 저자인 영국 인류학자 프랜시스 골턴은 소 무게 맞추기 대회에 참가한 787명이 써낸 소 무게 추정치의 평균값을 실제 소 무게와 비교했다. 놀랍게도 두 값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참가자들이 써낸 소 무게의 평균값은 1197파운드였고, 실제 소 무게는 1198파운드였다. 골턴은 이를 선거권을 가진 유권자의 상황과 비교하며 민주주의 사회는 대중의 집단적 판단에 신뢰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도 대중의 집단적 판단은 정확할까? 2015년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에서 비슷한 온라인 실험을 진행했다. 인터넷으로 젖소 사진을 보여주고 그 소의 무게가 얼마나 나갈지 물었다. 골턴의 논문이 발표된 100여 년 전과 마찬가지로 대중의 집단적 추측은 꽤 정확했다. 실험에 참가한 1만 7000여 명의 미국인들이 생각한 젖소 무게의 평균값은 1287파운드였고, 실제 젖소의 무게는 1355파운드였다. 소를 직접 보거나 만져보지도 않고 사진으로만 본 대중의 판단이 5% 오차 범위 안이라는 것은 놀라운 결과다.


이렇게 다수가 협력해 문제를 더 정확하게 해결하는 것을 우리는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라고 한다.

집단지성의 개념은 사람이 아닌 곤충 연구에서 시작됐다. 개미를 연구하는 곤충학자 윌리엄 모턴 휠러는 개미가 협업 기반의 집단생활을 통해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나의 개체로서는 높은 지능을 갖지 못한 개미가, 군집을 이루고서는 마치 상당히 높은 지능을 가진 것처럼 대단한 일을 해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개미나 꿀벌 같은 사회성 동물이 가진 군집 지능(Swarm intelligence)의 힘은 우리 인간 사회에서 전문가 집단이 아닌 일반 대중이 가진 집단지성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과학적 근거를 들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일상 속에서 집단이 가진 힘과 능력을 자주 경험하고 있다. 개인 혼자서 모든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회사와 팀이 존재한다. 회의는 회사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다. 회의를 통해 집단은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고, 때로는 함께 의사결정을 내린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집단의 의사결정은 개인의 의사결정보다 정확성이 높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고, 두 사람의 지혜가 한 사람의 지혜보다 낫다.



다수가 함께 만들어 낸 집단지성의 힘은 대단하다. 하지만 그 효과가 더 크고 정확하기 위해서는 참여 인원의 수가 많아야 한다.


얼마 전 대략 만 명 이상의 인원이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걸 목격했다. 네이버 웹툰에는 ‘별점주기’라는 기능이 있다. 특정 웹툰의 특정 회차를 보고 만족한 정도를 1점에서 10점까지로 점수로 매기는 것이다. 굉장한 인기를 누려 ‘좋아요’ 수가 매 회마다 거의 만 개, 댓글이 삼사천 개는 기본으로 달리는 유명 웹툰이 있었다. 워낙 인기가 많다 보니 거의 매회 평균 점수가 9점대 후반이 곤 했는데, 어느 특정 회차의 평균이 5.55 인 걸 보고 웬일이지 하고 들어가 보니, 그날이 그 웹툰 555회여서 독자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낸 결과였다. 별점평균은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것이라 새로고침을 하면서 살펴보니 잠깐씩 5.56, 5.54로 바뀌긴 해도 곧 바로 5.5로 맞춰지는 것이었다. 개인이 소수점 단위까지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걸 감안했을 때 대규모 집단이 함께 힘을 모아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경함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사실 평균점수가 5.55였는지, 6.66이였는지, 아니면 4.44였는지 정확히 생각이 안 난다 ㅠㅠ 다시 그 회차를 찾아보려 했는데 이미 유료화가 되어 정확한 점수를 확인할 수 없었다. 쿠키를 몇 개 사서 별점이 특이한 몇 회차를 찍어 살펴봤는데도  결국 찾는데 실패했다.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서 별점도 바뀐 듯 하다.)



앞서 소개한 소 무게 맞추기 대회에 대한 골턴의 논문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네이처 지는 골턴의 논문을 읽은 한 독자의 편지를 함께 공개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일반 대중이 아니라 소 무게를 잘 추정할 수 있는 전문가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어릴 때부터 소의 무게를 맞추는 훈련을 받아온 사람들도 많습니다. 논문의 제목으로는 ‘민중의 소리’보다는 ‘전문가들의 소리(Vox Expertorum)’가 더 맞지 않을까요?”


이에 대해 골턴은 800명 가까운 사람들 모두를 전문가라고 하기 어렵고, 확률 분포의 양 극단에 위치한 응답이 적지 않았으며, 경마처럼 돈을 벌 목적으로 게임에 참가한 일반인도 많았을 것이란 점에서 대회 참가자들을 전문가가 아닌 일반 대중으로 보는 게 맞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같은 수의 사람들이 집단지성의 과정에 참여한다면 아무래도 전문가 집단의 힘이 일반 대중 집단의 힘보다 더 클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위의 웹툰 별점평균의 예처럼 집단지성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참여 인원의 수가 많은 게 유리하다. 그런데 조직의 기본 단위인 팀의 인원은 많아야 열 명 남짓이다. 따라서 소수로 구성된 팀 내에서 집단지성이 더 큰 효과를 내려면 팀원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역량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협력과 집단지성이 팀 성과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증명된 바 있는데, 이때 더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가진 팀원들로 구성된 팀이라면 더 큰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의 전문성은 자기 업무에 대한 숙련도는 물론이요, 자신의 업무와 타 업무 사이의 연관성을 팀과 조직 전반에 대한 총체적 관점(holistic view)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역량을 보유한 사람은 팀 내의 자신은 결국 타인과 상호의존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내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팀원들과 우리 팀 전체가 잘 되는 게 결국 내가 더 좋은 성과를 내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 때 우리는 소규모 팀에서도 집단지성의 큰 효과를 경험할 것이다.


(이 글은 제가 동아비즈니스리뷰 340호 - 2022년 3월 Issue 1에 기고한 ‘리더여, 혼자 짊어진 압박감 내려놓고 집단의 힘을 빌려 더 큰 가능성 찾으라’ 중 발췌해서 수정하고 일부 내용을 추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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