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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방서가 Feb 10. 2023

정보 과부하의 시대에 살아남는 법

대니얼 J. 레비틴 <정리하는 뇌> & QVV 방법

어제 일도 돌아서면 기억나지 않는다며 머리를 쥐어뜯은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다. 분명 어릴 때는 ‘사진 기억’이라며, 몇 페이지 그림 밑에 뭐라고 쓰여있었는지 떠올릴 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외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공부에 때가 있다는 말이야 더 해서 무엇하리. 공부한 것까지는 기억하지 못해도 좋으니 부디 일상을 살아가는데 고지서라도 제 때 냈으면, 누가 나에게 거짓 정보를 알려줄 때 아니라며 돌아설 수 있었으면, 최소한 어떤 정보를 접할 때 대충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배경지식은 머리에 넣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분이 읽어야 할 책을 소개하려고 한다. 한국어 번역은 <정리하는 뇌>이지만  뇌신경생물학 책은 절대 아니고, 원서 제목인 <The Organized Mind>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 정리법’에 가까운 책이다.


필요할 때 척척 꺼내쓸 수 없는 정보가 대체 어디에 저장되었나 스스로의 뇌를 원망했다면, 이 말을 기억해야 한다.

정리하는 뇌를 이해하는 한 가지 핵심은 그것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 뇌는 사물을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작동방식이 설정돼 있다. 뇌는 상당한 유연성을 지녔지만, 오늘날과는 서로 다른 종류, 서로 다른 양의 정보에 대처하기 위해 수만 년에 걸쳐 진화되어 온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다.

요는 우리 뇌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로 써놓으니 괜히 어렵게 느껴지겠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인지 맹점이 얼마나 많은지 수십 가지 예를 들 수 있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운전이 완전히 손에 익은 사람의 경우 익숙한 길을 다녀왔을 때 어떻게 운전하고 돌아왔는지 복기하지 못할 수 있다. 이처럼 나는 분명 봤다고, 기억했다고 생각했겠지만 뇌의 입장에서는 기억에 남을 만큼 주의를 집중한 대상이 아닐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주의를 잡아끄는 쓸모없는 정보들이 너무 많아 우리 뇌에 걸리는 부하가 커졌다는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무엇이 알아야 할 내용이고, 무엇이 무시해도 될 내용인지 가려내려고만 해도 진이 빠진’다.


사실 형편이 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뇌에 걸리는 용량의 부하를 줄인다. 이를테면 비서 같은 사람들이다. 일정을 정리하고, 만나야 할 사람들을 걸러내며, 확인할 메일의 개수를 줄여준다. 책의 표현을 빌면 ‘시간과 주의력을 좀 더 가치 있는 곳에 써야 하는 사람들의 뇌를 확장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나의 뇌를 확장해 주는 사람을 고용할 정도로는 아직 성공하지 못한 평범한 사람은 외부 저장장치를 (고용 대신) ‘사용’ 할 수 있다. 나는 고루하게 종이에 펜으로 쓰는 방법을 사랑하지만 디지털 장치에 저장하는 방법도 수십 가지 있으니 아무거나 골라 쓰시면 된다. 저자도 말했듯, ‘모든 사람에게 효과적인 단 한 가지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만, 종이에 펜으로 쓰는 고루한 방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한 단락도 있으니 참고할 만하다.

자기 전공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 특히나 창의력과 효율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사람들은 뇌 바깥의 주의 시스템과 기억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한다. - 하지만 바쁘고 효율적으로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쇼핑 목록부터 약속 시간, 차기 대형 프로젝트에 대한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중요한 것들을 챙길 때 가상의 물건이 아닌 낡은 방식의 실제 물건을 사용할 경우 거기에는 무언가 다른 본능적인 부분이 있다고 한다. 글로 기록하면 무언가 잊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그것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데 들어가는 정신적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신경과학에 따르면 몽상 네트워크는 중앙관리자 네트워크와 경쟁하고 있고, 그 싸움에서는 보통 기본 모드인 몽상 네트워크가 승리한다. 마치 당신의 뇌가 가끔은 자기만의 마음을 따로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원한다면 이것을 선 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이 모습을 본 선사는 끝내지 못한 일들이 마음속에서 끝없는 잔소리로 당신을 현재로부터 끌어내리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마음이 미래에 묶여 있기 때문에 당신은 매 순간 온전히 충실하거나 현재를 즐기지 못하게 된다. - 당신이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하지 못했다고 여기는 것이 있으면 마음 바깥의 신뢰할 만한 시스템에 담아야 한다. 그 신뢰할 만한 시스템이 바로 글로 적는 것이다.


