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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way Jun 07. 2019

봉준호가 쏘아올린 이상한 공

기생충 (2019,한국)

*영화 스포일러와 여러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한국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조금 뜬금없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는 예전부터 봉준호 감독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재벌이나 미모의 연예인이나 로또 당첨자보다도 봉준호 감독이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그저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말을 했더니 그 결과물마다 사랑받고 부와 명예까지 따라오는 삶, 본인이 구축한 세계에 대해 전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찬탄하고 분석하고 곱씹는 삶이란 과연 어떤 것일지 가늠되지 않습니다. 아마 소우주의 조물주 같은 기분이 아닐까요(한국 영화계에는 비슷한 세대의 스타감독들이 여럿 있는데 왜 하필 봉준호 감독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니다만).


영화 <기생충>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소식 한동안 화제였지요. 이, BTS, 손흥민에 이어 '두유노클럽' 멤버가 된  봉준호 감독 보며, 저의 뜻모를 부러움은 오늘을 위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했습니다. 한 때 '깐느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면 엄숙한 마음으로 감상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수상작을 집 근처 영화관서 팝콘을 먹으며 볼 수 있다니. 신기한 마음을 안고 장으로 향했습니다.



환영합니다 감독님...!



영화를 보는 내내, 저의 머리속에는 어느 영화 속 김래원 씨의 유행어가 울려퍼졌습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속이 시원했냐...!" 전작 <설국열차>에서 계급사회에 대한 명징한 문제의식을 선보였던 봉준호 감독은, 기차에 인류를 계급별로 태워놓고 뺑뺑이 돌리는 것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인지 <기생충>에서는 아예 두 가족을 대비시키며 계급문제를 극한까지 몰고 가 버립니다. "이래도, 이래도 고민하지 않을 테냐? 이래도 별 생각이 안 들어?" 라고 영화에게 꼬집히는 느낌이었습니다. 따끔따끔. 하지만 그 과정은 철저히 오락적이면서 한없이 봉준호스럽기도 합니다. 능청맞고 의뭉스럽게, 축축하고 질척거리게, 일단은 재미있게.


영화 <기생충>은 빈민층 기택(송강호 분) 가족과 상류층인 박사장(이선균 분) 가족의 대비 그 자체이면서, 그들이 기생충과 숙주로서 나란히 파멸해가는 과정을 한바탕 소동처럼 그린 영화입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는 거울처럼(영화의 원제가 '데칼코마니'였다죠) 대칭되 충돌하는 요소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네 명의 가난하지만 사이좋은 가족과, 네 명의 부유하지만 어딘가 문제가 있어보이는 가족. 대저택과 반지하. 박사장의 벤츠와 ('냄새'로 상징되는) 지하철. 밤새 내린 큰 비로 수재민 대피소에 모여든 사람들과, 맑게 갠 정원에서 우아한 가든파티를 준비하는 사람들. 삶의 터전이 물에 잠겨 한바탕 전쟁을 치룬 다음날 먹고사니즘을 위해 부잣집에 과외를 온 기우는, 그 집 아들내미의 생일번개에 초대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멍하니 중얼거립니다. "저 사람들은 갑자기 모였는데도 쿨하고 멋있네." 계획 없이 갑자기 모인 두 집단의 모습이 이다지도 다름을 발견할 때, <기생충>은 그저 낄낄거리며 보기에는 너무 아픈 영화가 됩니다.





기생충은 죄책감이 없습니다. 생존본능만이 그들의 전부이지요. 숙주는 죄가 없습니다. 그저 선택되었을 뿐이에요. 한 명씩 박사장 가족에 침투하면서 돈이라는 영양분을 빨아먹던 기택 가족도,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허상을 믿다가 삶을 잠식당해버린 박사장 가족도, 사실 그 누구도 (악행을 저지를지언정) 악인이라 부르기에는 애매한 데가 있습니. 기택 가족이 가난한 건 박사장의 잘못이 아니며, 박사장 가족이 내비치는 가난에 대한 혐오-"어디서 냄새 나지 않아?"-는 본능적이면서 어딘가 순수하기까지 합니. 그저 각자의 속성대로 삶을 살았을 뿐인데, 주조연 까메오를 통틀어 이렇게 인물 모두 골고루 불행해지는 영화 또 있었던가요. 저는 기억나지 습니다(심지어 초반 수석을 들고 잠깐 등장하는 부자 친구마저도.  너를 믿었던  친구도 믿었기..).


<기생충>이 의미있는 이유는, '자본가는 악' 이라는 보편적이고도 간편한 공식을 따르는 대신, 그래서 부자 가족을 악역으로 설정하여 영화의 가독성을 높이는 대신, 함께 파멸하는 두 가족의 모습을 응시하며 그 너머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묻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답은 돈일수도, 돈으로 빚어진 계급사회일수도, 자본주의일수도, 이 모든 문제를 알면서도 대안을 찾지 못하는 우리의 관성일수도 있지요.


