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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땡 Jul 23. 2018

왓카나이 1일차

2018 Wakkanai: 1st day

7월 14일 오전 7시 15분 김포발 도쿄행 비행기, 공항 리무진의 종점 근처에 살고 있기 때문에 첫차를 탈 요량으로 4시에 나왔다.

그래도 전번의 새벽 비행편보다는 훨씬 여유로웠다. 가깝고 한산하기까지 하니까 도심공항이란게 이렇게나 편리하단걸 새삼 느꼈다.

어쩌다보니 LCC가 아닌 ANA를 탔던지라 3시간도 되지 않는 체공 중에도 아침식사까지 받아 먹었다.

14일 김포발 비행편 중엔 우리가 제일 빨리 이륙한 터라 출국에서 입국까지 정말 일순간이었다.

그런데 7월 중에 서울만큼이나/서울보다도 더 더운 도쿄에 피서를 온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도쿄에 살고 있는 친구 한명과 합류했고, 국내선으로 환승할 요량이었다. 어차피 인천에서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비행편의 유일한 경유지가 하네다이기도 했다.

하네다 국제선 터미널에는 인천공항의 비선루(기와지붕 정자)와 유사하게 에도시대 풍의 건물을 지어놓고 쇼핑/먹거리 가게를 모아 두었다. 국내선 환승 시각이 1시 조금 넘어서였던 까닭에 이곳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고 이동했다. 

많고 많은 (그리고 비싼) 일식당을 지나 터키 아저씨가 운영하는 (그나마 싼) 케밥집에서 양고기 랩이 음료 포함 800엔.

국제선~국내선 터미널 간에는 무료 셔틀버스가 다닌다.

우리가 여행을 갔던 7월 중순은 골든위크 이후 일본에서 거의 몇개월만에 찾아 온 연휴철이라 했고, 그래서 이렇게나 승객이 붐볐다. 다소 짧은 연휴이다 보니 국제선보다도 국내여행을 택한 사람들이 더 많은 모양이었다. 


재미있던 건 Baggage Drop 마저 셀프로 처리하는 무인 키오스크가 도입되어 있었다는 점. 수속절차가 어렵지 않은 국내선에 한해 열심히 인력을 기계로 대체하는 모습이었다.

최종 목적지는 홋카이도에서도 최북단에 위치한 왓카나이, 그리고 왓카나이에서 페리를 타고 주변 섬인 리시리/레분까지 돌아보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 재작년에 삿포로/비에이/오타루/하코다테를 다녀오기도 했고, 그래서 여름에 저 아랫쪽 동네가 전혀 시원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반면 왓카나이는 생각보다 무척이나 위쪽이어서, 위도로 따지자면 북한을 훌쩍 넘어서 하얼빈 시 정도의 위치에 있고, 바로 위에 이른바 凍土로 불리는 사할린을 접하고 있을 정도이다.

7월 평균 낮 기온 20도, 심지어 여행 셋째날엔 최기온 13도를 달성한 그야말로 피서지. 물론 한국에서의 직항도 없고, 한국인 여행객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는 여행 내내 단 한번 마주쳤다!)


서울-도쿄의 7월 더위가 무색할 만치, 전혀 다른 나라에 도착한 것과 같은 상쾌한 기온이 왓카나이의 첫인상을 결정해줬다. 분명 바다와 접해 있는 도시이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바다내음이 많이 묻어나는 편은 아직까진 아니었다. 

자그마한 시골 공항에 내리면 각 렌트카 업체가 고객들을 대리점까지 셔틀버스로 바래다주는데, 우리는 타비라이에서 최저가로 검색해 Fit급의 소형 렌트카를 예약해 두었고 3분 즈음의 거리에 있는 니폰 렌트카로 가게 되었다. 

