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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형 Mar 05. 2022

내 하루가 너무 작아 보일 때

매일 반복되는 하루에 내 스스로가 볼품없어 보인다면

가끔 내 하루들이 작아보일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모두 평범하고, 평범하다 못해 볼품 없고, 그런 일들을 하는 스스로가 작아보이다, 결국에는 내가 보내는 나날들이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은 그런 때가 말이죠.


매일 같은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오늘 같은 날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기계에 맞물려 있는 여러 개의 톱니바퀴 중 37번 톱니바퀴가 된 것 같은 권태로운 마음. 내가 했던 오늘의 일들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조차 찾기 힘든 날들이 반복되다 보면 그때 사람들은 때로 '힘들다'고 말하는듯 합니다.


제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사람들은 종종 제 하루를 보고는 '가득찼다'고 말하지만, 저도 그런 톱니바퀴 같은 하루들을 매일 맞이하고 있는 평범한 힘든 사람일 뿐입니다.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는 일을 힘들어하고, 하기 싫은 회사 일에 눈을 질끈 감으며, 게으른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이내 풀썩 누워버리는 으른이죠.


하루는 친구가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도 나만큼 게으른 사람이란건 잘 알아. 매일 회사 일에 치여 사는 것도 알고. 그런데 매일 뭔가 일을 벌이는 건 무슨 마음이야? 난 그럴 여유도, 마음도, 힘도 생기지 않는데 너는 왜 도대체 매일 새로운 일을 벌이는 거야?"


이미 술을 한 잔 거나하게 마신 상태였기 때문에 당장은 그럴싸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몰라 재밌으니까~' 하고 말았지만, 그 질문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뱅뱅 맴돌았습니다.



그래, 생각해보면 나는 매일 뭔가 사고를 친다. 남들은 하지 않을 일을 시작해버리고 억지로 나의 게으름을 눌러버리려고 하지. 내가 그런 일들을 저지르는건 알겠지만, 저지르는 이유는 뭘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집니다. 내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에게 내 가치를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꿈.


어린 시절에는 방송국에 가고 싶었습니다. 내가 만든 무언가를 전국민이 볼 수 있는 수단은 방송이잖아요. 그래서 한 때 나의 꿈은 PD였습니다. 그것도 전국민이 내가 고르는 음악과 써 내려간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라디오 PD. 그래서 매일 음악을 듣고, 좋은 음악을 기록하고, 라디오를 들으며 좋은 사연들을 녹음했습니다.


그 뒤로는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방송국은 가지 못했지만, 여전히 내 생각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쓰는 방법을 알 리가 없었기에, 매일 뭔가를 썼습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내가 쓴 것을 볼 수 있도록 글을 퍼다 열심히 날랐습니다.


매일 뭐라도 쓰게 만들었던 마음 속 커다란 무언가

그러다 그 꿈을 일로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 글을 쓰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글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았습니다. 비록 그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더라도, 내가 만든 무언가를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면 될것 같았습니다.


나의 작고 보잘것없던 하루들이 그대로 내팽개쳐지지 않았던 건, 그 작고 하찮은 하루들 속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커다란 무언가를 놓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비록 위대한 라디오PD가 되지 못했고, 시대의 명저를 쓰지도 못했고, 시대의 멘토같은 일꾼도 되지 못했지만 나는 이렇게 아침에 눈을 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나누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로, 나는 나의 작고 보잘것 없는 하루의 시작을 누구보다 크게 해내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꿈'이라는 단어를 말하기가 낯부끄러워지는 시대가 된것 같습니다. 이룰 수 없는 커다란 꿈과, 작고 볼품없는 나의 하루가 비교되어 그런 마음을 느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꿈은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하루가 보잘것 없더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그리하여 나의 삶을 결코 작지 않게 만들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나의 오늘은 늘 그렇듯 작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삶까지 작게 만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슴 속에 나의 하루를 작지 않게 만드는 큰 무언가를 품겠습니다. 그렇게 매일 나의 작은 하루들을 조금씩 혁명할 것입니다.

아, 이제야 체 게바라의 말이 이해가 됩니다. 그가 왜 혁명가였는지도요.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갖자.

체 게바라 (1928~1967)


*이 글은 뉴스레터 검치단 Playlist & Letter 에서도 함께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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