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바쁠 '나중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
일의 특성상 무언가를 읽을 일이 많습니다. 아니 어쩌면 읽어야만 하는 강박에 시달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글, 잘 모르지만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읽어야 할 것 같은 글 등, 제게는 지나가는 모든 글들이 괜히 아쉽습니다.
다들 비슷하겠지만, 그런 글들은 주로 페이스북에서 많이 만나곤 합니다. 보통 그때는 바쁘니까 바로 읽지 못하고 '공유하기'로 제 담벼락에 글들을 모아두곤 했습니다. 페이스북을 잘 안쓸 때에는 즐겨찾기를 도와주는 앱들을 깔아 한 데 모아두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읽어야 할 글들은 많은 것 같은데, 이 글들을 한 곳에 모아둘 곳이 없어서 북마크 앱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예전에 썼던 앱을 다운 받았는데, 이게 웬걸. 그 안에 이미 제가 몇년 전에 수북하게 쌓아 둔 글들이 있더라고요. 단 한 번도 제대로 읽은 적 없는채로 말이죠.
'나중에 읽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나중'이 언제인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도 쌓아둔 글들을 쭉 보며, '나중에 읽어야지' 라고 생각하고는 쌓아둔 글들을 보며 흐뭇해 하기만 했으니까요.
가지지 않았는데 가진 느낌, 읽지 않았는데 읽지 않은 이 느낌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나중에' 라는 단어가 무슨 뜻일까 궁금해지더라고요. 사전을 찾아보니, 세 가지의 뜻이 나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제가 생각한 나중은 첫 번째 뜻이었을 겁니다.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 이 글을 반드시 읽어야지. 그런데 조금 시간이 흐른 뒤에는 해야할 것들이 많습니다. 아까 일하면서 '나중에' 하기로 한 일도 해야하고요, 아내가 부탁한 '좀 있다' 해야할 일도 해야합니다.
그래서 결국 세상에서 가장 바쁜 나는 '나중의 나'입니다. 지금은 해야할 일이 하나지만, 나중의 나는 지금보다도 할 게 많고 바쁜 가여운 사람인 것입니다.
그렇게 나중의 나에게 일을 쌓아두다 보면, 결국 세 번째 뜻인 '맨 끝'으로 일을 미뤄두고 있는 나를 마주합니다. '얼마 있다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미뤄둔 '나중의 것'들은, 해야할 일 다 하고, 놀거 다 놀고, 쉴거 다 쉰 다음 그제서야 비로소 하게 되는 맨 마지막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 뒤로, 나중에 읽는 글은 없어졌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좋은 글을 마주했다면 그 바쁜 틈을 쪼개어 그 글을 읽었습니다. 내게 도움이 되는 글인지, 내가 다시 읽고 싶은 글인지를 판단하는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바빴지만, 글들을 다 읽고도 할 일을 다 해낼 수 있었습니다.
결국 나중보다, 항상 지금이 옳았던 것입니다.
이제 나의 북마크앱에는 읽었는데 좋았던 글들이 모여져 있습니다. 나는 이제 읽지 않은 글을 읽을거라고 믿는 내 자신을 믿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제 내 북마크앱은 정말로 가득찼습니다. 내가 아는 모든 내용들로요.
나중에 읽기로 했던 '글'이라는 글자 자리에 '글' 대신 다른 것들을 넣어봅니다. 나중에 만나기로 했던 '그', 나중에 가보기로 했던 그 '곳', 나중에 해보기로 했던 그 '것'. 어쩌면 나는 글처럼 그것들을 맨 마지막에 해야하는 일로 미뤄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 때 했어야 했는데. 그 사람, 그 곳, 그 것들은 즐겨찾기도 해둘 수 없는데. 어쩌면 다 지나간건 아닐까.
마음이 조금 헛헛해졌지만, 이제 나는 세상 모든 일들을 즐겨찾기 해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나는 이제, 바로 그때 하는 사람입니다.
*이 글은 뉴스레터 검치단 Playlist & Letter 에서도 함께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