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수요저널 IT칼럼 - 홍콩인들로 이루어진 로컬 스타트업 이야기
"오늘 뭐 먹지?"
남녀노소 누구나 가릴 것 없이 누구나 매일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2020년 난 로컬 스타트업 중에서 푸드테크 쪽 분야에 뛰어들었다. 사실 원론적인 이유는 기존 회사에서 하던 비즈니스가 코로나를 만나면서 주춤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러던 와중에 내 로컬 파트너가 주위에 밴딩 머신 스타트업이 있는데 푸드테크를 하고 싶어 하는데 어찌할 줄을 잘 몰라하니 준호 네가 와서 CTO를 하면서 일을 좀 봐주면 안 되겠냐고 제안을 했다. 그래서 그 회사 대표를 두어 번 만나면서 푸드테크 쪽 사업을 잘 만들면, 기존 우리 사업과도 잘 연계가 되겠다 싶어 1) 푸드테크 플랫폼 개발 용역 2) CTO 역할 수행 용역. 이 두 가지 계약을 체결했다.
<이상한 놈>
일주일에 두 번 출근을 하며 회사 분위기부터 파악을 했다. 첫인상은 매우 이상했다. 대표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부동산을 많이 가진 중국인 부자였으며, 아들의 사업에 투자를 해줬지만 전혀 관여를 안 하면서 오피스 안에 본인 방을 만들어 다른 업을 본인 비서 겸 젊은 여자 친구와 했다. 대표는 기술 스타트업은 전혀 모르지만 열정이 넘쳐서 무조건 들이받는 스타일의 친구였다. 그리고 회계(돈) 관리는 대표의 부인이 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중국계 돈 많은 사람의 가족 회사였다. 사실 이거 말고도 이상한 점은 정말 많았지만 차마 다 적진 못하겠다. 어쨌든 공과 사는 분명히 구별해야 했기 때문에, 이런 이상한 로컬 밴딩 머신 업체를 푸드테크 회사로 만들어야 하는 혼자만의 사명(?)을 안고 일을 시작했다.
<혁신>
사실 일 자체는 솔직히 말해 너무 재밌었다. 내가 신사업과 푸드테크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있지만 이런 별 볼 일 없는 밴딩 머신 업체를 테크 회사로 트랜스폼 시킨다는 것 자체가 나의 온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로 흥분이 됐다. 우선 고객을 먼저 분석했다. 이 회사의 밴딩 머신으로 벤토를 구매해 먹는 사람은 주로 25-44 세의 직장인들이었다. 여기서 타깃부터 분명히 했다. 더 이상 불특정 다수를 위한 서비스를 하지 말고 우리 서비스를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는 회사 직장인들 그것도 점심을 주 타깃으로 잡았다. 그리고 다음 3가지 미션을 전 직원들에게 공유했다.
1) 앞으로 이 회사의 미션은 "Co-dining Platform"이다. 조그마한 밴딩 머신에 홍콩의 유명한 식당들의 음식을 푸드코트처럼 모으자.
2) 그리고 우리 고객을 위한 미션은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우리 같은 직장인의 식습관과 패턴을 연구해서 주중의 점심을 우리가 책임지자.
3) R&D팀은 위 2가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UX(사용자 경험)를 갖춘 모바일 앱과 밴딩 머신을 개발하자.
<타이밍>
아무리 노력을 하고 성공을 할 것 같아도 못할 때가 태반이다. 그리고 이게 될까라고 생각한 것이 운 좋게 타이밍이 맞아서 될 때가 있다. 위 3가지 미션을 수행하면서 우리는 코로나라는 재수 좋은(?) 타이밍을 맞으며 급속하게 성장했다. 홍콩의 많은 식당들이 Dine-in을 금지시키며 배달 수요가 증가한 것과 같이, 간편하게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미리 주문하고 필요할 때 밴딩 머신에 가서 점심을 해결하게 됐다.