그러니까, 나는 기택이면서 박사장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기택처럼 권위 앞에 비굴한 표정을 지어본 적이 있고, 길에서 마주치는 가난한 자들의 냄새에 얼굴을 찡그려본 적이 있습니다. 수재민이 몰아주는 차를 타고 있으면서 "밤새 내린 비 덕분에 미세먼지 없이 깨끗하네" 라며 웃는 사모님처럼, 누군가의 비극에 무감각해 본 적 있을 겁니다. 돈이 없어 괴로워본 적 있고, 돈을 위해 영악하거나 구차해본 적 있으며, 돈이 없어 누추하게 사는 이들에게 혀를 차 본 적 있고, 누군가에게 '선을 넘는다'며 눈을 부라려본 적 있을 겁니다. 많은 이들이 그럴 겁니다.  관객들이 <기생충>을 두고 '기분이 나빠지는 영화'라 하는 이유는, 어느 한 쪽에 돌을 던질 수도 손을 들어줄 수도 없이,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들의 비참한 소동을 그저 관조할 수밖에 없는 황망함 때문은 아닐까요.


+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에 가해지는 '가난을 전시한다'는 일부 비판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가난을 전시한다는 표현은 (그 선한 목적과는 별개로) TV에서 종종 보이는 불우이웃 모금 영상 정도에 쓸 수 있는 것이겠죠. 지상지하실과 벙커를 갖춘 영화 속 대저택의 모습처럼, <기생충>이 그리는 가난의 속성그보다 훨씬 다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만든 람들도 결국 다 좋은 집에 사는 부자들이다'이라는 말,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제겐 마치 '남자는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거나 '부자는 진보정당을 지지하면 안 된다'는 말처럼 협소하게 들리거든요.





송강호는 이 시대 대표적인 '믿고 보는 배우'이지만, <기생충>은 그가 출연한 다른 영화들처럼 배우 송강호의 제왕적인 재능으로 견인해 나가는 영화는 아닙니다. 다만 박사장 아들의 생일파티날 인디언 모자를 뒤집어쓴 그의 표정은, 제게 영화를 대표할 강렬한 잔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상사의 점잖은 위협에 그가 눈을 내리깔며 짓는, 그 비굴하면서 겁에 질린 듯하면서 무언가 고민하는 듯한 그 표정에, 저는 왜 그리도 마음이 아팠을까요. 그건 송강호라서 지을 수 있는 이 시대 소시민의 표정이자, '자존'과 '먹고삶' 사이에서 갈등해 본 이라면 한번 쯤 지어본 적 있는 표정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배우들이 본인 몫을 잘 해내고 있는 영화이지만, 제게는 특히 중년 여성 배우들의 활약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주인들'이 집을 비운 밤 몰래 거실에서 술판을 벌이다 남편의 모욕적인 농담에 웃는 듯 우는 듯 멱살잡이를 하는 충숙(장혜진 분)의 얼굴이나, 영화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에서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전임 가정부(이정은 분)의 희비극을 넘나드는 연기, 특유의 '심플함'으로 본의아니게 기택 가족의 침입에 일등공신이 되는 연교(조여정 분)의 속물스러운 해맑음, 그런 것들이요. 이들의 연기를 더 자주, 다양하게 볼 수 있으면 합니다.





기생충의 수명은 숙주에게 들키기 전까지만 보장되는 법이죠. 전임 기생충-지하실 아저씨-이 장렬히 사망한 자리, 기택은 기약없이 집 아래에 숨어들며 또 하나의 완벽한 기생충이 되어버립니다. 영화 말미에 그가 보내는 '안부 신호'를 해독한 아들 기우는, 돈을 정말 많이 벌어 언젠가 그 집을 사겠다며 인생을 걸고 다짐합니다. "그때 아버지는 그저 걸어올라오기만 하시라"고.


슬프게도 우리가 아는 세상에서 기우의 다짐이 실현될 가능성은 현저히 낮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암시하듯, 아마도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아들은 반지하에, 아버지는 지하 벙커에 머물 겁니다. 계획이 필요없는 삶이란 그런 거겠지요. 마치 아래로만 아래로만 흐르는 물처럼,  잠깐의 일탈 끝에 각자가 부여받은 세상의 낮은 자리로 돌아간 아버지와 아들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 몸에 배어버린 빈곤의 냄새처럼, 사는게 사는 게 아니면서 '먹여줘서 감사하다'며 자본가를 향해 외쳐대는 지하실 아저씨의 "리스펙!" 처럼, 어막지도 피하지도 뭐 어쩌지도 못하는 것.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이 '장을 나서면서 온갖 생각이 다 드는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바람은 꽤 성공적으로 이뤄진 듯합니다. 평일 낮에도 붐비던 영화관, 저처럼 팝콘통을 안고 즐거이 자리에 앉았다가 복잡해진 얼굴로 돌아가는 관객들의 얼굴을 봅니다. 오랫동안 지하에 머물다 간만에 지상으로 걸어올라온 것처럼, 극장 바깥 세상이 어쩐지 낯설 보입니다. 폐지를 줍고 전단지를 돌리고 노상에서 물건을 파는 모든 이을,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더 길게 바라봅니다.


그는 본인의 재능과 문제의식을 120분짜리 정교한 질문으로 조해 우리에게 던졌습니다. 이제 우리가 긴 장마같은 고민을 시작할 시간입니다. 축하고 기분나쁘지만 피할 수 없는 고민을.



- 2019. 6. 3. 15:05 롯데시네마 동래7관



+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님의 아카데미 4관왕을 축하드립니다! 덕분에 이 글 조회수도 다시 오르고 있군요(ㅎㅎ). 봉준호라는 하나의 장르가 전세계적으로 권위와 사랑을 획득하는 모습을 지켜보느라 즐거운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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