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AMOM Mar 07. 2016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카페 뒤 몽드(Café Du Monde)

 

  얼마전 뉴올리언스를 다녀왔습니다.  바빴던 일상을 접어두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설레임이었습니다.

  

  뉴올리언스는 유명 관광지라서 인터넷에 정보가 많이 있었습니다. 블로거들은 하나 같이 ‘카페 뒤 몽드(Café Du Monde)’의 카페 오레(Café Au Lait)와 프랑스식 도너츠인 베네(Beignets)를 추천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무려 1862년에 문을 연 카페였습니다. 하루 24시간 영업을 하고, 1년 중 크리스마스 단 하루만 쉰다는 곳.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커피를 마신다는 곳, 커피를 유난히 좋아하는 제가 안 가볼 수 없었죠.


 남편은 학회 참석 일정으로 바빠서 세 살된 딸과 둘이서 뉴올리언스 관광에 나섰습니다. 지도에는 ‘카페 뒤 몽드’만 표시했습니다.  

 오전 10시. 예상보다 줄이 길었습니다. 짧은 줄이 있어 자세히 보니 투고(To-Go)하는 사람들을 위한 줄이었습니다.  꽁무니에 가서 섰습니다. 금새 제 뒤로도 줄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살 따님의 짜증이 시작됐습니다.


 사실 줄이 어느 정도 길 것을 예상해서 카페에 도착하기 전부터 아이에게 철저한 사전 교육을시켰습니다. 육아 서적에 보면 낯선 곳에 가거나 새로운 일이 벌어질 때는 아이에게 미리 알려주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이의 짜증이나 불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미리 말했습니다. 도너츠를 먹으러 갈꺼라고. 줄이 좀 길꺼라고. 그렇지만 잘 기다리면 맛있는 도너츠를 먹을 수 있다고. 유모차를 밀고 카페로 오는 길에, 프랑스풍 예쁜 건물 앞을 지나며, 수도 없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육아서적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그저 지겨울 따름이었습니다. “다솔아 조금만 기다리면 돼. 엄마가 도너츠 많이 줄께”로 시작된 회유는 “도너츠에 달콤한 설탕이 많~이 뿌려져 있대”라는 상당히 구체적인 묘사를 거쳐“와, 저기 아저씨 봐. 배가 많이 나왔네. 도너츠를 너무 많이 먹었나봐”라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과자도 주고, 젤리도 먹여봤지만 그때 뿐입니다. 40분쯤 지났을까요. 달래고 얼러서 거의 순서가 됐을 무렵 아이의 짜증은 극에 달했습니다.폭발 직전, 저는 그 맛있다는 카페 오레 한 잔과 프랑스식 도넛 베네를 주문했습니다. 혹시 너무 맛있어서 우리가 다 먹어 버릴까봐 도너츠는 남편을 위해 한 봉지 더 샀습니다.


 커피도 너무 맛있을까봐, 그래서 아쉬울까봐, 큰 사이즈로 시켰습니다. 그 커피를 들고 아이를 달래며, 카페 옆 공원 벤치에 앉았습니다. 이미 심통이 나서 도너츠도 안 먹는다는 아이에게 잠깐만 기다려 보라며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는데…

 입 안에서 느껴지는 커피 맛에 정말이지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맛이 없었습니다. 정말로  없었습니다.  제 욕심이 너무 컸습니다. 세 살된 딸을 데리고, 40분간 줄을 서서 마시는 커피가 어찌 맛있을 수 있을까요. 아이며, 어른이며 기다리는 동안 지쳐버렸는데 말이죠.


 누군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아이가 생긴 뒤로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은 아이가 잠 든 뒤혼자 먹는 라면이라고.

  뉴올리언스를 떠나기 전 기념품 가게에서 ‘카페 뒤 몽드’ 상표의 커피를 한 통 샀습니다. 집에 온 뒤 아이가 낮잠 자는 틈을 타 그 커피를 꺼냈습니다. 커피와 같은 양의 따뜻한 우유를 넣어 카페 오레 한 잔을 만들었습니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맛있었습니다. 어설프지만 제가 만든 그 커피가, 152년 역사의 카페 앞에서 맛 본 그 커피보다 훨 씬 더 맛이 좋았습니다.  


 엄마가 된 저에게 이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커피는 아이가 잠든 사이 혼자 마시는 바로 그 커피 입니다.


 아이와 함께 마시는 커피가 가장 맛있는 커피가 되려면 얼마 만큼의 시간을 기다려야 할까요.



그렇게 일년이 지났고

아이는 조금 더 컸습니다.


"엄마 내가 커피 만들어주곱다... (주고싶다)"라며

종종 커피머신의 버튼도 눌러 줍니다.


가끔 길가다 커피를 사려고 하면

 이젠 의젓하게 기다려주기도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가장 맛있는 커피는......


네. 고백하자아직은 그렇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세상 《기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