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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Jul 20. 2020

리버스 숏이 사라질 때 <결혼이야기>-2

<결혼 이야기>



영화가 특정한 장르를 가장한 경우를 보고 있으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영화란 사실을 역설적으로 환기하는 경우가 있다. <결혼 이야기>를 보며 이 영화가 한 편의 연극 같다는 인상이 뇌리에 계속 남았지만 반대로 영화가 준 감흥은 가장 영화처럼 느껴지는 순간에 있었다. 두 장면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이혼 조정을 위해 로라의 사무실에 모인 니콜과 찰리, 그들의 변호인단이 점심 식사를 주문하던 장면. 어떤 메뉴를 주문할지 고민하던 찰리가 니콜을 바라보고 리버스 숏에 자리한 니콜이 찰리의 메뉴를 대신 골라준다.


이 장면은 시선 교환과 감정 전달을 컷과 컷을 구분함으로 해서 연극과 구분할 수 있는 영화가 지닌 형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작품 말미에 찰리와 니콜이 이혼 서류에 서명하는 순간으로 영화가 니콜과 찰리의 얼굴을 번갈아 보여주던 중 니콜이 등장할 자리에 찰리의 얼굴을 다시 좌우로 뒤집어 보여주는 지점이다.


 이혼 조정 장면에 발견할 수 있던 리버스 숏이 찰리의 반대 편에 니콜이 존재하고 있음을 엿 볼 수 있는 형식이었다면 마침내 이혼에 서명하는 순간은 두 사람이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서사적인 맥락을 전해주면서 더 이상 찰리에게 니콜이 곁에 있지 않음을 체감하게 한다. 두 사람은 분명 다른 시공간에 놓여있지만, 편집이 이를 겹쳐 놓음으로써 두 사람이 서로를 인식하고 있음을 가능케 한다. 이것이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 할 수 있다면, <결혼 이야기>는 연극을 가장함에 있어서 역설적으로 영화란 형식을 또렷이 보여주는 영화다.


 배우의 얼굴과 몸짓이 주는 힘은<결혼 이야기>를 한 편의 연극으로 바라보는 근거로 성립한다. 니콜이 등장하는 첫 장면을 이야기하고 싶다. 검은 화면 앞으로 갑작스레 등장하는 니콜의 얼굴. 찰리의 내레이션과 함께 이 얼굴이 주는 강렬한 인상은 니콜의 뒷모습으로 시작한 이후 장면들과 이질감을 주면서 그가 무대 위에 연기하는 배우란 사실을 넌지시 깨닫도록 한다. 니콜이 로라의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로라를 앞에 두고 결혼생활을 고백하는 순간 보여지는 손짓과 동선이동 역시 <결혼 이야기>가 연극임을 자처하는 모습처럼 다가온다.


 니콜의 얼굴이 현현하는 순간은 배우가 극을 시작한다는 하나의 막을 여는 신호처럼 보인다. 니콜이 본격적으로 LA로 이주한 다음에도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장면은 이어진다. 니콜의 어머니 캐서린이 니콜과 헨리를 깨우기 위해 커튼을 걷는데 이는 연극의 막이 바뀔 때마다 무대 위에 커튼이 걷히고 배우가 등장하는 일종의 페이드 아웃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뿐만 아니라 시퀀스마다 음악과 함께 배우의 얼굴이 사라지는 디졸브는 막과 막을 구분하려는 시도처럼 계속해서 등장한다. 이렇게 <결혼 이야기>가 시퀀스를 시작하고 분절하는 방식은 연극의 막이 바뀌는 것과 유사하다.


 상영 중인 영화를 보는 관객은 객석에 존재하지만 정작 영화 속 관객의 자리는 모호하거나 부재한다. 이 모순적인 특징을 가능케 하는 건 카메라의 역할이다. <결혼 이야기>의 카메라가 (연극을 보는) 관객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화면을 바라보는 이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니콜이 로라의 사무실을 찾아간 장면을 참고해보면, 그가 다른 방으로 들어가자 카메라는 인물을 문틈 사이로 바라본다. 이는 로라의 시선이 아닌 제삼자의 시선으로 <결혼 이야기>의 카메라 시점이 누가 보고 있는가에 대한 지시들이 전적으로 부재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일 수 있다면 이 영화의 카메라는 무대 공간을 정의하는 데 있어 존재감을 내비친다. <결혼 이야기>는 인물 간 갈등이 주요하게 등장하는 장면마다 인물이 자리한 공간을 마치 무대 배경처럼 활용한다. 로라의 사무실에 모여 이혼 협의를 하는 장면이 가장 적절한 예다. 여기서 공간 배경은 건물 벽에 위치한 소실점을 축으로 로라와 니콜, 찰리와 버트를 양분한다. 이는 인물들 간의 갈등을 암시하는 하나의 기호로 작용함과 동시에 카메라의 위치가 천장을 넓게 비춤으로써 공간이 주는 압박감을 더욱 강요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의 카메라는 특정 공간을 하나의 무대처럼 재정의함과 동시에 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결혼 이야기>는 연극성을 구현한다. 그 연극적인 특징을 가능케 하는 지점들 속에 우리가 영화 장치를 발견했을 때 느껴진 반가움과 안도감은 여전히 영화 안에 머물고 있다는 안도감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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