때마침, 내가 지휘한 새로운 앱과 플랫폼이 나오면서 사람들의 만족도는 높아졌고, 홍콩 애플 스토어 F&B순위 30위까지 올라갔다. 이 상승세를 타고 회사 명성을 더 끌어올리면 좋겠다고 생각이 돼서 스타트업 경진대회를 준비했다. 사실 이 부문은 계약에 포함이 안되어 있었는데 내가 애정이 생겨서 스스로 하게 된 것이다. IPHatch라는 홍콩의 정보통신부와 싱가포르의 특허은행 관련 회사가 후원인 스타트업 대회에서 나는 직접 제안서를 만들고 대회 연설까지 했다. 결과는 우리가 지원한 분야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좋은 놈>
결과론적으로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내가 받긴 했지만, 나는 우리 팀원들이 굉장히 좋은 인재였다고 생각이 든다. 특히 인도 출신의 개발자 싱글라와 중국 선전 출신의 디자이너 케이는 압도적이었다. 싱글라는 내가 이 스타트업에 들어오고 직접 면접을 봐서 뽑은 개발자다. 사실 연봉이 적어서 다른 데 간다고 하는 걸 내가 따로 만나서 비전을 설명하면서 데려온 친구다. 그 사람의 경력이나 인상이 그냥 느낌적으로 무조건 잡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친구가 만든 앱은 내가 지금까지 수많은 개발자와 함께 일해봤지만 가장 버그가 적었고, 퍼포먼스가 훌륭했다. 그리고 우리 디자이너 케이. 이 친구는 내가 오기 전부터 있던 친구인데 지금껏 내가 봤던 디자이너들 중에 가장 크레이티브 했다. 우리 회사로 데려오고 싶을 정도로 이 친구는 나를 매료시켰다. 브랜딩 메이킹, UX를 만들어는 디자인적 사고 능력, 무엇보다 한눈에 들어오는 깔끔하고도 정갈한 디자인. 모든 것이 완벽했다. 단 하나 근태가 나빴다. 여기 대표는 그게 무지 거슬려서 그 친구가 그만두고 자기 꿈을 찾아 미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잔여 월급과 비자를 못 받게 하는 이상한 짓을 했다. 나는 이 친구는 정말 능력도 꿈도 있는데 아직 어려서 태도적으로 조금 실수를 한 것이니 한번 봐주고 잘 보내주자고 간곡하게 설득을 해 미국을 보내줬다. 결국 이 친구는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빅데이터 솔루션으로 아주 유명한 회사에 들어가 본인의 재능을 뽐내고 있다. 지금도 가끔씩 연락을 하며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다.
<나쁜 놈>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이 회사에 계약 그 이상의 것을 해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내 회사처럼 열심히 일해줬다. 그런데 회사가 성장을 하니 대표의 마인드가 바뀌었다. 우선 나를 이 회사에 소개해준 내 파트너를 먼저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내쳤고, 몇 달 있다 나에게도 그 회사의 주식 몇프로를 내게 주는 대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빚 수억 원을 나에게 함께 탕감해 나가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계약서를 내밀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신뢰가 깨진 파트너랑은 일할 수 없다고 하며, 기존 계약 기간도 끝났겠다 여기까지로 하자고 하며 관계를 끝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잔여금이 아직 30%가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내 연락을 계속해서 피했다. 연락이 안돼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수금해주는 회사에 맡기게 되었다. 그리고 한 동안 잊고 살았다. 그런데 4달 정도 지나서 내 사무실에 로펌에서 레터가 하나 왔다. 내가 그 회사에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나갔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내 계약금의 2배를 물어내라는 내용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 내 파트너에게 보여주니, 이런 놈은 혼쭐을 내야 된다고 하면서 본인 친구인 변호사를 무료로 소개해주면서 증거자료를 보여줬다. 그 변호사는 내게 이건 그냥 겁을 주면서 돈을 안 줄려는 행동일 뿐 실제로 액션을 취하진 못할 거다. 그냥 무시하거나 이메일로 동의 안 하고 빨리 돈 갚지 않으면 이쪽에서 액션을 취할 거라고 두 문장 정도로 보내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3달이 지난 지금까지 그쪽에선 우리 변호사 말대로 아무것도 못한 채 소송 없이 자취를 감췄다.
<결론>
이 회사는 지금 내가 우승시켜준 대회에서의 이점을 활용해 사이버포트에 인큐베이션이 되어 들어가 있다. 하지만 내부 소식통에 의하면 매출이 급속도로 떨어져 파산 직전이라고 한다. 홍콩 로컬 스타트업 중에 분명 제대로 된 기술 베이스의 훌륭한 회사들도 많지만, 이렇게 완전 후진 마인드의 기술이 뭔지도 모르는 겉모습만 스타트업처럼 한 회사들도 있다. 그리고 솔직히 한국 인재들에 비해서 많이 떨어질 줄 알았던 홍콩 인재들도 글로벌 도시답게 글로벌 인재들과 경쟁하며 이쪽 IT업계에도 상당히 재능 있는 친구들이 많다. 내가 그런 친구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회사의 주인이 내가 아닌 상황에서 내가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래서 이번 경험으로 올해는 홍콩에 한국 사람으로 자본금 제로부터 시작해서 한번 스타트업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됐다. 3부에서 그 이야기를 풀어볼 예정이다.
세상 어디에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있다.
* 위 칼럼은 홍콩 수요저널에 함께 게제됐습니다.
http://www.wednesdayjournal.net/news/view.html?section=94&category=97&no=32741#gsc.ta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