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의 맛에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똑딱이로 담은 세상

by 재쇤

최근 소소한 취미 하나가 생겼다. 바로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기다.


정확히 언제부터 로망을 갖게 되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사진 찍는 것을 워낙 좋아하기에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기는 한 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이었다. 그러나 무겁고 섬세한 수동 조작이 필요한 필름 카메라를 구매할 엄두가 쉬이 나지 않았다. DSLR이 무겁다며 미러리스 디카를 샀지만, 나는 이마저도 무겁다고 여행 갈 때 아이폰만 들고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연히 노란색의 코닥 토이 카메라가 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앙증맞은 디자인에, 3만 원 대로 가격도 저렴하고, 일회용이 아니라 필름을 교체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받아보니 매우 가볍고, 조작도 쉬워서 내가 다녀온 모든 여행에는 노랑 똑딱이가 함께 하게 되었다.



톱니를 돌려 딸깍 소리가 날 때까지 필름을 감는다. 그리고 작은 뷰 파인더로 피사체를 조준하고 셔터를 누른다. 셔터를 누를 때 나는 '톡' 하는 특유의 소리가 경쾌하다. 휴대폰이었다면 찍은 사진을 바로 확인하고, 별로면 다시 셔터를 눌러서 다른 사진을 찍었겠지만 필름 카메라는 사진이 과연 잘 찍혔는지 알 길이 없다. 부디 흔들리지 않고, 너무 빛이 많지도 적지도 않기를 바랄 뿐이다. 빛이 많으면 번짐 현상이 심하고, 반대면 심하게 어둡게 나온다. 1 롤당 담을 수 있는 사진의 수도 한정되어 있기에 한 컷 한 컷 신중을 기해 찍게 된다.


좌: 빛이 많은 사진 | 우: 빛이 부족한 사진


내가 찍은 첫 번째 롤의 사진을 확인했을 때 느꼈던 설렘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개의 필름으로 36장 정도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다 채우기까지 여러 여행지를 오가며,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보니 필름을 맡길 때가 되니 정확히 어떤 장소에서 어떤 순간을 담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서 택배로 필름을 보내면 현상 스캔한 파일을 메일로 받을 수 있다. 집 앞 GS25 편의점에서 택배를 부치고 난 뒤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3일이라는 기다림 끝에 내 메일함에 현상된 사진이 도착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압축 파일을 열었다. 과연 내 손 끝에서 어떤 사진이 탄생했을까.


파일 안에는 필름 카메라를 개시했던 춘천 그리고 속초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필름 사진 속에 담긴 풍경은 너무 따뜻했다. 어쩌면 내가 실제로 마주했던 풍경보다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것 같았다. 그래서 필름 카메라의 매력에 빠져든 것 같다.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줘서.

좌: 필름 카메라 | 우: 아이폰 XS

무엇이든 쉽게 시작하고, 대신 쉽게 질리는 스타일이지만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고 현상하는 일은 꽤나 꾸준히 지속하게 되었다. 빨리 결과물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1박 2일 여행하는 동안 다 써버릴까?' 하는 충동이 들지만 그래도 욕심부리지 않고 한 장 한 장 의미 있는 풍경과 순간을 담으며 느릿느릿 필름을 채워간다. 그렇게 지금까지 5개의 필름을 현상했고 일상의 흔적과 여행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겼다.


필름 카메라로 담은 일상과 여행의 순간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똑딱이로 담은 세상의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춘천, 속초, 제주 등 필름 카메라와 함께 했던 도시의 이야기를 그때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 써 내려가 보려 한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이 좋고, 기왕이면 더 멋진 사진을 찍고 싶은 욕심도 들지만 지금은 가볍고 귀여운 노란색 똑딱이로 만족한다. 이것저것 따져서 중고 필름 카메라를 구매하고 조리개를 수동 조절하며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순간부터는 더 이상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취미로 남지 못할 것 같은 직감이 들기 때문이다.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일상을 더욱 다채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이 새로 생긴 취미가 참 고맙다.

2021년 9월, 송도 센트럴파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