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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찾아온 변화

관심사 지각변동

by 재쇤

“어? 결혼하더니 분위기가 달라졌어.”


얼마 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들었던 소리다. 이전보다 뭔가 더 차분해진 느낌이라고 한다.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내 반응은 덤덤했다.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형질이 바뀌고 있다고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나는 관심사 지각 변동을 겪는 중이다.


재미있던 것에 흥미가 떨어지고, 재미없다고 여겼던 것이 재밌어지고 있다.



우선, 재미없어진 것들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보자.


풋살

2년 넘게 토요일 아침마다 꾸준히 풋살을 해왔다. 아줌마가 되어서도 풋살을 하리라 생각했을 만큼 좋아하는 마음의 크기가 컸고, 내 삶에서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취미였다.


결혼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을 때 부상 위험(목발 짚고 신부 입장할 수는 없으니)과 피부가 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잠시 브레이크를 걸었다.


갑자기 풋살을 멈췄을 때 큰일이 날 줄 알았는데(?) 여유로운 토요일 아침이 어색한 건 잠시, 금세 다른 일로 채워지면서 토요일 아침마다 내가 공을 찼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조금의 늦잠과 게으름이 허용되는 주말이 달콤하더라.


결혼과 동시에 동탄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 영등포 지역 위주로 활동하던 소속 팀을 탈퇴하게 되었다. 동탄에서 활동 중인 여성 풋살 팀을 찾아봤지만, '원하는 요일과 시간에 맞는 팀이 없다', '구장의 거리가 멀다' 이런저런 핑계로 문을 두드리지 조차 않고 있다.


사교 모임

천성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 지인들과의 모임은 당연하고, 크리에이터 클럽, 넷플연가 등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이 주는 설렘과 자극이 좋아 소셜 살롱에도 돈을 내고 참여하거나 일부 모임은 직접 호스트도 했다.


결혼 전에는 주에 2회 정도는 약속이 꾸준히 있었는데, 결혼한 이후부터는 뚝 끊겨서 일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이 쳇바퀴처럼 반복된다.


사실 회사로부터 집이 멀어졌다는 것이 큰 몫을 한다. 저녁 7시에 성수에서 일을 마치고 광역버스에 몸을 싣고 집에 도착하면 9시다. 또한 광역버스에 의존하게 되다보니, 약속 장소가 버스 정류장이 있는 강남, 을지로 지역이 아니면 참여 자체가 조심스러워진다(마포, 여의도는 진짜 못 가겠다;;).


이러한 상황 덕분에(?) 저녁 약속에 있어 몸을 사리게 되다보니 정말 중요한 자리를 위주로 약속이 정리가 되더라.


독서

독서는 내가 꾸준히 유지해 온 취미다. 한 달에 2-3권은 읽고, 읽은 책에 대해서는 꼭 리뷰를 작성하는 루틴을 가졌다. 출근 전 따뜻한 커피와 빵을 먹으며, 15분 타이머를 맞추고 집중해서 책을 읽는 시간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 시간에 신문을 읽는 것이 더 재밌다. 정적인 책 보다 정치, 경제 이슈들이 더 피부에 와닿으며 현실 감각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럼 반대로 재밌어진 건 뭘까?


투자


주식, 부동산, 비트코인, 금, 연금투자, etc.


재테크라고는 그저 안전한 은행 예적금에 돈을 넣는 것이 거의 전부였던 내가 요즘은 온갖 투자란 투자는 다 기웃거리며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금 투자에 꽂히게 된 계기가 내가 생각해도 좀 웃기다.


얼마 전에 경주 여행을 다녀왔는데, 경주국립박물관에서 본 각종 금 장신구들이 인상적이었다. 돌무지 덧널무덤에서 무려 1,500년이라는 세월을 묻혀있다가 발견되었지만 하나같이 너무 상태가 온전했다. 박물관에 전시된 각종 철로 만든 무기는 다 녹슬었는데 말이다.


순간 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져서 검색해 보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금은 우주에서 별이 폭발하거나 별끼리 충돌할 때 생기는 엄청난 에너지로부터 생긴 원소로, 지구가 형성될 때 우주에서 금도 함께 지구 내부에 섞여 들어왔다는 것이다.


즉, 지구가 만들어질 때부터 금의 매장량은 한정되어 있고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있지만 천문학적 비용이 들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생산으로 가치가 급락한 다이아몬드의 운명과 달리 금은 희소성이 높아 장기적으로 가치가 오를 수밖에 없는 자산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금이 귀한 자원이자 자산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 가치를 피부로 체감한 건 처음이었다.


그 후 금 현물 투자를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코스피가 기세 좋게 상승세를 타니, 금값이 바로 가격이 내려가더라. 그래도 괜찮다,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거나 전쟁과 같은 불안한 상황이 발생하면 금이 다시 오르면서 전체적인 포트폴리오 관점에서 방어를 해줄 테니깐.


비트코인

실체가 없는 것에는 투자를 안 한다는 신조였지만 금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비트코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수량이 한정되어 있고,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탈중앙화된 화폐라는 점, 관리나 이동에 있어서 훨씬 유연하다는 점에서 비트코인은 안전 자산으로서는 금의 상위 호환 격이기 때문이다. 이미 너무 비싸지만, 그래도 앞으로 더 상승할 여지는 크다고 보고 있다.




결혼 후 단조로워진 일상과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독서와 풋살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 나의 시니컬함에 살짝 혼란스러웠다.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것에 관심을 잃은 것이 아니라, 관심사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도 모르게 외부에 쏟던 에너지가 응축되어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내 가족을 꾸릴 준비를 본능적으로 하는 것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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