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직장인의 포트폴리오? (1편)

직장인의 보고서는 직장인의 작품이다.

내가 맡은 업무에 문제가 생겼다. 아뿔싸, 이 문제가 왜 생겼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보다도 당장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걱정이 되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생각해 보면, 문제가 생길 것 같은 기미가 있었을 때 팀장님께 더 일찍 상의했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이 문제로 인한 비즈니스 영향이 팀장 선에서 비용을 조금 더 쓰거나 다른 부서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이었으면 좋겠지만, 거래처에서 잘못 받은 주문으로 만든 제품이 사용도 못 해보고 불용 처리가 되어 회사에 꽤 큰 재정적 손실이 예상된다. 나의 팀장도 그 위의 임원에게 보고하고, 어쩌면 임원은 사장까지 보고해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괴롭다.

다음 날 출근해 팀장님의 기분을 살피고, 오전이라 커피 한 잔 하시는 틈을 타서 자리에 가서 말했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슈가 좀 생겨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전날 밤 경위서 겸 보고서를 혼자 정리하며 작성해 두었다. 조심스레 설명드리며 보고서를 드리니, 팀장님이 자초지종을 듣고는 미간에 주름을 깊게 잡으며 심각한 표정을 지으신다. 사안이 심각해서인지 화도 내지 않으신다. 당신의 상사에게 어떻게 보고할지 고민하시는 듯하다. 그러고 나서 팀장님은 보고서가 잘못되었다며 펜을 들어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 주셨다. 원인과 영향을 좀 더 구체화하고 백업 데이터를 보완해 빠르게 다시 작성해 오라고 하셨다.

보고서를 다시 챙겨 와 자리에 앉았는데, 팀장님 자리에서는 이해가 됐던 내용이 막상 내 자리에서 다시 보니 어떻게 수정을 하라는 것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옆자리의 2년 선배 김대리에게 “대리님, 혹시 팀장님이 적어주신 내용이 무슨 의미인지 아세요?”라며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아니 모르겠네. 팀장님께 직접 다시 한번 여쭤보는 게 어때?" 하는 수 없이 나는 몇 번이나 팀장님 자리와 내 자리를 오가며 보고서를 고치고 또 고친 끝에 팀장님의 손에 넘겨드렸고, 팀장님은 상무님에게, 다시 상무님은 부사장님에게 보고를 하고 다행히 이슈는 일단락되었다.


이 일은 내가 직장 생활 초창기에 겪었던 수많은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이제는 나도 조직의 리더가 되었고, 그 사이 회사의 조직 문화도 변화하여 보고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요즘에는 단톡방이나 팀채팅방에 이슈를 간략히 공유하고, 자세한 사항은 메일로 혹은 대면으로 보고를 받곤 한다. 이제 중간 관리자로서 어느 정도의 권한과 책임을 갖게 되었고, 보고 내용을 바탕으로 내 선에서 결정할지, 나의 상사에게 보고할지를 판단한다. 보고가 필요하다면 사안에 맞게 때로는 간략하게 때로는 자세하게 보고하고 필요한 논의를 이어간다.


막상 리더가 되어 보고를 받아보니, 과거에 내가 했던 실수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보고서와 회의록에 대한 지적을 받았을 때, 나는 그것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왜 나는 혼자 보고서 한 장도 제대로 못쓸까?’ 하며 자책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를 혹독하게 훈련시켜 준 상사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사원이나 대리 시절에 보고서나 회의록을 충분히 써보지 않고 느슨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이 나중에 중간관리자가 되었을 때 충분한 의사소통 능력이나 보고서를 작성하는 기술과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경우를 종종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나의 후배들과 팀원들에게 그때 나의 상사처럼 혹독한 훈련을 시키지는 않는다. 내가 직접 수정 보완한 후 나의 리더십에 최종 보고한 수정본을 공유하고 “제가 자료를 보완했으니 최종본을 한번 살펴보세요”라는 간접적인 피드백을 주곤 한다. 몇 번 피드백을 주면 보고서의 내용이 상당히 개선되는 직원도 있고, 영 나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직장인이 보고서를 조금 더 잘 쓰기 위해서 기억해야 할 점을 몇 가지 나누고 싶다.

보고서의 핵심은 무엇일까?


FYR/FYI(For Your Reference/For Your information)과 같이 당장의 의사 결정이 필요 없는 정보 공유용 보고서는 잠시 접어두겠다. 요즘은 회사에 20대부터 60대까지 여러 세대가 함께, 남녀가 함께, 다양한 성장 및 학업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다양한 국적으로 인해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일하면서 갈등보다는 컬래버레이션(협업)을 통한 시너지와 혁신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의 부름 때문 에라도 성장하는 조직들은 수평적이고 포용적인 조직문화를 이미 수용했거나 그것이 조직이 지향해야 할 길이라고 믿는 공통점이 생긴 듯하다. 그래서 요즘의 보고는 방법(보고서의 양식이나 보고를 하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있어서는 유연성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보고의 핵심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의사결정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하는 실수는 문제의 나열이다.

