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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yang Eun Aug 03. 2021

부디, 오래오래

지난주엔 많이 더워서였을까. 비교적 일찍 잠들었다가 새벽에 깬 후 한동안 잠들지 못하다가 아침 무렵 다시 잠드는 날이 많았다.


한동안 다시 잠들지 못한 데에는, 한동안 다시 잠들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영화를 보기 시작한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던 날 중 어느 새벽에 <컨빅션>이라는 영화를 봤다. 어렸을 때부터 많이 의지하고, 같이 장난도 사고도 치며 늘 함께해 온 남매의 이야기로 실화 기반 영화였다. 살인 유죄 판결(컨빅션)을 받고 무기징역을 받은 오빠의 무죄를 확신(컨빅션)했으나 증명할 방법도 증명해줄 변호사도 (당시엔) 과학수사도 없었기 때문에 여동생은 스스로 변호사가 되어 18년 만에 무죄를 입증하고 오빠를 구해내기에 이른다.


이것이 실화가 아니었다면 영화로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실존 인물에 대해서 검색했다. 실화 기반 영화나 소설을 보고 나면 꼭 찾아보게 된다. 그후의 이야기나 영화나 소설에 담지 못한 부분, 각색된 내용 등이 알고 싶어지니까.


그리고 너무 허무한 사실을 알게 됐다. 오빠를 구해내는 데 18년이 걸렸는데, 오빠는 출소 후 6개월만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 내용을 읽는데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겨우 2시간 남짓 영화를 봤을 뿐인데, 그런데도 이렇게 허무하고 허탈한데 여동생을 비롯해 주변에서 도운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과연 그들은 지금 무사히 잘 살아가고 있을까.


다시 잠들기 위해 영화를 봤는데 다시 잠들지 못해 힘든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어제, 인스타그램에서 너무 마음 아픈 소식을 봤다. 한 길집사님이 사랑을 듬뿍 주며 돌보던 미니미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있다. 미니미는 추정 나이 12살. 최근 들어 구내염이나 이개혈종 등 아픈 곳들이 생겨 병원을 드나들었다. 전에는 치료 후 방사했지만 이번에는 마취까지 해야했던 미니미가 회복하기를 기다리며 임보자를 찾았고, 미니미는 처음으로 지붕 있는 집에서 안전한 나날을 보냈다.


여러 이유로 길집사님은 미니미를 다시 길에 보내기를 망설이셨던 것 같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나이가 많고, 건강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 돌려보내고 싶지 않지만, 워낙 오래 길에서 살아온 아이이고 12살이 넘은 고양이를 입양해줄 사람 찾기도 힘들 테니까. 하지만 너무 다행히도 미니미의 입양자가 나타났다. 그렇게 미니미는 집냥이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제 3주 됐는데, 어제 인스타그램에 미니미가 떠났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나는 미니미를 한 번 만난 적도 없지만 그 소식을 보고 마음이 너무너무 아팠다. 샤워하려던 차였는데 그 소식을 접하고 굳어버리고 말았다. 미니미, 길집사님, 입양자님, 미니미와 길에서 친하게 지내다가 혼자가 되어 입양처를 찾고 있는 우엉이를 생각하니 너무 속상하고 또 속상했다. 내가 이런데 미니미를 돌보고 품어주신 분들 마음은 오죽할까 싶어서 담담한 척 인사를 전했지만 샤워하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안전하고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씻고 나오니 거실에서 미리와 그니가 잠들어 있었다. 오랜만에 에어컨도, 선풍기도 필요없는 선선한 공기. 더워진 후 소파에는 안 올라가던 미리가 먼저 소파 끝자리를 차지했고, 나도 미리 눈치를 보며 반대쪽 끝자리에 앉았다. 책을 읽을 생각이었는데 잠시 후에는 그니도 소파 위로 올라왔다. 위치는 나와 미리 사이, 나보다는 미리 쪽에 가까운 곳.


내가 손을 뻗어 그니를 쓰다듬으면 미리가 겁을 먹고 내려가버릴까봐 천천히, 조심조심 그니에게로 손을 뻗었다. 미리가 잠시 경계는 했지만 다행히 내려가 버리지는 않았다. 우리 셋은 한동안 그렇게 소파에 엎어진 채로 조용한 밤 시간을 누렸다. 그니의 미간과 이마와 머리를 쓰다듬었더니 그니가 잠들었고, 만질 수 없는 미리도 함께 잠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그 평화로운 순간에, 갑자기 그니가 잠든 게 아니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원래 그니는 예민해서 깊게 잠들지 못하는데 너무 쌔근쌔근 자니까, 그게 예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잘 자는 애 눈꺼풀을 열어서 확인하고, 숨이 드나드느라 오르내리는 배도 확인하고, 그래도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새 소파 밑으로 내려가 네 다리를 쭉 뻗고 잠든 미리 곁으로 가 숨소리를 맡고 싶었다. 미리와 그니를 깨워서 앉혀놓고 어디 아픈 데 없지? 아프면 꼭 말해야 해, 말하고, 절대로 갑자기 가버리면 안 된다고 다짐을 받고 약속을 받고 싶었다.


미리 그니와 함께 지내는 이 삶이 너무 좋다. 정말 좋지만, 그전에는 몰랐던 두려움과도 함께 살게 됐다. 무서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 미리랑 그니랑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내고 싶다. 그리고 길에서 살아서 더 자유로운 아이들이 집에서 사는 아이들만큼 안전하고 배부르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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