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휴게실

by becool




1층으로 내려가 물을 사려고 했는데 버튼을 누르지도 않은 5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직원 휴게실이라는 안내가 보였다. 어찌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한 번 둘러보기로 한다. 휴게실이라면 물 한 잔은 얻을 수 있겠지. 근데 사람이 많으면 어쩌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베이지와 연한 갈색으로 꾸며진 방 안에는 공기청정기, 가습기, 전기 아로마 디퓨져가 풀가동되고 있었다. 휴식=라벤더 혹은 산림욕 공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있다는 게 고마웠다. 감귤류의 향이 블렌드되어 있는 휴게실이라니, 마음에 드는걸.


한가운데 있는 좌식 테이블에는 온화한 얼굴을 한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아저씨라고 해도 나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날 것 같지는 않다. 몇 살 어릴 수도 있겠지. 그래도 세상에서는 아저씨라도 불리니까. 다행인지는 몰라도 방 안에는 그 사람 뿐이었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앉았다.


"어서오세요"
"저기... 아 저기 죄송한데, 물 한 잔 얻을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저쪽에 보시면 마실 것이 준비되어있어요. 원하시는 걸로 드세요"
"뭐 장부에 기입하거나 신분증을 보여드려야 하는건..."
"차 한 잔인데요 뭐. 괜찮습니다"


목에 걸려있던 개목걸이가 왠지 창피해졌다. 안쪽으로는 공항 라운지에 있을 법한 규모의 드링크 바가 마련되어 있는데 탄산은 물론, 각종 허브티, 에스프레소 머신과 아사히 드라이의 생맥주까지 있었다. 청소 상태는 완벽하다. 으음. 잠깐 고민하다가 티팟에 따뜻한 차를 만들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이쪽"


그는 놀랍게도, 담배를 물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흡연이 가능하다구요? 이렇게 좋은 향이 나고 공기가 쾌적하고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아도 프리 드링크를 마실 수 있는 곳에서? 이게 알려지면 사람들이 바글거릴텐데!


"사람들은 여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자리에 앉으려는데 내 마음을 읽었다는듯이 그가 말한다.


"...네?"
"안좋아하나봐요. 여기."
"아니 왜요? 이렇게... 아, 감사합니다"


그가 캐스터 마일드 5밀리와 빅 라이터를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5밀리라... 뭐 나쁘지 않아.


"저는 질문을 하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싫어하나봐요"
"질문? 어떤 질문?"


이곳은 회사에서 지정한 상담실 같은 곳인가. 그렇다면 사람들이 꺼리는 것도 이해가는데.


"어째서 엘리베이터가 5층에서 열렸다고 생각해요?"
"아... 그러고보니 전에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추고 문이 열리면, 내리는게 좋다고. 아, 그게 이런 거였구나"
"정말요? 재밌네"


그는 웃으면 눈이 사라지는 온화한 얼굴에 한층 더 웃음을 머금고 나에게 물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실내에서 담배를 피는 것이 얼마만인가에 감격하며, 차를 후후 불어마시면서 질문에 답을 해나간다.


몇 잔의 차와, 쿠키와, 담배가 이어지면서 우리는 편하게 누워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의 질문은 유쾌했고, 나는 기분 좋게 대답했다. 좌식 테이블의 온도는 적당하게 몸을 덥혀주었고, 밖으로 빠져나와있는 얼굴과 어깨는 조금 쌀쌀해진다. 그가 어깨를 둘러 팔베개를 해주었다. 좋은 냄새가 난다.


몇 가지 질문과 대답을 좀 더 이어간 후에, 우리는 키스했다. 멀고 먼 바다를 건너 식량을 가져온 어미새와 같은 키스였다. 따뜻하고 평화로와서 잠이 들 것 같았다.


"조금 자고 갈래요?"
"그래도 되나요!?"
"물론이죠"
"그런데, 나 물 사러 나온 길이라..."
"괜찮아요. 잠들었다가 깨면 자리로 돌아가 있을 거예요"
"네?"
"그리고 여기에서 있었던 일은 기억나지 않을 거예요"


으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당신은 지금, 맛있는 차를 마시고 정보를 셰어하고, 느긋한 시간을 보내다 가는 거예요. 기억할 일도 기억할 필요도 없어요. 자 이제 눈을 감고, 편하게..."


아 졸려. 으응... 네에...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그의 손길에 점점 더 잠이 온다. 애써서 눈을 떠보니 그가 나를 따뜻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또 오고 싶을 땐 어떡하죠...? 으응...


아니 그런데, 정보의 셰어라고? 무슨? 이 사람은 누구? 우리편? 아니면 라이벌 회사? 그보다 더 큰 차원의 인공지능?


머리속에서 위험하다는 빨간 불이 깜빡였지만 이미 늦었다. 난 깊고 깊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잠에서 깨었다. 제길 휴일의 낮잠
너무 미스테리 사양이라 힘드네. 이거 심지어 2부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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