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에덴>
근래 작품을 감상할 때, 남은 러닝타임을 확인하지 않고 완전히 세계에 몰입되었다는 감흥을 느끼며 영화를 본 적이 언제였을까 싶다. <마틴 에덴>에 상찬을 보낼 수 있다면 이 말로 대신해야겠다. 영화를 보러 가기 전 여러 평자들의 글을 미리 읽어봤음에도 불구하고 시작부터 이 영화에 몰아치는 어떤 대담함에 완전히 압도되어서 영화를 봤다. 근데 그 야심이라는 건 무언가 대단한 걸 보여주겠다라는 야심 보단 지금 이 이야기에 들어맞는 형식은 이게 최선이야라는 자기 긍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추상적인 감상에 머물 수 밖에 없는 게 참 아쉽지만 이는 다회차 감상으로 보론해야할 지점으로 남겨둬야 하고, 여튼 내게 <마틴 에덴>은 필름의 물성에 대한 성찰의 영화였고, 한 편으론 자칫 상투적이라 지적받을 수 있는 시나리오가 지닌 약점을 대담한 편집의 전환으로 리드미컬하게 밀고 나갔다고 볼 수 있다.
<마틴 에덴>의 오프닝 쇼트는 질산염 필름의 물적인 성질을 오롯이 드러내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는 서영주 교수가 <자기반영적 파운드 푸티지 필름>논문에 밝힌대로 필름의 세 가지 효과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필름의 물질적 구조를 드러내어 환영성을 폭로하고 탈신비화 시키는 방식(1) 소멸되어가는 셀룰로이드의 유한성을 강조하여 필름의 물질성과 역사성을 환기시키는 방식(2) 셋째, 시간 구조를 변형시킴으로써 과거의 기록과 기억에 관여하며 새로운 지각을 환기시키는 방식들로 나뉘어 제시(3). <마틴에덴>에 필름 이미지가 교차편집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이러한 셀룰로이드 필름이 갖는 유한한 성질과 자기반영적인 태도가 아마추어 예술가인 마틴 에덴 개인의 서사와 지속해서 긴장 관계를 맺는 다는 데 주목해볼만 하다. (이 점은 영화가 8mm, 16mm, 32mm 필름을 전부 사용한 이유와도 연결돼 보인다)
영화에 등장하는 항구적 존재들의 얼굴, 폐허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지속해서 등장하는 이유 또한 이러한 셀룰로이드 필름 이미지와 갖는 긴밀한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도래한 이래로 자신의 장소를 재구성해야 하는 셀룰로이드의 운명, 쇠퇴하는 문화이자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물어야하는 오늘날 필름의 속성은 영화 속에 그 형식의 등장만으로도 자기 자신의 존재 이유, 영화의 존재 이유를 묻기 때문이다. <마틴 에덴> 속에 등장하는 얼굴들의 클로즈업은 장소에 실존하고 있지만 곧 (영화 속에 제시된 시대적 상황과 픽션적 분위기로 인해)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과 이 얼굴과 블루 라이트 필름 이미지의 교차가 만들어내며 장소와 사람, 기억과 기계장치들끼리 생성하는 느슨한 연결들이 <마틴 에덴>이란 영화를 성립하게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