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7] 강원도 춘천
35도가 넘는 무더운 날 강원도 춘천에 닿았다. 마치 사우나 안에서 옷을 입고 다니는 듯한 푹푹 찌는 열기가 가득한 날이었다. 강원도라서 서울보다는 선선할 줄 알았는데 웬걸. 춘천은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라서 태양 복사열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해 더 더웠다.
이 더운 여름 춘천에 방문한 건 보통 사람들이 춘천을 방문하는 이유, 레일바이크를 타거나 닭갈비를 먹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공유 서재 첫서재에서 2박 3일간의 북스테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서재는 브런치 나묭 작가님이 휴직 기간 동안 운영하는 공유 서재인데, 오래된 주택을 정성스레 개조한 이 멋진 공간에는 2평 남짓의 다락방이 있다. 이 아늑한 다락방에 초대받은 손님은 첫서재가 셔터를 내리는 밤 10시부터 그 다음날 10시까지 서재를 독차지할 수 있다. 숙박비는 돈이 아닌 것들로 5년 뒤에 갚으면 된다.
낮에는 만인의 공간이었던 서재가 밤에는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되고, 게다가 숙박비는 후불인데 돈이 아닌 것으로 5년 뒤에 갚을 수 있다니. 단번에 이 특별한 공간을 직접 방문해서 온전히 경험해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밖에 나가서 한 시간만 걸어도 열사병에 걸릴 것만 같은 무더운 날, 에어컨 바람으로 시원한 이 작고 아늑한 공간에 2박 3일 동안 나를 꽁꽁 가둔 것은 정말 완벽한 계획이었다.
처음엔 내가 유일한 손님이었지만 곧 사람들이 오고 가며 한 때는 분주히 가득 찼다가 다시 여유롭게 비워지는 공간의 흐름을 마치 타임랩스 비디오처럼 관찰했다. 공간을 채우는 잔잔한 음악, 책 넘기는 소리, 작은 말소리 하나하나 크게 증폭되며 공간과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첫서재에 머무는 동안 한 자리에 앉아 완전히 몰입하여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 내 모습을 상상했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하루 종일 책 읽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같은 자세로 앉아 있다 보면 엉덩이가 배기거나, 목이 뻐근했다. 그리고 종종 졸음이 쏟아져서 꾸벅꾸벅 졸았다. 그럴 땐 다락방으로 피신하여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내려와 책을 읽었다.
왜 ‘북’과 ‘스테이’가 합쳐진 북스테이가 생긴건지 비로소 이해했다. 책은 공부하듯이 읽는 것이 아니라 쉬면서 읽어야 더 잘 음미하게 되는 것이리라.
영업시간 동안에는 첫서재를 스쳐간 손님 중의 한 명이었지만, 영업시간이 끝난 뒤부터는 이 공간을 이용하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밤, 어두운 골목에서 혼자 환하게 빛을 밝히고 있는 서재에서 약간의 스릴과 편안함을 느끼며 책을 읽었다. 아침에는 작가님께서 부탁한 제빙기를 켜고, 닫았던 문을 활짝 열었다. 손님이 찾아들기 전의 고요한 첫서재를 지긋히 바라보았다. 내가 마치 공간을 운영하는 사장이 된 것 같은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체크인한 첫 번째 날 이 다락방을 거쳐간 이용객들이 남긴 방명록을 읽는데, 참 다양한 직업과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이곳을 스쳐 지나간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타인이지만 이 공간을 함께 공유했다는 사실만으로 묘하게 친밀감이 생기고 연결된 느낌이었다.
숙박비를 갚는 시점이 왜 5년 뒤인지 너무 궁금해서 작가님께 여쭤봤다.
5년 정도면 무언가 변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인 것 같아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인상적인 답변이었다. 개인마다 상황이 바뀌고 사람이 변화하게 되는 시간의 두께는 다르겠지만 1년은 너무 짧고, 그렇다고 10년은 너무 길고 정말 딱 5년이 적당한 수준 같았다. 나만 해도 5년 전에는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살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5년 뒤에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누군가의 아내, 엄마가 되어 있을 수 있겠다. 아직 계속 회사에 소속되어 일하고 있을지, 나만의 사업을 꾸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만의 방식으로 숙박비를 갚으면서 이곳에 남겨두고 간 과거를 다시 만나리라는 것이다.
카메라: Kodak M35
필름: 코닥 컬러필름 컬러플러스 200-36
현상: 여기현상소
첫 다락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namgizaa/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