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_자연애뜰케어팜
"자연애뜰케어팜"에 가던 날은 유난히 날씨가 좋았다. 완연한 가을이면서도 햇살은 적당히 따뜻했고,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은 그대로 그림 같았다. 방사선 치료 3주째에 접어들고 있었던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나들이였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나서 얼마 안 됐을 때는 모두에게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몸 관리를 잘못해서 그런 걸까? 아버지 알면 놀라실 텐데. 온갖 해로운 거 다 하면서도 멀쩡하게 잘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잔뜩인데 어째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억울한 마음이 드는 한편, 치료는 이제 시작인데 주눅들어선 안 된다는 마음도 함께 일어났다. 그러다 농촌진흥청에서 진행하는 치유농업 방문 프로그램을 알게 됐고, 운 좋게 선정되어 집에서 가까운 "자연애뜰케어팜"에 가게 됐다.
처음 치유농장, 치유농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가 비슷한 시기에 인지장애를 앓게 되셨기 때문이다. 열두 살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는 막내딸을 보고도 "어매요~" 부르는 엄마를 부둥켜안고 울어야 했고, 집으로 돌아오면 시어머니의 텅 빈 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 분의 일상이 무너져 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동안, 치매라는 병이 당사자와 그 가족 모두에게서 얼마나 많은 것을 순식간에 빼앗아 가는지 실감했다.
그래서 네덜란드 케어팜에 대해 알게 됐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인지증 어르신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분들의 삶을 인간답게 마무리하고, 인지장애를 겪는 중에도 어느 정도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대안적 형태라고 생각되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곳이 있기만 하다면 두 분 어머니께도 지금보다 더 나은 시간을 보내실 수 있게 해 드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함께 농장을 일구고, 땅을 만지고, 갇혀 있지 않은 상태로 공동생활을 하는 이상적인 형태의 요양원은 찾기 힘들었다.
그러는 중에 친정엄마는 아버지 곁에서, 큰언니와 형제들의 보살핌 속에 돌아가셨고 시어머니는 남편과 나의 미욱한 보살핌 아래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남편도 나도 당장은 오랜 돌봄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나중에, 우리가 시골에 내려가 살게 된다면 이런 보살핌이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르신들이 울타리 없이 오가면서 건강한 노동을 통해 일상을 채우고, 땅이 들려주는 목소리를 통해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는 치유농장을 꿈꾸었다. 그러다 유방암 진단을 받았고, 잠시 쉬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지만 "자연애뜰케어팜"에서 보낸 시간이 그 꿈을 좀 더 현실감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 것도 사실이다.
쪼그려 앉아 일하기 힘든 어르신들을 위해 따로 제작된 허리 높이 텃밭이나 작은 화분에 식물을 심어 보는 활동이 가능한 체험 재료들도 놀라웠지만 직접 감과 사과를 수확하는 체험을 통해 잊을 수 없는 시간을 선물해 주신 대표님 덕분에 정말이지 감사한 시간을 보냈다. 한마디로, 아낌없이 주는 농장이었다.
농장에서 가져온 배추와 무로 식탁은 풍요로웠고, 국화 화분 두 개로 거실은 온통 꽃향기로 가득했다. 갖고 온 것은 농작물이고 화분이었지만, 우리에게 남은 것은 긴 위로였다. 이런 데 가자고 하면 고개부터 젓고 보는 남편마저 "진짜 좋은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아침에 일어나 거실에 나올 때마다 국화 향기로 가을을 만끽한다. 누군가에게 위로와 평화를 선물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텐데, 치유농장 방문 덕분에 나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새롭게 일어설 힘을 얻었다.
* 자연애뜰케어팜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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