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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유월 Dec 19. 2015

영화는 무엇을 변화시켰나

1. 순수가 사라진 시대에 대하여 : 예술의 변화


모든 인간은 아름다운 것을 영원히 소유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을 그리고, 신을 조각했다. 카메라로 세계의 모습을 담는다. 사람처럼 행동하는 로봇을 만들고, 사람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을 개발한다. 특정 대상과 최대한 가까운 다른 대상을 만들어 내는 것, ‘복제’는 인간의 역사 안에서 꾸준히 이루어졌다. 


왼쪽 : 미켈란젤로, 피에타 / 오른쪽 : 밀레, 만종


애초에 예술은 ‘복제’와 출발을 같이한다. 자연과 세계를 모사하는 것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모방’의 과정이었던 예술은 신을 숭배하고 의식을 행하는 종교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고, 모던의 시기에 이르러 고유한 힘과 위치를 인정받는다. 그전까지의 예술이 기술 혹은 종교적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었다면 모던의 시기에 와서야 예술이 스스로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원리를 가진 하나의 분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의 정의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쟁이 활발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예술의 몇 가지 특징들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반영하는 것, 아름다운 것, 전시할 수 있는 것, 귀하고 비싼 것.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예술’의 특징들 또한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예술이 단순한 모방에서 벗어나 그 스스로의 자리를 부여받으면서 예술에 대한 복제 작업은 계속해서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그림을 연습하기 위해 혹은 작품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그리고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유명한 예술 작품들을 복제해왔다. 하지만 과거의 ‘복제’와 현재의 ‘기술적 복제’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과거의 복제물들은 원본과 완벽하게 같을 수 없었다. 따라서 아무리 복제를 한다고 하더라도 복제품과 비교되는 ‘지금, 여기, 이 순간에’, ‘딱 하나’만 존재하는 순수한 원본이 존재한다. 원본은 유일한 것으로써 무엇보다 가치 있는 ‘진짜’로서의 권위를 인정받는다. 반면에 기술적 복제물은 크기나 구도에서부터 작은 선, 작은 점 하나까지 원본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순식간에 수백, 수천 개의 복제품 제작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기술적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원본의 독창성은 파괴되고 원본과 복제물의 구분은 사라진다. 뿐만 아니라 기술적 복제품들은 원본을 넘어서기도 한다. 사진이나 영화는 기술을 사용하여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아주 작은 것, 아주 빠른 것들을 포착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나뭇잎의 잎맥들을 확대 사진을 통해 촬영할 수 있는가 하면, 고속 촬영을 통해 스포츠 경기에서 아주 빠른 공의 움직임을 또렷하게 포착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또한, 과거의 예술품은 예술품이 위치하는 곳이 아주 중요했다. 소설 ‘플란더스의 개’에서 주인공 네로는 성당에 전시된 루벤스의 그림을 너무나 보고싶어하지만 입장료인 금화 한 잎이 없어 그림을 보지 못한다. 네로는 겨우 금화 한 잎을 구해 루벤스의 그림을 보게 되지만, 그 그림 앞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처럼 예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장소는 고정된 경우가 많았고, 대중들의 관람도 한정적이었다. 그런데 기술 복제를 통해 제작된 작품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대중을 만나는 것이 가능해진다. 동일한 영화를 전국의 상영관에서 동시에 다수의 관객이 관람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각자의 집에서 샤워를 하면서 가수가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노래들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삼사십 년 전 영화나 음악도 제작된 당시의 음악 그대로 감상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더 많은 사람들이 원본과 똑같은 예술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루벤스의 그림을 보는 네로와 파트라슈


처음에 사진과 영화 기술이 등장했을 때, 사람들에게 유효한 문제의식은 “사진과 영화를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예술의 정의로 사진과 영화를 포섭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때, 벤야민은 “이제 사진이 예술인가, 아닌가의 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영화의 시작은 예술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부여하였다.”라고 주장한다. 완벽한 복제 기술이 등장하면서 예술의 고유한 특징 중의 하나인 ‘진품성’은 사라진다. 그렇다면 벤야민의 주장대로 이제 예술을 무엇으로 정의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사실 원본과 복제품, 진품성의 파괴에 대한 논의는 비단 예술에만 속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이와 관련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영화에서도 ‘복제’와 관련된 이야기는 이제 식상할만큼 너무 자주 사용되는 소재가 되었다.


왼쪽 : (영화)그녀 / 오른쪽 : (영화)가타카


특히 여기 주목할만한 두 개의 영화가 있다. 영화 ‘그녀’에서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는 아내와 별거를 하고 쓸쓸한 날들을 지낸다. 그는 어느 날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을 복제한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를 만난다. 테오도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자신을 잘 이해해 주는 사만다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영화 ‘가타카’에서는 모든 사람이 유전자 복제에 의해 태어난다. 난시, 심장병 등의 신체적 기형을 유발하는 열성 유전자는 모두 제외하고, 완벽한 유전자들의 조합으로 아기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가타카의 남자주인공 ‘빈센트’는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는 자연임신을 통해 탄생한 사람이기 때문에 우주 비행사의 선발 자격에 충족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완벽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사고로 다리를 잃은 사람의 신원을 사서 우주 항공 회사에 입사한다.

이 두 가지 영화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첫째는 인간의 몸 혹은 마음을 ‘복제’한다는 소재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두 영화 모두에서 ‘복제품’이 ‘원본’을 능가하는 대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테오도르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지만, 인공지능인 사만다에게 위로를 받는다. 가타카의 빈센트도 마찬가지다. 빈센트는 자연적으로 태어났으나, 인공적으로 복제 된 다른 아이들보다 열등한 사람으로 낙인찍는다. 현대 사회에서 복제 기술은 날로 발전한다. 원본과 복제품의 기준이 사라진 것을 넘어 현대 사회에서 순수한 것들은 자신의 가치와 권위를 잃어간다. 순수하게 태어난 것들은 열등한 것으로, 복제되고 만들어진 것들은 점점 더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새로운 계급 사회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원본의 가치는 사라졌는가? 원본의 자리를 복제품이 대체할 수 있는가? 영화 ‘그녀’에서 사만다는 결국 삭제된다. 영화 ‘가타카’에서 빈센트는 유전자 복제로 태어난 다른 후보자들을 제치고, 우주 비행사로 선정된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순간적인 행위 예술의 촬영으로 영화를 제작하거나,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 영화로 상영하는 등 순간적이고 일회적인 예술의 측면과 복제 기술을 효과적으로 통합하고자 하는 실험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원본과 복제품은 각자 고유한 특징을 내재한 채 긴장관계에 놓여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긴장 관계 사이에서 예술은 새로운 자리를 모색하고 있다. 



*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중심으로 현대 사회에서 예술이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벤야민이 그러했듯 예술 가운데에서도 ‘영화’에 주목하였습니다. 예술로 인한 변화 대상에 따라 글을 분류하여 예술의 변화, 사람의 변화, 사회의 변화로 총 3편의 글이 이어집니다.

주텍스트의 글을 요약정리한 부분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았으나, 원문을 그대로 옮겨온 경우에는 인용 표시를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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