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사람들>
*아래 리뷰는 배급사 알토미디어 측으로부터 개봉전 영화 시사 기회를 받아 작성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헝가리 부다페스트,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던 클라라는 의사 알도를 만난다. 진찰 중 알도의 무례한 질문으로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지만 두 사람은 서로가 전쟁으로 가족을 잃었다는 사연을 알고 유대감을 갖는다. 그무렵 클라라는 할머니의 트라우마와 신경증을 견디지 못해 집을 뛰쳐 나온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클라라를 위해 알도는 스스로 클라라를 보호하기로 결정한다.
부끄럽게도 벨라 타르의 영화들 이후 처음 본 헝가리 영화다. <토리노의 말>이나 <사탄 탱고>가 보는 이로 하여금 감각적인 면을 건드리는 영화들이었기에 헝가리에 관한 궁금증이 개인적으론 크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살아남은 사람들>을 보곤 처음으로 헝가리라는 나라가 어떤 국가인지 궁금해져 도서관에 가 헝가리사를 뒤적거렸다. 유럽과 아시아 사이 경계에 위치해 있으면서 나치와 함께 2차 세계대전 주축국이었던 나라이자 곧이어 스탈린의 소련 치하를 겪은 장소가 헝가리 부다페스트다. 영화는 전쟁 직후 소련 지배 사이에 일어나는 긴장을 다룬다는 점에 이 영화에 다뤄지는 시대적 배경을 안다면 <살아남은 사람들>에 좀 더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극적인 사건이라 부를만한 일들이 눈에 잡히지 않아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란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보자. 이는 2차 세계대전이란 시간대를 전쟁 영화가 벌어지고 있는 장르의 장으로 받아들이는 오늘날 '우리'의 인식이 전쟁이 벌어진 시대를 오로지 전쟁 영화의 세트로만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닌지 질문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건 아닌가? 외려 이 영화는 눈 앞에 벌어지는 살육의 장을 묘사하는 데 아무 관심이 없다. 그들은 이미 죽었으니까. 문제는 그들을 뒤로하고 살아남은 이들이 어떻게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 없는지에 관해 들여다보는 영화라 보는 편이 옳다. 타인 앞에 옷을 벗는 상황에 수용소의 이미지와 경험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입장을 지닌 사람들, 부모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죽은 부모의 기억들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상황, <살아남은 사람들>은 바로 그 지점을 들여다본다. 우리는 2014년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이란 점에 이 영화가 시사하는, 혹은 들여다보는 시선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지 않는가란 생각이 계속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