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조일남 Jul 27. 2020

90년대 생은 왜 일랜시아 밖으로 나갈 수 없는가

<내언니 전지현과 나>


 인디다큐페스티벌 화제작이었던 <내언니 전지현과 나>를 보았다. 일랜시아를 직접 플레이해본 적은 없지만, 바람의 나라, 아스가르드, 테일즈위버 등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등장한 PC 게임에 매료된 이들이라면 향수에 잠길만한 영화였다. <내언니 전지현과 나>는 넥슨의 방만 운영으로 사실상 버려진 게임인 일랜시아가 등장하는데, 박윤진 감독이 직접 인터뷰어로 등장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게임 플레이어들과의 만남을 다룬 르포타주다. 이러한 만남이 처음엔 일랜시아라는 게임에 관한 추억이나 회고로 시작해 플레이어들이 왜 사장된 게임에 머무는지에 치중되다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게임 운영진을 만나러 직접 넥슨 본사로 찾아가는 박윤진 감독의 여정으로 이어진다. 제작과정이 궁금해 영화에 등장했던 일랜시아 카페를 들어가보니, 2018년 부터 박윤진 감독이 직접 영화 출연진을 모집했던 걸로 보인다.


 인상에 남았던 지점들을 열거하다보니 영화를 이야기하기 보다 개인적 감상에 치우칠 우려가 있어, 이 영화가 시도하는 투박해보이는 몇 가지 연결에 주목해봤다. 첫째는 이 영화가 시작부터 IMF 라는 시대 배경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이것을 일랜시아라는 게임의 등장과, 게임을 플레이 하는 90년대생들과 시간적 인과를 엮으려 시도한다는 점이다. 인터뷰이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90년대 생이라는 점이나 이들이 이야기하는 노력과 보상에 관한 이야기(사회에서 받지 못한 보상을 일랜시아라는 게임에선 눈에 보이는 수치로 받을 수 있다는 점)는 분명 <내언니 전지현과 나>가 90년대생의 실재를 붙잡기 위해 머무르는 증거처럼 보인다. 아울러 이 영화와 (영화에 등장한 일랜시아란 게임)이 IMF가 터진 1997년과 가질 수 있는 접점이 그리 크지 않아보임에도 불구하고, 박윤진 감독은 IMF란 시간대가 마치 이 게임을 자신들의 세계로 부르게 된(혹은 일랜시아가 탄생하게 된) 주요한 시발점이라 생각하는 듯 하다. 국가 부도를 송달하는 뉴스 장면을 여럿 삽입한 모습을 보면 이 연결들은 분명 의도한 선택으로 보이는데, 이런 인과관계가 어떤 과정에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두 번째는 조금 사소한 지점일지도 모르겠다. 중반부 박윤진 감독의 인터뷰 장면을 보면 그의 뒤에 김일란,이혁상 감독의 <공동정범> 포스터가 꽤 또렷하게 등장하는 지점을 엿볼 수 있는데, 이후 그가 넥슨 본사를 찾았을 때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넥슨 노조인 스타팅 포인트라는 점에 이 영화가 모색하는 탐색이 노동운동의 성격을 가질 수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다음 회차를 한번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조금 느슨하게 보면 00년대 게임에 관한 슬픈 회고로 비칠 수 있는 영화이나 다시금 생각해보면 긴급하게 연대를 요청하고 있는 영화가 아닐까 란 생각을 버리기 어렵기 때문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