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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Sep 13. 2022

몇 달 뒤면 달이 사라져요

본가의 이사를 앞두고



어쩌면 어른으로서의 삶이란

영원할 줄 알았던 무언가가 사라져 가는 것을

목도하는 일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


스무 해 넘게 한 집에서 살았다.


매화나무와 우물이 많았다는 작은 마을, 그 초입에 자리 잡은 3층짜리 건물이었다. 나의 할머니돌아가신 할아버지 함께 살던 기와집을 허물고, 그 터 위에 째 아들과 함께 살 집을 올렸다. 내 어릴 적 기억 속 파편 하나는 '금은  세상에 없는 남편과 그 옛날 손수 함께 지었던 기와이 포클레인에 의해 부서지는  하염없이 바라보던 할머니의 뒷모습'이다. 수십 년이 지난 아직도 나는 그보다 무상하고 덧없는 광경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지은 집이었으므로, 할머니는 이곳이 당신 여생의 마지막 집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셨다. 





같은 집에서 내 할머니의 여생이 흐르, 나의 유년기가 흘렀다. 돌콩만한 꼬맹이였던 내가 자라서 교복을 입고, 수능을 치고,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기까지의 셀 수 없는 낮과 밤이 이 집에서 일어났다. 단 한번도 같은 적 없이 제각각의 하루하루였으나, 그 마지막은 예외 없이 이 집 문을 여는 것으로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조용하고 한산했다. 다만 아무리 깊은 밤에도 이상하게 적막하지 않았다. 집 앞 도로의 노란 비상등이 '여기야. 집에 다 왔어. 고생했어.' 깜빡깜빡 속삭이, 나는 힘을 내어 발걸음 마기곤 했다.


당연하게도, 내가 이 집에서 자라는 동안 집은 낡아갔다. 침침해지고 복작해지고 손때가 묻어 거뭇해졌다. 그 세월의 흔적이 너무 뚜렷해서 때로는 면하고 싶었. 내가 독립한 후 계약한 세 번의 부동산이 모두 새집증후군 청소가 필요한 신축 건물이었던 건, 어쩌면 살면서 지겹게 보아온 세월의 손때를 이젠 좀 멀리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스물아홉 살의 가을에 이 집을 떠났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내가 마지막 인사를 올리고 떠난 날, 아빠는 오래된 내 방 침대를 손수 부수어 치우면서 조금 울었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이 집의 손님이 되었다. 이 집은 더 이상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가끔 마음먹고 방문하는 곳이 되었다. 그럴 때면 나는 이곳에서 얻었던 안식은 까맣게 잊고, 새침한 표정으로 '이젠 지내기 조금 불편하네' 중얼거렸다.


 이 집 꽤 많은 나이를 먹었다.





이번 추석은 이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명절이었다. 이 마을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서, 본가 식구들이 이사를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장 이틀 뒤면 이 집은 아무도 살지 않는 공가가 된다. 그리고 머지않아 포클레인이 이 집을 부수고 파내어 평평하게 고를 것이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 옛날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기와집이 그러했듯이.


필름 카메라로 집안의 구석구석을 한 장 한 장 꾹꾹 눌러담았다. 한때는 그토록 지겨웠던 세월의 손때가 애틋하게 말을 걸었다. 아빠는 계속 챙겨갈 물건 없는지 잘 살펴보라고 했다. 나는 어릴 적 사진 몇 장, 언젠가 아빠가 스크랩해 둔 내 신문기사 인터뷰를 챙겼다.


십수년만에 처음 올라가 본 옥상에는 달이 밝았다. 100년 만에 가장 둥근 보름달이라던가. 그제야 실감의 눈물이 터져나왔다. 옥상에 의자를 펴고 앉아 아주 오랫동안 달을, 리집에 내리쬐는 달빛을 올려다보았다.


오랫동안 우리 가족을 키우고 재우고 품어주었던 공간  세상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아득해진다. 그건 내겐 마치 '몇 달 후에 하늘에서 달이 사라진다'는 장만큼이상하게 느껴진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줄로만 알았무언가가 영원히 취를 감추는 일. 직 나는 그것에 익숙지 다.


앞으로 내 인생에선 몇 개의 달이 사라질까. 얼마나 많은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사라져갈까. 나이를 먹는대도 이별이 아프지 않을 리는 없을 니, 그때마다 나는 금처럼 슬퍼할 것 같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언제 사라질지 몰라 눈물겨운 모든 것들을, 그저 미리미리 후회 없이 사랑하는 밖엔.





어쩌면 내가 이 집에서 챙겨 나온 지극히 사소한 몇 가지 기억지도 모르겠다.


내 방에 예쁜 크림색 커튼을 새로 달아두고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길 기다리던 엄마설레 .

추운 겨울 밤늦게 귀가하는 손녀를 위해

할머니가 미리 켜 둔 전기장판의 붉은 불빛.

동생과 함께 치킨을 뜯으며 새해를 맞이할 때

안방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던 제야의 종소리.

내 방 좁은 침대에서 오랜 친구와 웅크려 잔 다음날 아침

할머니가 끓여준 떡국 한 그릇.

가로등 어둑히 켜진 밤 애인과의 헤어짐이 아쉬워

집 근처를 맴돌던 무거운 발걸음.


낡은 액자처럼 내 기억의 한 벽면에 걸려 있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장면들이 내게 남았다. 제각각의 하루하루를 보내다가도 그것들을 들여다보며 웃을 수 있다. 액자에 쌓인 먼지를 닦듯이 각날 때마다 그것들을 살펴볼 수 있다. 그렇게 사라지되 사라지지 않을 것들 생각하면, 조금은 덜 서글퍼진다.


마웠어, 우리집!




- 2022. 9.12. 6:25PM

짙은 - 사라져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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