왜 문제가 발생했고 그 원인을 제거하거나 수정해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충분히 살펴보지 않고 무턱대고 팀장에게 들고 가거나 메일로 설명하면서 “제가 어떻게 할까요?”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행동은 '팀장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라는 의미를 전달한다. 이런 보고서를 받으면 리더도 머리가 복잡해지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이 보고서를 반려해야 할까? 아니면 친절하게 고쳐주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줘야 할까?’ ‘그러나 지금 내게 이 보고서를 들이미는 이 직원은 신입사원이 아니지 않은가? 벌써 직장생활을 몇 년이나 했는데 그동안 제대로 보고서 한 장을 스스로 작성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인가? ’ 하고 말이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런 방식의 의사소통은 아이들이 문제가 생겼을 때 도와달라고 하거나, 또는 나의 고통에 공감하고 나를 위로해 달라고 하는 것이나 주민들이 동네 공공시설에 고장이 발생했을 때 빠른 시간에 해결해 달라고 주민센터에 넣는 민원과 비슷해 보이기까지 하다. 이러한 방식의 보고에는 '이 문제는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속한 조직에서 나의 부서의 비즈니스 관련 문제 해결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비록 말단 사원이어서 내게 어떤 의사 결정에 대한 권한이 없을 수 있지만 내가 인지한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한 장의 보고서를 잘 쓰고 정보를 정확히 공유하기 시작하는 것이 다음단계에서 더 많은 관련팀과 리더들의 복잡한 논의와 의사결정을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중요한 단계가 된다. 즉 내가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나는 여전히 조직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

만약 여기서 문제가 왜 일어났는지 알아보고 개인의 실수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프로세스 문제인지 좀 더 파악을 하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나의 의견을 덧붙인다면 조금 더 완성도를 높이는 보고와 소통이 될 것이다. 딱 떨어지는 답이 아니더라고 이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a 부서와 b부서가 함께 이 이슈에 대해서 협의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

조직이나 회사에서 리더는 팀들이 논의 결과와 아이디어를 내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신규 투자를 이끌어 낼지, 혹은 정책이나 프로세스에 변화를 줄지 결정을 하고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다고 리더가 이미 문제에 대한 정답을 늘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회의와 논의를 통해 해결책을 도출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실제 운영될  현장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과 대화를 통해서 현장의 소리를 들어야 할 때도 있다. 왜냐하면 문제의 결정적인 단서와 해결책은 어쩌면 생산 현장의 조립 라인 노동자 또는 서비스 판매 매장의 매니저에게는 매일 다루고 있는 일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보고서에서 결코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은 문제의 원인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제 해결책이나 해결책을 찾기 위한 제안(즉 나의 의견과 생각)이다. 그러면 리더는 거기에서 시작해서 다음 단계의 논의를 이어가면서 조직을 위한 더 나은 해결책으로 이끌고 필요한 의사 결정을 할 것이다.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리더가 져야 한다. 만약 어렵고 곤혹스러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팀원의 잘못이라고 팀원에게 전적인 책임을 요구한다면 그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역할을 잊어버린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리더가 사원과 같은 8시간을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함에도 불구하고 사원보다 더 높은 급여를 받고, 팀장들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거나 연말에 사장님이 초대하는 근사한 저녁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것은 팀원들에게 적절한 업무를 분장하고 팀원들이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코칭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며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리더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보고를 하는 당사자는 주눅이 들거나 겁을 내거나 끙끙거리면서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문제의 원인과 영향, 본인이 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해결을 위한 제안을 빠르게 정리해서 당당히 리더와 의사소통을 하고 리더의 의사 결정을 요구할 수 있을 것 같다. 20여 년의 전의 나로 돌아간다면 나는 ”너무 걱정하지 마. 네가 충분히 고민하는 것은 좋지만 네가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어.  그러니 동료와 리더에게 네 생각을 나누고 더 적극적으로 부딪히고 해결책을 같이 찾아봐. 일터의 문제는 객관식 수학 문제가 아니라 서술형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라고 나 자신을 따뜻하게 다독여 주고 싶다.

물론 20년 전의 나도 주눅이 들었고, 꾸물거리다 제 때 보고를 하지 못한 적도 있었고, 머리는 복잡하고 생각이 정리가 안 되어 고작 한 두장의 보고서를 쓰면서도 텅 빈 사무실에 혼자 남아 썼다 지웠다 반복했던 날들이 많았다. 그러나 연차가 쌓이고 경험이 쌓일수록 어느 날부터인가 회사와 조직을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공동체’라는 관점으로 보게 된 후 크고 작은 문제를 대하는 마음이 조금은 수월해진 것 같다.


이러한 시각의 변화는 우리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다르지 않다. 인생이 매일 평안하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된다면 정말 우리 인생은 좋기만 할까? 덥지도 춥지도 않은 가을날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뜨거운 여름과 매서운 겨울 사이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이와 경험이 늘면서 우리의 생각이 조금은 유연해지고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면 우리가 매일 통과하는 삶의 여정 속에 겪은 실패와 좌절, 노력과 인내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일은 가정과 건강 다음가는 삶의 핵심요소이고 삶 자체이다. 그래서 직장, 일터도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이 다이내믹하고 크고 작은 안팎의 문제가 넘쳐난다는 것을 조금은 의연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또한 공동체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기여할수록 조직의 구성원으로서의 나의 가치는 올라간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 과정에 한 장의 보고서가 있다. 내가 잘 쓴 보고서 한 장이 회사에 큰 혁신을 가져올 첫 단추가 될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문제를 잘 정리하고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끙끙거리는 시간도 필요하고 많이 써 보면서 노하우를 터득하는 것도 필요하다.

예술가만 포트폴리오가 있는 것이 아니다. 직장인의 보고서는 직장인의 포트폴리오다.

가끔 “이 보고서는 누가 만들었지?” 하고 잘 저장해 두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보고서는 그것을 만든 사람의 포트폴리오다. 직장인에게 보고서는 비즈니스에 대한 나의 이해도와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는 기록이고 작품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동안 작성한 수많은 보고서와 그 많은 야근의 밤들이 그리 억울하지만은 않다. 내게도 꽤 쓸만한 포트폴리오들이 남았으니 말이다.


<업무 관련 일부 내용은 각색하였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