총 3박 4일간의 일정 내내 면책보험을 포함해 23,328엔이니 3명의 교통비로는 경제적인 값이다. 애초에 대중교통으로 왓카나이 근방을 여행하는 건 다소 무리이기도 했고. 나는 실질적으로 차를 몰 줄 모르지만 나머지 친구 두명이 교대로 운전을 해준 터라 무척이나 편하게 여행할 수 있어서 고마웠다.


공항을 빠져나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홋카이도의 최북단 극점인 소야미사키 곶이다. 

최북단이라는 상징성답게 나름 꽤 많은 여행자들이 사진을 남기려 서 있었는데, 특히 바이크를 타고 홋카이도를 여행하는 동호회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주차장 옆쪽으로 보이는 파란 건물은 일종의 기념품 가게인데, 재미있게도 이른바 '인증'을 위해 문 앞쪽에 最北端 이라는 커다란 글자와 함께 오늘의 날짜와 현재 기온을 전광판으로 게시해 둔다. 우리는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패기있게 내렸다가,  14도 남짓한 온도에 바닷가다운 강풍이 불어닥치니 얼른 차 뒷편으로 돌아가 바람을 막아줄 외투를 챙길 수 밖에 없었다. 

공항에서 소야미사키까지 달려오는 짧은 이동시간 중에 하늘이 급속도로 흐려졌다. 

사전조사에 의하면 새파란 하늘과 바다가 펼쳐져 있어야만 했는데, 우중충한 회색은 당시에 우리 모두의 아쉬움을 자아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나름의 운치를 자아낸 것 같고.


소야미사키 곶의 맞은편으로는 넓은 소야 구릉이 펼쳐지고, 구릉지대의 평탄한 부분에 작은 공원을 만들어 두었다. 높은 지대로 올라올수록 구름과 안개가 더 심하게 시야를 가리는 편이었다(실제론 사진보다도 더 희미하게 보이는 상태). 우리는 나흘째 되는 날에 날이 맑아지면 다시 한번 이 곳을 방문하는게 어떻겠냐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았다.

소야미사키 공원에는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이 설치되어 있고, 평화를 기원하는 추도의 문구들이 새겨져 있다. 사할린 상공을 날고 있던 대한항공기를 소련이 미군 측 정찰기로 오인하고 격추한 사건이다. 

우리들이 직접 겪은 시대는 아니지만, 전쟁의 파편에 269명의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고 그 대부분이 우리나라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분명 가벼운 무게감으로 다가오진 않을 것이다. 더욱이 1983년, 냉전의 한 가운데에서 일어난 탓에 제대로 된 항의를 하지도, 사과를 받지도 못했을 유족을 생각하면.

이 언덕에서 날씨가 좋은 날이면 사할린 영토가 바다 너머로 힐끔 보이기 때문에 외딴 일본땅에 이 위령탑이 세워졌다고 한다.


소야미사키 공원을 떠나 구릉을 쭉 돌아보는 드라이브 코스를 달려갔다.

낮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까만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고, 자욱한 안개는 그 자취를 흘끔 보여주는 식이었다. 

맑은 날이었다면 언덕의 반대편에는 바다가 펼쳐져야 했겠지만, 보랏빛 감도는 묘한 분위기가 목가적인 정경의 감상을 배가하고 있었다. 

누가 누구를 구경하냐는 듯이 빤히 렌즈를 바라다보는 사슴도, 몇마리 씩 무리지어 소들 사이를 뛰어놀았다.

날씨 탓인지 소야미사키 곶에서 구릉으로 올라온 여행객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넓지 않은 도로가 구릉 사이를 지나는 와중에도 경치가 보일만 한 곳이라면 어디든 차를 대 놓고 감상할 수 있었다.  


구릉 길은 포장이 되어있다가도, 조개껍질이 뿌려져 잘개 바스라진 하얀빛 비포장로로 바뀌곤 했다. 

구릉지의 끝부분에 다다르자 꽉 차있던 구름 사이로 살짝 해가 비추기 시작했다. 

빽빽한 구름 사이 작게 난 구멍으로 빛이 내려오는 광경은 빈 무대에 스포트라이트를 쬐어주는 기분이었다. 

