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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조일남 Jun 14. 2022

늘상 하던 말이긴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대상을 촬영하는 행위는 이미  자체로 비윤리적이다. (브레송의 모델에 관한 묘사를 예로 들자면) 여기서 피사체는 자기 의사와 상관 없이 본인도 모르는 자신의 습관 혹은 제스쳐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에 대한 고평가  그가 아이들을 윤리적인 방식으로 촬영한다는 말은  그의 영화 만큼이나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다. 이미 아이들이 카메라 앞에 서는  있어, 아이들 스스로 결정했는지의 유무조차   없는 문제로부터 그의 영화가 얼마나 자유로울  있으며  어떻게 윤리적인 방식이라  스스로 당당하게 말할  있냐는 말이다. 카메라로 대상을 촬영하기로  이상 이미 거기서 대상화에 대한 책임은 피할  없는 일이 된다.고레에다나 윤가은과  같은 케이스는 영화 촬영장의 비화 등을 고의로 노출하며 이러한 책임을 방기하고 나아가 카메라 속의 아이들을 다루는 권위를 획득하는 정말이지 기분나쁜 연출을 고집하는 자들이라 말해도 좋을  같다. 나는  점에서 치코 이바네즈 셰라도어의 <누가 아이들을 죽이는가> 아이들을 다루는  있어 그나마 솔직하고 대담한 영화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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