뇌에 저장하든, 외부 저장장치를 사용하든, 한계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리해 둘 만한’ 정보를 골라내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책의 마지막장에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내용이라며 소개하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내용이므로 새겨 들어야 한다. 일단, 인터넷 시대에 정보의 양은 과유불급이다. ‘어디에서’ ‘어떤’ 정보를 얻어야 정확한지 가려내는 것이 과업이 된 지 오래다. 책에 (매우 조심스레) 위키피디아가 예시로 나오는데, 물론 집단지성의 좋은 예이지만, 공신력은 없으므로 제대로 된 글을 쓴다면 위키피디아를 참고문헌으로 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위키피디아는 그 탄생의 배경으로부터 공신력의 정도를 추측할 수 있는 나름 좋은 플랫폼에 속한다. 우리가 걸러야 할 정보들은 교묘하게 가려진 출처에서 나온다. 학술지를 가장한 인터넷 언론의 글이나, 반증의 여지없이 떠도는 유사과학 정보들이 그것이다.


책의 내용과 관련하여 의학분야에서 오류를 방지(Error Prevention) 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정보를 걸러내는 일반 원칙을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약어로 QVV라고 쓰는데 풀면 다음과 같다.

Qualify the Source

Validate the Contents

Verify with the Expert Source


일단 정보의 출처가 신뢰할 만한 곳이어야 한다. 과학 논문의 경우에는 peer reviewed journal 이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일상생활에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는 어렵고- 최소한의 출처는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면 좋겠다. 그리고 validate (검증) 단계를 거친다. 책에도 등장하는 어림짐작의 기술을 통해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위배되는 부분은 없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삼시 세 끼 다 먹어도 이 가루만 챙겨 먹으면 2주에 10kg 감량 가능!”이라고 할 때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는 정도면 된다. 더하여 설령 감량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보름 만에 10kg이 줄어들 수 있는 우리 몸의 구성 성분을 떠올려보면 최상이다. (정답은, 수분이다. 그리고 수분은 대부분 2-3일 안에 돌아온다. 우리 몸의 항상성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다음은 verify (확인)이다. 느낌적 느낌으로 찜찜한데,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뒤적여도 딱히 반박할 논리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신뢰할만한 정보원을 찾아 확인해 보는 단계이다. 물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늘 정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경험이 많은 사람의 지혜가 월등할 때도 있다. 그러나 ‘전. 문. 가’라는 집단은 적어도, 어떤 분야를 ‘더 잘 알기’ 위해 시간과 금전적 자원을 투자한 사람들이다. 인터넷의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글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너무 무시하지 말고 확인할 정보가 있으면 부디 활용하시기를 바란다.


사실은 "제발 귀찮아하지 마시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 누가 조금만 생소한 이야기를 한다거나, 숫자가 잠깐만 나와도 고개를 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면 곤란하다. 요즘은 그것에 더하여 본래 내가 믿고 따르던 것과 다른 근거가 등장하는 것도 참지 못하는 현상을 종종 본다. 그렇게 하면 나의 주의가 계속 한 방향으로 몰리면서 현상의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를 잃게 된다. (뇌는 주의를 기울인 것만 받아들여 기억한다.) 혼자서는 '정리된 뇌'라고 믿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정보가 잘 정리된 것이 아니라 편협하게 골라내어진 것뿐이다.


'정리하는 뇌'를 위해서는 올바른 정보를 가려내는 혜안을 갖추는 것이 먼저다. 그다음이 ‘쓸모 있고, 기억해 둘 만한’ 정보를 받아들여, 체계화해야 한다. 이때, 성인 체중의 2.2%밖에 안 되는 뇌만 너무 혹사하지 말고 정보의 정리를 외부화하자. 혹은 이미 외부화된 정보의 규칙이라도 알아두도록 해보자. 나를 헷갈리지 않게 해주는 고마운 초록선 & 분홍선과 같은 표지가 도처에 있으니 그것만 잘 이용해도 기본은 하지 않을까.

책 전반에서 강조했듯, 정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무언가를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가장 결정적인 원칙은 바로 이것이다. 정리의 부담을 뇌에서 바깥세상으로 넘겨라. 이런 과정의 일부 혹은 전부를 뇌에서 물리적 세계로 떠넘길 수 있다면 실수할 가능성이 그만큼 줄어든다. 하지만 정리된 마음은 당신이 그저 실수를 피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하게 해 준다. 정리된 마음은 당신이 그렇지 않았다면 상상하지도 못했을 일을 하고 상상하지 못했던 곳에 갈 수 있게 해 준다. 꼭 무언가를 적어놓거나 외부 매체에 기록해 놓는 것만 정보의 외부화가 아니다. 이미 당신을 위해 정보 외부화가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당신은 그저 그 신호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만 알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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