싸늘한 바람과 희뿌연 안개의 습격을 받아 워낙 햇빛이 반갑게 느껴지기도 했고.


절벽 끝까지 이어진 길이 금새 바다로 향할것만 같이 느껴진다.

소들이 풀을 뜯고 야생화가 만개한 들판이 바다를 배경으로 삼는 곳이 왓카나이 - 소야 구릉의 매력이었다. 

어딘가에선 왓카나이가 리시리/레분 섬을 들어가기 위한 경유지 정도에 그친다고 읽었지만, 비에이에 비금비금 맞먹을 목장의 매력이 왓카나이의 한켠에 분명히 있다.

구름에 폭 싸여 가려졌던 풍력발전기도 건너편의 산자락에 모습을 드러냈다. 


소야미사키 곶과 소야 구릉을 돌아보고 호텔이 있는 시내로 돌아오는 길, 해는 낮게 깔린 구름 뒤로 슬그머니 노을빛을 바다에 비춰주고 있었다.

앞서 말한대로 여행 시기가 일본 연휴기간과 겹쳤던 터라, 왓카나이 시내의 호텔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뿐더러 가격도 만만찮았다. 우리도 한달 전부터 숙소를 찾아다녔지만 이미 가격이 낮으면서도 평가가 좋은 호텔들은 온갖 예약 사이트에서 매진을 외치고 있었고, 객실의 담배 냄새가 심하다는 걱정스러운 평가에 반신반의하며 타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타협의 결과 호텔 미소노의 트리플 룸이 1인당 약 6500엔 수준. 그러나 걱정과 달리 담배 냄새는 거의 나지 않는 수준이었고 호텔의 공간도 (이른바 '일본식' 호텔에 비할 때) 무척 넉넉했다. 나름 온천임을 홍보하며 유카타 류의 가운도 제공하지만 지하 대욕탕은 네명 정도가 들어가면 꽉 차는 소규모라는 게 단점. 객실이 조금 더웠던 것도 흠이다.


호텔에서 주변 식당을 검색하고는 저녁식사를 위해 가벼운 짐만 챙겨 걸어나왔다.

왼쪽 에조반야는 대게 전문점이었는데, 주변 지역 Tripadvisor 1위에 빛나는 명성이었으나 만석이라 손님을 받을 수 없다고 거절당했다. 호텔에서의 검색이 무색하게 주변을 헤메다가 붐비지 않는 초밥집 魚一에 들어갔다. 

안쪽 좌석에 앉아서 카운터석을 바라본 모습. 여사장님은 주문을 받았고 주방장님이 옆에서 초밥을 쥐고 있었다.

특선 초밥(가격에 따라 양이 늘어나는게 아니라 재료가 달라진다는 설명이었다)과 가라아게, 계란말이, 자그마한 사케까지가 1인당 약 2930엔. 왓카나이는 일본에서도 유명한 우니(성게)의 산지라는 걸 알고 갔는데, 마침 우니 초밥이 나와주었다.

신선한 우니는 처음 먹어보았던 것 같은데 생김새와 달리 비린맛 없이 신선한 크림을 먹는 식감이었고 무척 맛있었다. (7여년 전 오사카 회전초밥집에선 큼큼한 썩은내가 나는 우니 초밥을 가위바위보 게임 벌칙으로 친구에게 먹였던 것 같은데. ㅋㅋ)

그 밖에도 생새우 살이 무척 달달해서 기억에 많이 남았던 것 같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는 오밤중에 시내까지 나와봤지만, 정작 가보려던 가게는 닫혀있고 이렇다 할 아케이드도 없는 시골 마을에 갑자기 비까지 내린 터라 편의점에서 다음날 아침식사 거리면 사들고 금새 다시 호텔로 복귀할 수 밖에 없었다.

내일은 오전 5시에 일어나 섬으로 건너가는 첫 페리를 타야하는 강행군 일정이었기에 얼른 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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